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LT Jul 25. 2020

그리도 또 다른 중국 도시들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5편 중국 여타 도시-17)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중국 여타 도시



17. 그리고 또 다른 중국 도시들


중국 여타 도시 16편까지는 좀 오래 체류했거나 좀 더 자주 방문했던 도시들에 대한 기억을 적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중화권에서 주재 생활을 하면서 짧게 머물렀거나, 경유지로 잠시 들렀던 도시도 꽤 있었다. 그런 도시들에 대한 기억을 이 편에서 글로 올린다.



■ 주하이(珠海)


중국 남부에 있는 도시로 마카오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도시다. 마카오에 출장 가는 길에 주하이에도 1박 하며 체류했던 적이 있었다. 시기는 아마도 2013년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카오에서 바라본 주하이 거리뷰)

 ※ 사진 찍은 곳은 마카오, 바다 건너가 주하이다.

https://j.map.baidu.com/76/RdF


이 도시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다. 첫째는 마카오에서 주하이로 넘어가는 통관을 하는데 사람이 너무도 많아 세관 건물이 말 그대로 사람들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기억이다.


홍콩과 붙어 있는 선전과 홍콩 간에도 마카오-주하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매일 통관을 하지만 홍콩-선전 간은 통관하는 곳이 3군데나 돼서 어느 한 곳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카오는 워낙 작아서 그런지 주하이로 넘어가는 통관 창구가 오직 하나밖에 없어 그렇게 사람들이 몰렸던 것 같았다.


참고로 홍콩의 면적이 약 1,100㎢인 반면 마카오의 면적은 약 33㎢로 면적에서 3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서울 송파구 면적이 약 34㎢라 하니 마카오의 면적은 송파구 정도 되는 셈이다.


송파구 정도의 면적에 거주하는 마카오 총인구는  68만 명이라 한다. 그런데 연간 무려 약 2천7백만 명의 중국인이 마카오를 방문한다 하니(2019년 기준) 마카오 인구의  40배에 달하는 중국인 마카오를 매년 오고 가는 셈으로 결국 이로 인해 통관 창구는 붐빌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주하이의 또 다른 기억은 동행한 후배 주재원과 둘이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거리를 지나던 어떤 중국인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두 손으로 남녀 간 성관계를 암시하는 손동작을 보여주며 호객행위를 하던 모습이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을 들었는지, 우리들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중국어가 아닌 손동작 표현으로 대신 호객행위를 했던 것인데 당연히 거절은 했지만 지나고 보니 나름 재미있었던 것이 말 한마디 교환하지 않았는데도 후배나 나나 그가 무엇을 제안했는지 그 손동작만 보고도 바로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글로 그 손동작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손동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같은 동작이 중국에서도 역시 성행위를 암시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동작을 본 기억이 없는데, 아마 전 세계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그러한 손동작이 아닌지 모르겠다. 역사, 민족, 언어, 거주하는 지역 모두가 달라도 인간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러한 공통적인 신호법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 포산(佛山)


광둥성 포산이라는 도시에서 계열사 공장의 법인장을 하던 후배가 있었다. 2006년경 그 공장 구경도 하고 후배도 만날 겸 포산에 갔던 적이 있다. 포산은 광저우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로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광저우에서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후배가 그곳에 부임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을 시점에 방문했는데, 공장을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우연히 화장실로 대화가 넘어갔다. 그가 부임해 보니 공장 화장실에 휴지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휴지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했는데 이후에 가봐도 여전히 휴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총무과에 다시 확인해 보니 분명히 지시대로 비치해 놨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직원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 후배는 한동안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없어지면 즉시 다시 가져다 놓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직원들이 휴지를 집어가는 이유는 화장실에 와 보니 그것이 없기 때문일 텐데, 만일에 화장실에 올 때마다 항상 휴지가 비치되어 있으면 굳이 귀찮게 그것집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제품을 생산하는데 집중을 해야 할 생산법인 법인장이 어찌 보면 엉뚱한 일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이처럼 직원들의 복리후생과 관련된 사소해 보이는 일이 의외로 법인의 생산성이나 실적과 관련해서 꽤 중요했던 경우가 결코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그의 그런 대응전략이 후배의 생각대로 결국 유효하게 먹혀들었는지 결과는 확인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먹혀들었을 것이라 기대한다.



■ 시안(西安)


우리말에는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장안은 과거 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에 '장안'이란 도시는 없고 '시안'이라는 도시의 하부 행정구역인 '장안구'로만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따라서 결국 '시안'이라는 도시가 과거의 '장안'을 포함하는 도시로서 우리말 '장안의 화제'와도 관련이 있는 도시가 된 셈이다.


('장안의 화제' 유래)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2215&c1=99&c2=15


2009년경으로 기억하는데 이 시안출장을 갔었 적이 있었다. 그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회족(回族)들이 다수가 몰려 는 거리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마치 중국 땅이 아니라 오래전 역사책에서 읽었던 서역(西域)이라는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회족이라면 중앙아시아인처럼 보여 일반 중국인과는 인상이 좀 다를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 보니 회족들의 얼굴 모습이나 인상은 한족 중국인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만 그 거리에 있던 대다수의 회족들은 자신이 회족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하얀 모자를 모두 쓰고 있어서  모자를 보고서 그들이 회족임을 알 수 있었다. 시안에 유독 회족들이 많고 회족 거리까지 있었던 이유는 '영하회족자치구'라는 회족의 자치구가 시안에서 뙈 가까운 곳에 있고 또 그 주변에서는 시안이 가장 큰 도시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시안의 회족 거리)

https://youyue.co.kr/m/1464?category=692009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는 회족 외에도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또 다른 소수민족이 있는데, 바로 위구르족이다. 하지만 이 두 집단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다는 공통점 외에는 크게 다른 점들이 많은데, 우선 회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족과 피가 섞여 종교 이외에는 외모나 언어, 문화에서 상당 부분 한족화 되었고 그 결과 종교를 제외하면 한족과의 구분조차 쉽지가 않다는 이다. 또한 그처럼 다분히 한족화 되어서 그런지 중국에서 독립하겠다든가 하는 그런 움직임도 전혀 없다.


반면 위구르족은 외모에서도 중앙아시아인과 유사해 상당 부분 중국 한족과는 차이가 있으며, 언어도 대다수가 중앙 아시아 우즈베크어와 유사한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처럼 언어가 다르니 한족과는 의사소통 자체부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울러 한족들과는 다른 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워서 독립하겠다는 의지도 강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고 있다.


시안은 또 중국 최초로 중앙 집권적 통일 제국을 건립했던 진나라의 수도가 있던 곳으로 진시황(秦始皇) 관련 유물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병마용과 진시황릉이 바로 시안 인근 지역에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가 보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시안을 방문할 기회가 있겠지 하는 생각에 가보지 않았는데, 이후 시안에는 다시 출장 갈 기회가 전혀 없었다.


(병마용과 진시황릉)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970278&memberNo=41799851&vType=VERTICAL



■ 췐저우(泉州)


2006년 췐저우라는 푸젠성의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정성공(鄭成功)이란 인물의 거대한 동상을 처음 보면서 이 인물과 이 인물이 만든 파란만장한 중국 남부 지역의 역사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다.


정성공은 명나라 말기에 활약을 했장수로서 이미 멸망한 명나라의 부흥을 위해 청나라에 항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베이징을 수복한다는 계획하에 20만 대군을 이끌고 난징을 포위하여 한때 함락 직전에까지 몰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난징에서 패퇴하여 샤먼을 거쳐 대만섬으로 도주하게 되었고 그렇게 정성공과 수십만에 달하는 휘하의 군인들이 대만으로 이주함으로써 대만섬은 본격적으로 한족화 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되기도 했다.


췐저우 시내로 가기 위해 인근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였는데 저 멀리 보이는 대평산(大坪山)이라는 산 정상에 엄청나게 큰 장수의 동상이 보였다. 말을 타고 손을 쳐든 용맹한 장수 모습이었는데 같이 가던 일행에게 도대체 저렇게 큰 동상이 누구의 동상이냐 물으니 바로 정성공 동상이라는 것이었다.


정성공이 대만으로 도주하면서 당시 대만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 군대를 물리쳤는데, 중국을 점령한 외세를 물리친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큰 동상을 만들어서 영웅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현재 대만을 중국 영토 일부로만 인식하고 있으니 중국 영토인 대만섬에서 외세를 몰아낸 정성공이 중국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대평산의 정성공 동상 모습)

http://qz.fjsen.com/2015-08/06/content_16454425_all.htm


한편 정성공이 그렇게 대만으로 이주를 하면서 대만이 중국 대륙과 본격적으로 얽매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오늘날 대만-중국 양안 간에 그렇게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 결국 대평산 정상에 거대한 동상으로 남아 있는 정성공이라는  인물에 있는 셈이다.



■ 술이라고는 전혀 없던 공항


도시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식당이나 매장 어느 곳에서도 일체 어떤 종류의 술도 팔지를 않았던 중국 동북지방의 특이한 공항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홍콩에 근무하던 시절 동북 지방 다른 도시에 출장 갔다가 홍콩으로 돌아가기 위해 환승을 했던 공항인데, 중화권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중국 공항을 방문했었지만 이처럼 술을 전혀 팔지 않는 공항을 본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환승할 항공기를 기다리면서 저녁이라 출출하기도 해 식사와 함께 술을 한잔하고 술김에 기내에서 푹 잠이나 잘 생각으로 식당을 찾았다. 그런여러 식당을 가봐도 술을 판매하는 식당은 없었다. 독한 백주도 아니고 도수가 낮은 맥주 정도도 전혀 없었다.


식당만 그런가 싶어 공항 안의 상점에도 가봤는데 상점에도 역시 술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찾는 술이 없으니 오히려 더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공항 안 매장을 거의 전부 다 뒤지다시피 했음에도 결국 술은 구할 수 없었다.


캐나다 토론토 거주 시 일반 상점에서는 술을 구할 수 없고 오직 정부가 허가한 주류전문 매장에서만 술을 살 수 있어 꽤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어디를 가던 너무도 쉽게 술을 구할 수 있었는데 유독 공항만전혀 그렇지 않아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아직도 꽤 궁금하다 왜 그 공항은 중국의 다른 공항들과는 달리 전혀 술을 파는 곳이 없었는지....



■ 돼지고기 육수로 만든 해산물 국수


한국에 여행을 와서 한국 음식을 먹어본 중국인들이 흔하게 하는 얘기 중에는 한국에서는 밥을 다 먹고 나도 뭔가 좀 덜 먹은 것 같이 허전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가 많다. 중국인이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 중국에서 그들이 먹던 음식에는 돼지고기 등 동물성 재료들이 주로 많이 사용되는 반면, 한국 음식들은 기름진 음식이 상대적으로 많지  때문인 것 같다. 중국에서는 그 흔한 국수도 한국에서처럼 멸치 국수나 비빔국수 같은 담백한 것은 보기 어렵고, 거의 대부분 고기 국물로 우려낸 국수다.


그러다 보니 육식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중국에서 사는 내내 기름진 중국 음식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정말 적지 않았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 근무했던 같은 중화권 지역인 대만이나 홍콩에서도 쑤차이(素菜)라 불리는 채식 음식이 발달되어 있었던 반면, 당시 유독 중국 본토에서는 채식 식당이나 음식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한 번은 푸젠성(福建省) 어느 도시에 회의가 있어서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는 중국인 직원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회의장 근처에 있는 중국 식당에 갔는데, 역시 우려했던 대로 육류와 같은 동물성 재료들이 사용되지 않는 음식이 그 식당에도 하나도 없었다.


생선과 같은 해산물은 먹을 수 있었던 나는 주인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하고 해물 국수를 하나만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부탁했는데 의외로 주인은 바로 흔쾌히 요청을 받아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막상 가져온 해물 국수를 보니 가관이었다. 돼지고기로 만든 뿌연 육수 국물은 그대로 두고서 돼지고기 건더기를 건져내고 대신 새우 몇 점만 덜렁 올린 것이었다.


동물성 기름이 둥둥 떠있어도 고기를 빼고 새우로 대체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만큼 당시 중국에서는 채식에 대한 인식이 약했었것이다. 결국 돼지 기름으로 덤벅인 국물 냄새가 역해서 국수는 전혀 먹지 못하고, 맨밥 하나 주문해서 식초에 절인 목이버섯을 반찬으로 그 끼니를 해결했다. 중국에서는 목이버섯을 식초에 절여서 먹는데 그 맛이 의외로 꽤 좋았다.


(중국식 목이버섯 무침)

https://blog.naver.com/applemint75/221057552533



기억이 없는 도시


분명히 방문을 했던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신기루 같은 도시도 있었다. 홍콩에 근무할 때 관광명소로 유명한 구이린(桂林)과 리장(丽江)에서 전략 회의가 개최되어 홍콩에서 항공기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고 어렵게 방문했었는데, 신기하게도 항공 이동 기록만 남아 있을 뿐 어찌 된 사연인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곳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다.


내 인생 어느 순간들이 기록만 남기고 기억에서는 완벽하게 사라진 셈인데, 너무나 오래돼서 기억이 지워진 것도 결코 아닌데 참 신기한 일이다.



이 사진도 찍은 날짜가 2006년 7월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광저우 법인 근무 시 찍은 사진이다. 아마 광저우 법인 관할 지역인 푸젠성에 출장 갔을 때 어느 도시에선가 찍은 사진 같은데 역시 어느 도시에서 어떤 건물을 찍은 것인지 남아 있는 기억이 전혀 없다.

 

이제 불과 10여 년 밖에 안된 시점의 사진이고 기억인데, 그 10여 년이란 시간에도 사람의 어떤 기억은 이처럼 완전히 사라지고 지워질 수도 있는 걸 보면 좀 허망한 느낌까지도 드는 것 다. 사라진 시간과 기억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