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회의라면 질색이어서 회사 규정상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 회의 이외에는 일체 회의를만들지도 주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법인 각 부서 부서장들은 나와 달라서 회의가 꼭 필요했었는지 그들이 주관해서 진행하는 회의가 꽤 많았다.
그런데 회의들이 그렇게 많다 보니 회의실은 항상 부족해서 부서 간 회의실 쟁탈을 위한 신경전이 벌어질 만큼 회의실 확보가 어려워지기도 했었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법인의 매출이 3~4배 이상 지속 늘어나고 이에 따라 직원들도 2배 가까이 증가하면서 날이 갈수록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결국 회의실을 확보하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볼 때는 충분한회의실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내 방을 비워주고서 그곳에서 회의를 하게끔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임시방편으로 근본적인 회의실 부족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당시 관계사 임원이 사용하던 꽤 큰 방 하나가 우리 법인에 남아 있었는데 그 관계사가 중국의 심천으로 완전히 이전하게 되면서 그 방이 비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그 방을 2개로 나누어 회의실로 개조했고 그 결과 법인의 회의실은 대회의실 포함 기존 4개에서 6개로 늘어회의실 부족 관련 다소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이 그때 회의실 공사를 할 때 모습인데, 2010년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날인 12월 26일 일요일에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는 5시경 퇴근하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2010년말에 홍콩의 법인 사무실에서 이 사진을 찍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2021년 1월이 되었으니 그 사이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후다닥 흘러버렸다.
사진) 회의실을만들 공간을 정리해둔 모습 (2010. 12월)
하지만 이후에도 매출은 지속적으로 더 늘어났고, 늘어나는 매출에대응하기 위해 직원역시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더 충원해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제는 사무 공간이나 회의실 모두 기존의 33층 그 공간만으로는 도저히더 이상 대응할 수 없는 한계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좀 더 넓은 사무실 공간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같은 건물 43층에 빈 사무 공간이 생겨서 그곳을 추가 임대해 33층의 인력 상당수를 그곳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33층이나 추가 임대한 43층이나 직원들 책상 간격도 기존 대비 훨씬 더 여유 있게 넓힐 수가 있었고 회의실도이제 2개 층을 합치면 모두 10개가 넘어 회의실 부족으로 인한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회의가 참 많았다. 회사 경영진도 그런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회의 간소화를 수십 년간에 걸쳐 여러 차례 회사의 혁신 과제로 추진해 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과다한 회의 문제는 내가 그 회사에 막 입사했던 신입 사원 시절부터 임원이 될 때까지 그 오랜 기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회사의 너무 많은 것들이 엄청나게 변하기도 했지만 유독 변하지 않았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면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회의였던 것 같다.
사진) 홍콩 법인 남자 화장실 (2011. 12월)
화장실에서 이러한 사진을 도대체 무슨 생각에 왜 찍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쨌든 특이하게도 법인 남자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스스로 찍은 이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한편 사진 속의 이 화장실에도 나름대로 얽힌사연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장실 변기가 막혀서 물이 넘쳐 이따금 화장실이 난장판이 되는 것이었는데, 법인이 입주해 있던 이 건물 자체가 다소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화장실 변기가 그렇게 막히는 경우가 의외로 꽤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변기가 막히게 되면 좀 특이한 일부 홍콩인 직원들은 그 원인을 변기 자체나 자신들에게서 찾았던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외부에서 찾기도 했다. 즉, 신 모델 테스트를 위해서 몇 주 또는 몇 달씩 출장 와서 일하고 있던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한국 식당에서 김치를 많이 먹고 법인 화장실에서 변을 봐서 그렇게 막히게 되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곤 했던 것이었다. 황당하지만 김치의 질긴 섬유질로 변기가 막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 생각이었다.
법인의 홍콩인 남자 직원이 최소 250명 이상 됐고 출장 온 한국인 엔지니어들은 많을 때도 고작 5~6명 정도였는데 그 5~6명이 일 년 내내 화장실 문제를 반복 야기시킨다고 남 탓을 했던 셈이다.
당연히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쨌든 변기가 막히는 그처럼 단순하고 사소한 현상에 대해서조차도 낡은 변기그 자체에서 답을 찾으려하기보다는, 다른 민족이나 다른식성과 연결시켜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의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새삼 깨우치기도 했었다.
한편 위 사진 속 화장실은 일반 화장실이고 이 화장실 바로 앞에는 VIP용 개인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당시 법인에서는 내가 직급이 가장 높은 법인장이었으므로 만일에 그 VIP용 화장실을 누군가 개인적으로 사용해야 했다면 실제 이전의 법인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당연히 내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화장실까지도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화장실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일반 화장실을 사용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부 젊은 남자 직원들이 그 VIP용 화장실을 마치 자신의 전용 화장실처럼 사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그런 행동을 보니 좀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마침 인사과장으로부터 평소 들어왔던 직원들의 고충 중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문제들이 떠올랐고, 인사과장과 협의해서 그 화장실을 그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전환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즉, 출산해서 아이를 막 갖게 된 여직원들은 넘쳐나는 젖을 처리할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그리고 또 법인의 직원 중 유일하게 제복을 입고 근무해야 했던 안내 데스크 근무 여직원은 제복으로 환복할수 있는 공간을 오랜 기간 기대해 왔는데 마침 상하수도 시설까지 이미 완비되어 있는 VIP용 개인 화장실을 간단한 일부 보완 공사를 거쳐 그런 용도로 개조해 사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바로 개조 공사에 착수했고 공사가 완료된 이후에는 출산한 여직원 그리고 안내 데스크 여직원에게만 그 화장실 열쇠를 주어 그간 개인 전용 화장실처럼 사용해오던 남자 직원들은 더 이상 그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실 이미 오래전에 그러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어야만 했던 일이었지만,전술했던 것처럼 직원수가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여서 법인 내부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던 일이었는데, VIP 화장실의 이러한 개조로한 번에 두 건의 오랜 숙제가 해결되었던 셈이다.
이 숙제 해결 덕분에 여직원들 사이에서 내 인기가 그래도 조금은 올라간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던것 같은데, 어쩌면 왕따 당하기 십상인 고독하고 외로운 법인장만의또 다른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위 사진을 보면 홍콩처럼 무더운 아열대 지방에 있는 사무실에서 내가 잠바를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홍콩인들은 냉방을 지나치게 강하게 가동하는 경우가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그런 실내에 오래 앉아 있으면 추울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아열대 지방의 사무실에서도 나뿐 아니라 홍콩인들 역시 잠바나 외투 같은 것을 껴입고앉아 일하는 다소 황당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왜 굳이 비싼 전기값까지 지불해 가면서 춥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춥다고 옷을 껴입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아래 기사에 언급된 설명처럼 차가운 공기가 더욱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그런 인식을 홍콩인들이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법인 사무실의 한쪽 구석에는 약 15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Canteen도 있었다. 이 공간에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자판기, 커피포트 등 도시락 먹는데 필요한 간단한 장비와 식사하면서 볼 수 있는 TV도 구비되어 있었는데, 외부에서점심을 먹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이 공간에서 TV를 보며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 먹는 직원들도 항상 약 10여 명 정도는 있었다.
사진) 법인 사무실에 있던 Canteen과 그곳에서 보이는 홍콩의 경치 (2010. 10월)
어쩌다, 정말 어쩌다 나도 점심에 이 Canteen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 옆에 앉아 TV를 보며 식사하던 직원들 모습을 볼 때는 비록 도시락 속의 음식은 한국에서 보았던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들을 나누며 식사하는 그런 모습이 과거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을 때의 그 모습과 너무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볼 때는 홍콩인이나 한국인이나 역시 사람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식사할 때만은 홍콩인 또는한국인으로 구분되지 않고 그저 모두 다 같은"점심 먹는 직장인"으로만 보였다.
점심을 이곳에서 먹었던 경우도 드물었지만 더더욱 저녁을 이곳에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 아침은 매일같이 이곳에서 먹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새벽 5시까지 출근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계신 본사 회장님께서 한때 아침 6시에 출근하시던 시절이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6시에 출근하시면 임원들은 적어도 1시간 먼저 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경영진의 해석 때문에 전 세계 전 임원이 5시까지 출근해야 했던 것이다.
새벽 5시경 법인 주변에 밥 먹을 곳은 당연히 없었고, 결국 전날 준비한 간단한 도시락을 지참하고 사무실로 출근해 이 Canteen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고는 했었다. 얼마나 그런 생활을 했는지는 이제는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짧지 않은 기간 그렇게 5시까지 출근을 하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한편 동일한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뭔가 개선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는데, 내 경우도 처음에는 국물 없이 도시락만 데워 먹다가 나중에는 입구가 넓은 컵에 쉰 김치와 된장을 풀고 미역까지 조금 추가해 전자레인지에 넣고 팔팔 끓여서 도시락과 함께 먹기도 했었다. 일종의 즉석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셈인데 얼떨결에 우연히 탄생하게 된 사이비 김치찌개였지만 그 맛이 나름 칼칼하고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Canteen 곳곳에 배어있을 그 김치찌개 냄새로 홍콩인 직원들은 꽤나 고생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미안했던 일들이 참 많이 보이는데, 이 일도 그중 하나로 주변에 큰 민폐를 끼쳤던 일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당시 그 찌개를 끓여 먹던 컵은 지금 서울에서도 사용하고 있는데 아래의 사진에 보이는 컵이 바로 그 컵이다. 적어도 7~8년 이상은 사용해온 오래된 컵인 셈인데 매우 탄탄해서 그런지 지금도 아무 이상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사진) 전자레인지로 김치찌개 끓일 때 사용했던 컵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역시 한 때 7시까지 출근해야 했던 시절이 있어 너무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홍콩에 오니2시간이 더 당겨져서 이제 아침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새벽 5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경우를 다시 한번 체험해야 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직장 생활을 버텨가면서꽤나 다양한 경험을많이 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한편 당시 직원들은 9시까지 출근이었으므로 내가 출근한 5시부터 직원들이 출근하는 9시까지는 무려 4시간의 시간 공백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적막한 4시간의 공백이 사실 꽤 많은 일들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었던 그런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5시 출근으로 몸은 너무나도 힘들고 피곤했지만 업무적으로는 그 시간이 꽤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했는데 아마도바로 그런 이유로 경영진이 임원들은 5시까지 출근하라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해도 또다시 5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면 정말 너무나도 싫고, 남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그렇게한밤중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일만은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시 홍콩 법인에서 사무실로 방을 사용했던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는데 바로 법인장이었던 나였다. Canada 법인에 근무할 때는 직급이 과장만 돼도 자신만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당시 Canada 법인 직원수가 홍콩 법인보다는 훨씬 적었음에도 Canada 법인에는 사무실로 사용되는 방이 무려 20여 개 정도나 있었다. 그렇지만 홍콩 법인에는 총원이 500여 명이나 되었음에도 방은 오로지 딱 하나였던것이다.
그런데 사실 홍콩 기업도 Canada에서처럼 간부들에게는 방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기존의 33층에 이어43층을 추가로 임대하면서 법인 사무실 내에 여유 공간이 생기자 4명의 홍콩인 Director급에게는 별도 방을 만들어 주려고 추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회사 규정상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진행 중에 알게되었고, 따라서 방을 제공해 주려는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차선책으로 Director들 좌석은 좀 더 넓게공간을 배정해 좌석 옆에 3~4명이 앉아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작은 탁자도 마련해 주었고 또 칸막이도 훨씬 높은 것으로 바꾸어 마치 별도의 방안에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방은 제공하지 못해도 그나마 그렇게 해서라도 현지인들의 사기를 북돋아 현지인들이 좀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생각에서 취한 조치였는데, 홍콩인 Director들은 기존 좌석과는 꽤 차이가 나는 그러한 새로운 공간에 매우 만족했었고 그렇게 만족해하는그들을 보니 나 역시도 만족스러웠었다.
한편 홍콩에는 우리 같은 민간 기업 외에도 한국 공기업의 해외 지사들도 일부 있었는데, 이런 공기업 해외 지사 경우 우리 같은 민간 기업과 다르게 과장급만 돼도 자신의 방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볼 때는 우리의 현실을 그들의 현실과비교하게 되면서 적지 않은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사진) 홍콩 법인장 방. 당시에는 법인에서 유일한 방이었다. (2014. 5월)
위 사진 속 방이 내가 사용했던 법인장 방이었다. 홍콩 법인 근무 5년 6개월여 기간 줄곧 이 방에서 근무했었는데 내가 부임하기 전에는 이 방은 항상 닫혀 있었고 전임법인장이 열쇠를 갖고 다니며 퇴근할 때는 잠그고 다녔다 한다.
그리고 그런 관행이 정착되어서 그런지 직원들은 이 방에만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문을 닫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문을 열어 놓으라 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공간인데 직원들에게 뭐 숨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문을 닫을 이유가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근무 시간뿐만 아니라 외출이나 퇴근할 때도 방 문을 열어 놓고 다녔다. 방 문이 그렇게 항상 열려 있으니 내가 외출하거나 퇴근한 후 회의실이 부족할 때에는 직원들이 이 방에서 회의를 하기도 했었다.
또 원래 이 방 문 옆에는 법인장의 비서가 앉아있는 자리도 있었다. 하지만 부임 이후 비서 보직을 아예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비서를 총무과로 보내 그 부서에서 법인 전체 일을 하게 했다. 비서가 있으면 직원들과의 소통에 한 단계를 더 거쳐야만 해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던 부정적인 경우를 임원이 되기 전 사원 시절에 너무나도 많이 봤었기 때문이었다.물론 직원수가 수만 명이나 수십만 명쯤 되면 비서가 필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 법인처럼 직원이 몇백 명 밖에 되지 않던 조직은 그런 거대 조직과는 상황이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다녀야 했던 출장용 항공 티켓도 내가 직접 인터넷에서 노선을 찾아 확정한 후에 발권만 총무과에 부탁했다. 항공 노선이 꽤 다양해 비서가 찾아서 내 의견을 물으면 반복적으로 바꾸라고 하는 경우를 사원 시절에 역시 너무도 흔하게 봤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노선을 본인이 직접 결정하면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일인데 그렇게 여러 차례 수정하는 것을 반복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고 실제 나는 홍콩 법인 부임 이래로 5년 반 동안 항공 노선은 모두 내가 직접 정했다.
당시 회사 임원은 출장 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 경우 한국과 워낙 가까워 한국에 출장 가거나 또는 중화권 안에서 출장 다녀도 아무리 오래 걸려도 3시간 안에는 대부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거 중남미에 출장 다니거나, 캐나다나 프랑스에 근무할 때는 항공 이동 시간이 무려 10시간 이상으로 너무도 길어 그 당시는 사실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매우 간절했었다.
하지만 이처럼 3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짧은 거리는 비록 내 개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격차가 그렇게 크게 발생하는 실정에서 굳이 비즈니스를 이용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항상 이코노미 좌석을 예약해서 출장을 다니곤 했었다.
그렇게 비즈니스를 탈 수 있음에도 이코노미만 계속 타다가 보니 재미있는 경험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루는 관리담당이 오더니 항공원 관련 자기 부서 직원이 혹 실수한 것 있으면 몰라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내가 비즈니스 좌석으로 항공 노선을 정해 예약하라고 한 것에 대해 총무과 직원이 법인 재무 책임자인 관리담당에게 법인장이 갑자기 비즈니스로 예약하라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이냐고 다시 물어봤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코노미는 자리가 없어서 부득이 비즈니스로 예약을 하라고 했던 것인데, 내가 항상 이코노미석만 타고 다니니 총무과 직원은 법인장도 다른 직원들처럼 비즈니스는 결코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이 굳어 있었던 것이었다.
사진) 법인장 방에서 보이던 멋진 경치. 사진 속의 바다가 빅토리아만이고, 건너편 육지가 구룡반도다. (2009. 2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법인장 사무실 창밖으로는 홍콩의 멋진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이 사진을 찍은 시점은 2009년 2월 부임 초기로 아직 법인에 문제가 너무도 많이 남아있어 몹시 심란하고 힘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과 달리 사무실 창밖 경치는 무심하게도 너무 평온하고또 아름다워 보인다.
한편 이 사진 속에는 모니터와 그 옆에 카메라 같은 장비도 보인다. 바로 화상 회의 장비였다. 그런데 이 장비는 의외로 꽤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화상 장비를 통해 한국 본사 또는 중국 본사 등과 수시로 회의를 해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당시 우리 회사에는 회의들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그 시절의 회의는 그 단어의 문자적 의미 그대로 상호 간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전혀 아니라, 대부분 회의를 주관하는 고위 임원이 법인별로 실적을 점검하고, 독려하고 또 질책하는 그런 회의였다. 따라서 회의 중 지적을 받거나 망신당하거나 또는 비난받는 경우, 아니면 이런 세 가지가 모두 한꺼번에 발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그러다 보니 회의에 대해 알레르기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화상 회의 장비가 도입된 이후에는 그 지긋지긋하게 많은 회의가 훨씬 더 많아졌다. 왜냐하면 굳이 베이징이나 서울로 출장을 가지 않고도 이 화상 회의 장비를 통해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하는 회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회의를 좋아하는 고위 임원들은 수시로 이 장비를 통해 해외 법인들과 회의를 하자고 했고 그래서 회의를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장비는 원망스럽고도 공포스러운 그런 장비로 인식되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한 전설적 회의도 당시 이 화상 회의 장비를 통해 실시되기도 했었다. 매주 한번 본사 사업부와 화상으로 진행하는 회의였는데, 정말로 놀랍게도 이 회의는 전 세계의 50개도 넘는 해외법인이 모두 동시에 참석하는 회의였다. 국가마다 시차가 다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가능했다. 시차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즉, 한국 본사 시간 기준 저녁 6시에 회의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홍콩은 저녁 7시였다. 다시 말하면 퇴근 후의시간인 저녁 7시에 공식적인 회의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홍콩은 그나마 한국과의 시차가 적어 그렇게 심하게 곤란한 시간은 아니었다. 저녁 7시를 넘어서 근무하는 경우는 이런 회의 참석 말고도 사실 이미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울이 6시면 예를 들어 미국에 있는 법인은 한밤중 3시였는데 그 시간에 회의에 참석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매주 한번은 참석해야 했던 것이다. 역시 미국과 비슷한 시간대에 있는 중남미 법인들도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 지역에 있던 법인 주재원들에게는 매주 밤 3시에 회의에 참석해야 하니 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이었을 것이고 솔직히 좀 미친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시절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는지 그런 황당한 주간 회의는 그럼에도 변함없이 한동안 매주 반복되었다.
사진 속 저 화상회의 장비를 다시 보니 당시의 그 대단했던 전설적 회의의 기억도 새삼 다시 떠오른다....
사진) 사무실 내 자리에서 찍은 사진 (2011. 2월)
위 사진이 홍콩 법인 내 자리에 앉아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하지만 사실 근무할 때 저렇게 양복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근무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고 일종의 연출한 모습을 찍었던 사진이다. 휴일에 출근해서 일하다 보니 왠지 홍콩 법인 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한 장 정도는 사진으로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불쑥 들었고 마침 출근했던본사 엔지니어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이다.
휴일에 출근했으니 복장은 당연히 샌들에 반바지였는데,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무실 옷장에 있는 평상시에는 좀처럼 입을 기회가 없던 양복 상의를 꺼내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찍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나올 상반신 부분만 그렇게 연출했고, 사진에 나오는 않는 허리 아래 부분은 반바지와 샌들 차림 그대로였다. 즉, 상의는 넥타이까지 한 정장 양복 모습이지만 아랫부분은 그와 정반대로 펑퍼짐한 반바지와 맨발에 샌들 차림이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2011년 초면 정말 골치 아팠던 부임 초기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이 되고 매출과 이익이 동반해서 급격히 개선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진 속 내 표정이 나름 자신 있고 꽤 밝아 보인다.
저 자리에 앉아 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고 마치 엊그제 일 같다. 하지만 역시 벌써 10년이 된 오래전 과거 일이 되어 버렸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소리도 없이 훌쩍 흘러갔는데앞으로 또 다른 10년이 흘러버리면 그때는 과연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울러 이 땅에서의 그런 10년이 앞으로 몇 번이나 반복될 수 있는 것인지.... 인간 수명이 100년이라 해도 태어나서 10년이 10번만 반복돼도 그 끝을 맺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