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 초부터 이미 영국인은 인도에서 재배한 마약을 중국에 밀수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양은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나서 1700년대 말엽에는 매년 300톤도 넘는 아편이 영국인들에 의해서 중국으로 밀수되고 있었고, 아편 전쟁의 직접적 발발 원인이었던 1839년 아편 소각 사건 당시에는 청나라에 의해 압수되어 소각된 영국인 소유의 아편이 무려 1,400톤이나 되었다 한다. 그때 불에 타서 사라진 그 많은 아편의 가치는 금액으로도 상당했을 것이고 결국 그 엄청난 금액 때문에 그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영국은 중국과의 전쟁까지도 불사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당시 중국으로 밀수입되는 아편은 텐진이나 상하이와 같은 중국 북부나 중부 지방의 항구 도시가 아니라 대부분 아편의 출발지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남부 광둥지역의 항구들을 통해서 중국으로 밀수되고 있었다. 그러한 항구들 중에는 홍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홍콩의 구룡반도 인근 해역에서 1839년 9월 4일 발생한 청나라와 영국 간 전투가 아편전쟁 최초의 전투로 기록되기도 했다.
결국 홍콩의 밀수 역사는 아편전쟁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셈인데, 이후에도 주요 밀수 품목은 시대별로 바뀌었지만 오랜 기간 홍콩은 중국 본토로 향하는 밀수품의 핵심 거점역할을 했다.
한국의 아픈 역사와도 너무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역사적인 홍콩의 대규모 밀수 사례도 있다. 바로 한국 6.25 전쟁 당시 UN에의해 대중국 무역제재 조치가 발효되었을 때 Henry FOK이라는 한 홍콩인이 이를 무시하고는 한반도에서 UN 군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국이그 당시 필요했던 수많은 물자를 중국으로 대량 밀수출했던 사건이다.
바로 이러한 밀수출 덕분에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중국군은 UN의 무역 제재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6.25 전쟁을 지속 수행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압록강까지 진군했던 UN은 또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반도가 오늘날까지도 분단국가로 남는 운명에 처하게되는 몇몇 원인 중 하나로한 홍콩인의 중국 밀수도 작용했던 셈이다.
한편 그러한 밀수에 대한 답례로 이후 Henry FOK은 중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또 홍콩이 영국의 통치를 받던 시절 홍콩에서 태어난 홍콩인이었음에도 그는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중국 본토 정협(政協) 부주석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했었다. 한마디로 그 당시 Henry Fok의 밀수는 중국 공산 정부로부터 애국적인 행위로 열렬히 환영받았던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화려한 홍콩의 밀수 역사는 과거 완료형으로 이제는 종결된 것이 아니라, 내가 홍콩 법인에서 근무하던 그 시절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아마도 내가 홍콩을 떠난 지가 6년이 넘는 2021년 오늘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그대로 진행 중일 것같다.
홍콩에 부임해서 영업을 하다 보니 정말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꽤 특이한 현상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이 바로 그러한 현상의 일부 사례다.
1. 당시 중국 본토 및 홍콩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아이폰은 통상 홍콩에 먼저 도입되고 이후 몇 달이 지나야 중국 본토에 도입되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폰이 홍콩에만 도입되면 이후 바로 중국 본토에서도 역시 아이폰 신 모델이 엄청나게 많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홍콩 인근 광둥 지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고 베이징이나 동북삼성 등 중국 최북단 지역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2. 홍콩 인구는 약 750만 명이지만 홍콩 부임 이전 내가 약 2년간 근무했던 대만 인구는 약 2,400만으로 홍콩 인구의 3배가 넘는다. 그런데 인당 소득이 양 지역 간에 큰 차이는 없으니 당연히 전자 제품의 시장 수요는 대만이 홍콩보다는 커야 했다. 그런데 TV와 같은 대형 제품들에는 이런 상식적 예측이 맞아떨어졌지만, 이상하게도 핸드폰 등과 같은 소형 제품의 시장 수요는 홍콩 수요가 대만보다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훨씬 컸다.
3. 홍콩의 상점에 가 보면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나 보따리 장사꾼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 정상적으로 통관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양의 제품을 사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이폰 같은 제품은 한 사람이 30여 개를 사가기도 했는데 그렇게 많은 수량을 휴대하고는 정상적으로는 중국 통관이 어려움에도 그렇게 많은 양을 구매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4. 홍콩에서 영업을 하는 Retail 유통들을 보면 사장은 같은 사람인데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는 Distributor를 대부분 따로 갖고 있었다. 왜 대다수 Retailer들이 Distributor를 별도로 운영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5. 홍콩의 소규모 매장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되파는 영업, 즉 법인의 Distributor를 하고 싶다는 거래선에게 그들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홍콩 소규모 매장 리스트를 달라고 하면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거래를 하고 있다면 당연히 그 거래처들 리스트가 있을 텐데 제시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부임 초기에는 이처럼 상식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홍콩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러한 현상들이 왜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운송이 간편한 소형 제품 중심으로 전개되는 중국에의 밀수 때문이었다. 즉, 과거의 아편이나 또는 6.25 전쟁 기간 중국으로 밀수된 그 수많은 물자들처럼 홍콩에는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밀수 시장이 여전히존재하고 있었고 그 시장이 홍콩의 시장 경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신입사원 시절 본사 수출부에서 중남미 영업 시, 내 담당 지역이 중남미였음에도 Miami나 Laredo 같은 미국 남부 도시에 있는 몇몇 거래선도 함께 담당했었다. 이유는 그들이 제품을 수입한 후에 판매하는 최종 목적지가 미국이 아니고 바로 중남미였기 때문이었다. 즉, 한마디로 그 당시 내가 담당했던 그 업체들은 중남미 밀수만을 전담하는 미국 거래선들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과 상담하면 제품의 사용 설명서는 스페인어로, 전원은 미국용 110V가 아니라 중남미용 220V로 생산해서 선적해 달라는 요청들을 받았었다. 당연히 최종 목적지에서 사용하기 적합한 그런 제품의 기능을 요구했던 것이다.
좀 순화된 표현으로 이러한 밀수출을 우회 수출이라 하기도 했는데이러한 우회 수출 역할을 하는 도시들이 미국 외에 중남미 자체에도 있었다. Panama의 Colon이나 Chile의 Iquique 같은 곳이 바로 그런 도시들이었다. 이러한 곳으로 제품을 선적하면 그 제품들은 대부분 인근 국가로 정상적인 통관 없이 재수출, 즉 밀수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가 당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완제품 수입에는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서 실질적으로 완제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던 반면 이러한 도시들은 완제품 수입을 전면 허용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곳으로 수입된 완제품들이 결국 주변국으로 다시 밀수되는 그런 구조였던 것이다.
북미나 중남미뿐 아니다. 중동이나 동남아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도시가 역시 존재했는데 Dubai나 Singapore와 같은 도시가 그런 도시들이었다. 이 도시로 선적한 물량의 상당 부분은 그 도시 인근 국가로 재수출되었다. 즉 인근 국가는 수입 관세가 높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의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었던 반면, 이러한 도시들 경우 관세가 낮거나 또는 전혀 없어 제품 가격이 인근 국가 대비 낮게 형성되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이 높은 쪽으로 제품들이 흘러가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결국 시장 논리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 이러한 밀수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인데, 중국으로의 밀수출 최대 기지는 중국과 붙어 있어 거리상으로도 매우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중국과 다르게 관세가 전혀 없던 홍콩과 마카오였다. 예를 들어서 중국으로의 밀수가 가장 심한 것으로 유명한 아이폰 경우는 요즘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과거 한때 중국 가격이 홍콩 가격보다 3배 이상 높은 경우도 있었던 바 밀수꾼들은 자연히 그 가격차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보따리상이나 개인이 밀수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밀수한 제품을 개인적으로 통관한 이후 밀수 전문 업자에게 넘겨주면 대당 일정액을 수수료로 받았다. 수수료는 중국과 홍콩 간의 시장 가격차에 따라서 정해졌는데 홍콩 도심에서 중국 선전까지 약 4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바 그 정도의 시간만투자하고도 어쨌든 꽤 짭짤한 금액을 벌 수 있었다. 아이폰 판매 첫날 홍콩의 애플 매장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밀수를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에서 생산한 분유에 심각한 품질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보따리상들이 한 때 홍콩 시장에서 아이폰뿐 아니라 분유를 집중적으로 구매해 중국으로 넘기기도 했었다. 그런데 당시 이들이 구매해 가는 분유량이 너무나도 많아서 정작 홍콩에 거주하는 홍콩인들이 분유를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고 이런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불만으로 표출되어 결국 홍콩 정부는 중국인이 구매할 수 있는 분유를 인당 2통으로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해야 했을 정도였다.
보따리상들은 홍콩 전역에서 물건을 구매한 후에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래도 중국과 가까운 접경지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더 많아서 이러한 지역에서는 이들의 사재기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불과 2~3km 거리에 있는 셩수이(Sheung Shui)와 같은 지역에서는 중국인들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살 물건이 없게 된 홍콩 주민들과 중국인들 간 종종 크고 작은 다툼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첫 번째 방식의 밀수 행위는 개인의 소비자가 Retail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구매한 후 중국으로 넘기는 경우라서 홍콩 법인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일이었다. 왜냐하면 Retail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구매 이후에 실제 홍콩에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으로 넘길 것인지를 사전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법인에서 이러한 밀수행위를 막기 위해 어떠한 대책 또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두 번째는 전문 밀수상이 직접 밀수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홍콩에서 아이폰과 같은 인기 제품들을 홍콩에 진출해 있는 해당 제조사의 판매 법인들이나 아니면 대형 유통으로부터 대량 구매한 후에 그들이 오랜 기간 구축해온 다양한 밀수 경로로 그 물량을 중국으로 넘기는 밀수 전문 업체들이다.
이들의 밀수는 매우 조직적이고 전문적이어서 2014년에는 길이가 약 40미터에 달하는 밀수품 운송 전용 지하터널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국의 추정에 의하면 사람이 직접 다닐 수 있는 이 터널을 파는 것에만도 한화로 약 5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고 하니 이러한 밀수 업체들은 자금력 또한 대단했던 것 같다.
또 2019년에는 직경이 20cm 정도로 좁아서 비록 사람은 지나다닐 수 없었지만 로프를 이용해서 홍콩에서 중국으로 밀수품을 운반할 수 있는 길이 약 250미터의 또 다른 지하 터널이 적발되기도 했다. 2014년에 발견된 터널보다도 그 길이가 무려 6배 이상 더 길어진 셈이다.
이 두 번째 경우의 밀수는 법인과 거래하는 거래선이 실제 홍콩 로컬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는 거래선인지 확인해 보고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이 되면 거래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확인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데 실제로 매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거래선 매장에 몰래 가보거나, 또는 Distributor라면 제품들을 공급하는 하부 매장 List를 달라고 해서 입수한 후에 제품이 그곳에서 실제 정상적으로 판매되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
실제 홍콩 법인 부임 후 이러한 방식으로 거래선을 확인해 보고 밀수 전문 거래선으로 파악된 일부 거래선에 대해서는 너무 급격하지는 않게 서서히 판매 물량을 줄여가는 방식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거래를 완전히 중단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거래선들의 반발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기도 했다.
세 번째 밀수는 홍콩 법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가 아픈 방식의밀수였는데 바로 정상적인 홍콩의 Retail 유통들이 별도로 Distributor를 운영하면서 밀수를 하는 경우였다.
이 경우는 우리 법인에서 제품들을 구매해 가는 대형 Retail 유통이 자행하는 밀수라 전술한 첫 번째 개인의 밀수보다도 그 양도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는데, 두 번째 경우처럼 전문 밀수 거래선이 아니라 정상적인 홍콩의 Retail 유통이 우리 법인에서 제품을 정상적으로 구매한 후에 그 물량의 일부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중국으로 넘겨버리는 상황이니 사전에 통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홍콩의 대형 Retail 유통 중 F사를 제외하고 B사, W사, S사 모두 중국으로 이렇게 일부 제품을 넘겼는데, 홍콩과 중국 간에는 너무도 오랜 기간 이런 밀수가 진행돼 와서 그런지 그들 모두 밀수 행위에 대한 뭐랄까 죄책감과 같은 감정은 정말 신기하게도 전혀 없었다. 그들이 관세를 내지 않은 채, 즉 정식 통관하지 않고 중국으로 밀수출하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도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Trading'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곤 했다. 그저 '거래' 또는 '무역'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원래 중국의 Retail 유통이었지만 나중에 홍콩 Retail 시장에도 진출한 S사 경우 아이폰 밀수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밀수 물량 덕분에 회사의 매출이 홍콩 진출 몇 년 만에 큰 폭으로 성장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참고로 이 S사의 홍콩 법인 본사는 국제적으로 조세 회피처로 유명한 Virgin Islands에 등록되어 있었다.
홍콩의 대형 Retail 유통들이 그렇게 중국 밀수에 탐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구 14억의 중국이라는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엄청나게 큰 바 그만큼 매출을 더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큰 시장이 운 좋게도 홍콩 옆에 바로 붙어있으니밀수하기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 간혹 장기간 팔리지 않는 악성 재고 문제가 생하면 인구 고작 750만 수준밖에 안 되는 홍콩 안에서 어렵게 그 재고 소화하려고 고생하기보다는 인구가 14억 인 중국 시장에 그 물량을 던져(?) 버리면 흔적도 없이 너무 쉽게 그 재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홍콩의 정규 Retail 유통들도 이런 이유로 판매 물량 일부를 중국으로 넘기는 것을 매우 즐기고 있었고, 따라서 중국에 있는 우리 회사의 법인에서는 홍콩 법인에서 판매한 물량들이 중국으로 넘어와서 자신들의 판매 실적이 영향을 받는다거나 또는 중국 시장 가격이 무너진다는 불만을 지속 제기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에서 영업하는 입장에서는 홍콩 법인 문을 닫지 않는 이상 홍콩의 Local 영업도 분명히 수행하고 있는 홍콩 유통들과의 거래를 중단할 수도 없는현실이어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이런 물량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정말 마땅치 않았고 결국 홍콩에서 근무하는 기간 내내 이문제는 풀지 못하는 골칫거리 중 하나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사실 공식적으로 중국으로의 판매 금지를 요구하면 그러한 요구 자체가 자유로운 시장 가격의 형성을방해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로 인식되어서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노골적, 공식적으로 그런 요청을 반복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따라서 결국 그저 만날 때마다 구두로 간곡히 부탁하는 것 외에는 밀수를 예방할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었는데 매출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홍콩 유통들이 우리의 그러한 입장을 고려하고 수용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비단 대형 Retail 유통뿐 아니었다. 홍콩의 중소 규모 유통 또한 정상적 홍콩 Retail 판매와 함께 중국 밀수를 병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따라서 결국 홍콩 어느 Retail 유통과 거래를 하더라도 우리가 홍콩에 판매한 제품들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홍콩 법인 영업을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문제였다.
다만 중소 규모의 유통들은 법인 매출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매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거래를 중단해도 그리큰 부담이 없었기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제품 공급 중단 등 조치를 통해 추가적 밀수 행위를예방하기도 했었다.
이를 위해서 중국의 밀수입 상가에서 홍콩 제품들의 Serial Number가 확인되면 홍콩의 어느 유통에 판매한 것인지를 확인한 후 그 유통이 실제로 매장이 있고 또 정상적 판매를 하고 있는지 직접 가서 재확인하기도 했다.
사진) Mody Road에 있던 거래선 K사 매장 (2009. 1월)
위 사진은 홍콩 구룡 Tsim Sha Tsui 뒷골목에 있는 Mody Road 사진인데, 이 사진도 이 거리에 있는 K라는 거래선의 매장을 방문해서 실제로 정상적으로 홍콩 로컬 판매를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 이 거래선은 구룡 지역에 이러한 소형 매장을 5~6개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홍콩인 직원들을 믿었지만 부임 초기만 해도 믿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많아서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실제 가보니 이 매장도 결국 마찬가지였는데,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홍콩에 매장들을 정식으로 운영해서 그곳을 방문하는 홍콩인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Serial Number로 확인된 결과에 의하면 이 유통에 판매한 제품이 중국 밀수 시장에서도 발견됐으니 결국 이 유통도 홍콩 시장을 대상으로 정상적 로컬영업도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부 물량들은 중국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들이 중국으로 물량을 넘긴다는 것도 사실 100% 밀수라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애매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곳의 손님들은 대부분 중국 관광객이나 보따리상인데이들이 이 매장에서 제품을 한 개 또는 서너 개 구매한 후에 중국으로 배송해 달라고 하면 이 매장이 단골처럼 이용하는 밀수업자를 통해 중국으로 배송해 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제품을 중국에서 받아서 본인이 직접 사용하지 않고 중국 시장에 되팔기도 하니 중국 밀수 시장에서 홍콩 제품 Serial Number가 발견되기도 했던 것이다.
인구 750만의 작은 홍콩에서 판매되는 소형 전자제품의 반 이상은 홍콩을 방문하는 년간 수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 그리고 보따리상들이구매해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사람들에게 홍콩의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당연히 정상적인 판매 행위였다. 하지만 예를 들어서 어떤 관광객이 홍콩의 매장에서 4개의 제품을 사서 1개는 직접 가져가고 나머지 3개는 중국으로 배달해 달라고 해서 실제 배달을 해주었다면 이 거래선을 밀수 거래선으로 규정하고 거래를 중단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꽤 애매했다.
이런 경우와 유사하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다른 것 같기도 한 특이한 유통도 있었다. 법인 영업부서에서 보고한 판매 방식이 좀 특이한것 같아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확인했던 거래선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역시 전술한 거래선 판매 상황처럼 직접 제품 판매 현장을 보고서도 밀수 거래선인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매우 애매했었다.
이 유통은 Emax라 불리는 13층짜리 쇼핑몰의 2층에 있던 유통이었는데, 어느 일요일 가장 가까운 전철역 Kowloon Bay 역에서 내려서 걸어서 찾아갔다. 그런데 오후 약 1시경 찾아갔음에도 아래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거리에 사람이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홍콩 도심에 이렇게 적막한 동네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너무 인적이 없으니 은근히 겁까지 나기도 할 정도였다.
사진) Kowloon Bay 역에서 내려서 Emax로 걸어가는 길. 인적이 전혀 없다. (2010. 1월)
그런데 Emax 건물 앞에 도착하니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와 전혀 달리 단체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이 건물 앞에 온통 가득했고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려서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Emax 안 매장으로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온 관광객이었지만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그 많은 버스들 중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탄 버스도 있었다. 그런데 대낮이었음에도 점심에 이미 한잔을 과하게 했는지 술냄새를 풍기는 한국인들이 많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다리가 풀린 채 갈지자로 걷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상단) Emax에서 건물 앞 관광버스를 찍은 사진
하단) Emax를 찍은 사진. 우측 붉은색 건물이 Emax인데, 건물 아래 관광버스들이 보인다.
한편, Emax 주변 거리에 인적이 그토록 드물었던 것으로 볼 때, 이 Emax 안의 상가들은 거의 전부가 이처럼 관광객 가이드들이 데려오는 손님을 주 고객으로 영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언론에도 이미 몇 차례 노출되기도 했지만 가이드가 안내를 해 주는 매장에서 관광객들이 제품을 구매하게 되면 가이드는 일정 수수료를 그 매장에서 받곤 했었다. 따라서 가이드는 자신들에게 그런 컴미션을 좀 더 주는 매장으로만 관광객들을 인도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관광객들이 구매를 적게 해서 가이드들이 받는 수수료가 줄어들게 되면 가이드가 그 분풀이를 관광객에게 노골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홍콩 가이드들의 그러한 행태가 중국 언론에 보도되어 큰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나도 그들과 같은 관광객인 척하고 건물 2층에 있던 전자제품 매장에 들어가 봤다. 가 보니 여기도 역시 수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관세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홍콩의 전자제품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판매도 결국에는 홍콩으로 온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상적인 판매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관광객이 구매한 제품이 많을 경우에 요청하면 중국으로 배송해 주는 방식도 취하고 있어서 역시 밀수 거래선 여부를 판단하기가 애매했다.
한편 이 건물에서는 꽤 놀랐던 일도 있었는데, 매우 넓고 큰 건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2층 경우 출입구가 오로지 하나였다. 판매 현장을 이미 다 확인하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건물 1층으로 가려는데, 마주치는 출입구마다 모두 봉쇄되어서 지나갈 수가 없었고 마지막에 찾은 오로지 단 한 개 출입구만 개방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에서 무언가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 출입구만 지키고 있으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러한 구조였던 것이다.
부임 초기 법인에 험한 일들도 종종 있었던 시절이고, 또한 때로는 섬찟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 밀수현장이라는 생각을 하고 가서 그런지 그렇게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열린 출입구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덜컥 겁이 나기도 해서 서둘러도망치듯이 그 출입구를 빠져나와 허겁지겁 1층으로 뛰어 내려갔던 기억도 있다.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내가 부임한 직후 밀수 근절을 적극 추진해서 거래선뿐만아니라 심지어 법인의 현지인 직원들로부터도 이런 정책에 대해서 심하게 불평을 받고 있던 실정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사실 홍콩의 치안도 숫자로 나타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곳만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 보니 Emax 2층은 이제 거의 대부분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과거 그곳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했던 매장들은 이후 대부분 철수했던 것 같은데그 당시 긴장과 호기심 속에서 돌아다녔던 그 공간도 이젠 흘러간 과거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게 된 셈이다.
한편 홍콩 시장의 이런 전통적인 밀수 특성을 오히려 적극 영업에 활용하는 제조업체들도 꽤 있었다. 즉 중국 본토에 직접 판매하기에는 유통, 자금 회수, 규제, 규격등등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 중국에 직접 판매하기보다는 홍콩에 제품을 판매하고 이후에 잘 발달된 홍콩의 밀수 경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그 제품들이 흘러가게 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중국의 분유 품질 불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중국에서 판매되는 분유를 불신하는 중국인들이 홍콩에 와서 분유를 대거 구매해서 전 세계 유명 분유업체의 홍콩 판매량이 대폭 늘었던 경우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결국 이 분유업체들 중 일부는 중국의 다양한 규제나 수입 장벽으로 중국으로 직접 수출하지는 못했었지만 홍콩의 오래되고 잘 발달된 밀수 시장을 이용해서인구가14억이나 되는 매우 큰 중국 시장에 상당량의 분유를 판매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애플 또한 중국에 신 모델이 정식 도입되기도 전에 홍콩에 판매된 아이폰 중 엄청난 양의 아이폰이 중국으로 밀수되고 있었으니 실질적으로 중국에 제품을 도입하기도 전에 이미 간접적으로 중국 판매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애플 또한 홍콩의 그런 밀수 시장을 나름대로는 즐기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이와는달라서 법인의 판매 실적이 중국법인과 홍콩 법인 간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홍콩 시장을 통해서 중국으로 물량이 넘어가는 경우 중국에 있던 법인들의 반발과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런 반발과 비난에 시달리다 보니 밀수되는 경우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연히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넘어가는 밀수 구조에 대해 보다 많이 공부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밀수 구조를 꿰뚫고 있다 해도 전술한 것처럼 정상 판매와 밀수가 뒤섞여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일부 물량이 중국으로 흘러갔다는 것을 인지했어도 그것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가않았다.
결국 그러지 않아도 해외 법인장이라는 자리가 시어머니도 참 많고 또문제가 생기면 독박 쓰기 좋은 자리로 스트레스 역시 항상 껌딱지처럼 꼭 껴안고 살아야 했던 자리였는데, 홍콩 법인장 자리는 홍콩과는 결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바로 그 밀수 덕분에 스트레스를 하나 더 안고 살아야 하는 그런 숙명을 갖고 있는 자리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