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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추방된 날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30)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30. 마카오에서 추방된 날


코로나 사태가 발생해서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이전인 2019년 한 해 마카오를 방문한 한국인은 약 74만 명에 달했다. 마카오 총인구가 66만 명이라 하니 마카오 인구보다 많은 수의 한국인이 마카오를 방문했었고 매일 약 2천 여명의 한국인이 마카오를 방문했었던 셈이다.


그런데 다소 특이한 현상이지만 이 숫자는 중국, 홍콩, 대만 등 인근 중화권을 제외한 순수 외국 국가 기준으로는 가장 많은 수치였다. 총인구가 우리의 2배가 넘는 일본도 그해에 마카오를 방문한 사람이 30만여 명으로 한국의 반에도 못 미쳤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우 많은 한국인이 도박, 관광 등 목적으로 마카오를 방문했었다는 말이다.


(2019년 마카오 방문객 출신국 Top 10)

https://dataplus.macaotourism.gov.mo/Indicator/VisitorsInPlace/Top10Map?year=21&lang=E


한편 마카오를 방문했던 그 수많은 한국인들 중에서 어렵게 먼 마카오까지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통관도 못하고 곧바로 추방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던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만해서는 경험하기가 쉽지 않을 그런 경우를 나는 겪어야만 했었다. 마카오에 다 도착해서 항만 입국 심사대 앞에 서 보지도 못하고 배에서 내린 직후 바로 추방당했던 것이었다.


외국에 갈 때는 당연히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여권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면 우선 출국부터가 불가능하다. 출국 시 여권 검사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상의 경우 여권 없는 상태로 출국해서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여권을 지참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그런 경우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홍콩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홍콩에도 한국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ID Card'가 있는데, 이 카드에는 IC 칩이 내장되어 있어 홍콩에서는 이 ID Card만 있으면 여권 없이 출입국 수속이 모두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이 홍콩의 공항이나 항만에서는 여권처럼 사용되기도 것이다.


사진) 홍콩 ID 카드. 한국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신분증이나 IC 칩이 내장되어 출입국 등의 업무 처리가 가능했다.


물론 홍콩인들외국에 도착해서는 여권이 있어야 입국이 가능하니 해외 국가를 방문하려면 당연히 여권을 지참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마카오처럼 홍콩과 꽤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지역은 상호 간 협정에 의거 홍콩인은 ID 카드만으로 마카오 입국 수속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홍콩인이라면 홍콩 출국부터 마카오에의 입국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서 여권이 필요 없었고 그저 주민등록증만 갖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편 홍콩에 장기간 거주하는 외국인 주재원들도 이러한 ID 카드는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권이 없는 주재원들의 ID 카드는 홍콩 출국 시에만 사용이 가능했고 마카오에 입국할 때는 홍콩인의 ID 카드와 달리 사용할 수가 없어서 원래의 여권을 사용해야만 했었다.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발급한 ID 카드는 홍콩 정부가 발급을 하고 사용을 허락한 것이니 당연히 홍콩에서만 사용될 수 있었으며 홍콩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 지역 관할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출입국 서류인 여권을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홍콩 ID 카드를 사용해서 출국하거나 입국할 때는 너무나도 편리했다. 심사대 앞의 긴 줄에 서 있을 필요도 전혀 없었고 그저 출입국 등록 기계 앞으로 가서 홍콩 ID 카드를 삽입 후 화면에 지문만 찍으면 그걸로 수속이 완료됐다. 모든 수속 완료에 30초도 안 걸리는 매우 편리한 제도였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제도가 불행히도 때로는 주재원과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혼선과 시련을 야기할 수도 있었다. 즉, 여권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출국해 버리는 너무 황당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저 홍콩 ID 카드만으로 출국 과정을 처리하니 여권을 깜빡 잊고 와도 그런 사실을 출국 과정에서 검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홍콩에 부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주재원들이 이처럼 여권을 깜빡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오는 실수를 종종 했는데, 그런 경우가 빈번하다 보니 신임 주재원들과 함께 출장 갈 때는 홍콩 공항 출국 전에 여권을 가지있는지를 매뉴얼상의 절차처럼 한 번씩 챙겨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챙겨보면 적어도 1년에 1~2명 정도는 그 시점에 '아차!'라고 탄식하는 주재원들이 있었다. 결국 주재원은 누군가 대신 여권을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항공기나 배를 타고 목적지로 출발해야 했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한번 더 점검해준 덕분에 여권도 없이 중국이나 한국에 도착하는 사태까지로 문제가 더 악화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니 그 주재원들은 내게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예를 들어 홍콩에서 항공기 타고 몇 시간을 이동 후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 앞에 섰는데 그제야 홍콩에서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면.... 눈이 캄캄하고 정말로 울고만 싶을 것이다.



그런데 홍콩 법인 역사상 여권도 없이 출국해버린 첫 번째 실제 사례가 결국은 발생했다. 그리고 그 사례의 주인공은 황당하고 창피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임 주재원들의 여권까지도 대신 챙겨줄 만큼 자신만만했던 나 자신이었다.


그동안은 공항에서라도 뒤늦게나마 여권을 지참하지 않은 것을 인지하고 여권을 기다려서 받은 후에 출국해 목적지에 여권 없이 도착하는 불상사까지는 전혀 없었다. 반면, 나의 경우는 출국 마지막 시점에서도 그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여권 없이 그대로 출국해 버린 것이었다.


당시 나는 홍콩인 Director와 함께 마카오를 방문하기 위해 홍콩에서 출발했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는 아래 블로그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Sheung Wan 지역 Shun Tak 페리 터미널에서 고속 페리를 타면 약 1시간 정도면 도착했다.


(홍콩에서 마카오 배로 이동하기)

1. https://m.blog.naver.com/skrowe67/221515056683

2. https://m.blog.naver.com/acegia/221282962825


외국인들이 마카오로 이동할 때는 이 페리 터미널에서 배에 타기 직전에 여권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전술했던 것처럼 홍콩에 장기간 근무하는 외국인 주재원들은 홍콩 ID 카드가 있기 때문에 여권을 사용하지 않고 출입국 등록 기계에 ID 카드를 삽입 후 지문만 스캔해 간단히 출국 수속을 마쳤다. 그날도 나는 역시 그렇게 출국 수속을 완료하고 페리 위로 올라 자리에 앉아서 홍콩인 Director와 마카오에서의 일에 대해 열심히 협의하고 있었다.


잠시 후 배는 출발했고 어떻게 인지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약 30분쯤 지나 홍콩과 마카오 딱 중간쯤의 바다에 도착했을 때야 여권을 지참하지 않고 왔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지하게 되었다. 순간 하늘이 갑자기 노랗게 보이는 것 같았고 정말 울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위에서 배를 홍콩으로 돌리자거나, 아니면 나만 내려달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전혀 아니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결국 마카오 항구에 도착해도 어차피 입국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앉아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배안의 내 자리에 앉아서 30분을 마냥 더 갈 수밖에 없었다. 입국이 안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 마음이 참으로 답답하기만 했는데 방금 전까지는 시원하고 푸르게만 보였던 창밖의 남중국해 바다도 이제는 갑자기 우중충하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혹 나와 같은 바보가 많지는 않었어그래도 과거에 있었을 수도 있으니 마카오 정부에서 이러한 황당한 경우에 대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해서 같이 간 홍콩인 Director처럼 홍콩 ID 카드만으로 나 역시 입국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보기도 했었다.


마침내 배는 마카오 항구에 도착했고, 일단 나도 남들처럼 입국 수속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나가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을 만나서 여권이 없다고 사정을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한번 힐긋 쳐다보더니 입국장의 구석 끝에 보이는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라고 했다.


그 사무실 창구 앞에 가서 내가 영어로 우선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홍콩인 Director가 유창한 광둥어로 좀 더 부연 설명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소 직원의 덤덤한 표정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고 그저 어떤 종이 위에 뭔가를 적은 후 도장을 '쾅' 찍어 내게 건네주고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가는 배 타는 곳을 알려주면서 홍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입국이 허용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1시간을 소모해 마카오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하고서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1시간을 쓸데없이 소모해가며 홍콩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좀 허망하기도 했다. 아울러 수십 년간 해외 영업을 해왔던 해외 주재원 그것도 법인장이라는 사람이 여권도 없이 출국해서 도착하자마자 추방당한다는 현실부끄럽고 한심하고 좀 우습기까지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다른 방법은 없었고, 함께 간 Director와는 허망한 분위기 속에서 작별을 하고 나는 홍콩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서 터미널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내게 건네주었던 종이를 펼쳐보니 그 종이에는 '입국 거부'라는 도장과 함께 그 밑의 사유란에는 '합법적 입국 서류가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결국 여권이 없어 입국이 거부됐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망신살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배를 타려는데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갖고 있던 내 홍콩 ID 카드를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배의 승무원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홍콩에 도착한 이후에 ID 카드를 돌려주는 것이 규정이라고 했다. 바다 한복판임에도 마치 내가 밀입국자나 또 범죄자처럼 어딘가로 도주할 것을 걱정하는 그런 분위기였던 셈이다.


결국 내 ID 카드는 배가 홍콩에 도착하기까지 약 1시간여나 승무원이 갖고 있었는데 심지어 홍콩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승무원은 내 ID카드를 내게 바로 돌려준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입국 심사장까지 따라와서 그곳에 있던 경찰관에게 내 ID 카드를 전달했다. 역시 그것이 규정이라는 것으로 이것 또한 완전히 범죄인 취급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정작 그 경찰관은 내 ID 카드를 받은 후에는 나를 슬쩍 훑어보더니 한마디 질문이나 말도 없이 내게 돌려줬다.


그렇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서 돌려줄 것이라면 차라리 승무원이 내게 바로 돌려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니 그 규정대로만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런 온갖 수모를 모두 겪어가면서 홍콩 터미널을 빠져나오니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결국 그날 하루는 그렇게 아무 일도 못하고 그저 마카오와 홍콩 사이를 왕복만 하면서 밀입국자로 취급받는 망신까지 당하면 허망하게 날렸다.




그런데 사실 돌이켜보면 이러한 범죄자 취급을 받았던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오래전에 신입사원 시절에도 이미 겪었던 바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중남미 지역의 수출 업무를 담당했는데 입사 3년 차인가 되었을 때 처음 중남미 출장을 가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 여행이나 출장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이 출장이 내게는 해외의 국가를 방문하는 첫 번째 경험이었고 게다가 비행기를 타보는 것부터 이때가 처음이었다.


학창 시절 서울의 대척점은 남미 우루과이 앞바다라고 배운 기억이 있다. 즉, 중남미가 한국에서는 거리상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지역이란 의미다. 그리고 그토록 멀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중남미로 가는 직항 노선은 당시 없었고, 중남미 국가출장 가려면 우선 미국 남부에 있는 공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중남미로 가는 항공기를 갈아타야만 했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인들이 해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그 시절, 중남미로 가는 한국 출장자들이 미국 공항에 내려 항공기를 갈아타는 과정에서 헤매다 길을 잃고 항공편을 놓치는 경우들이 이따금 발생했었다. 그러다 보니 환승할 항공기를 놓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생기게 됐는데 바로 나처럼 처음으로 해외 출장 가는 신입사원들에게는 선배들이 아예 미국 비자를 못 받게 하는 것이었다.


원래 미국 비자가 없으면 미국행 항공기에 탑승할 수 없고 입국도 안된다. 그렇지만 중남미가 목적지인 사람들 경우는 동아시아에서 중남미로 가는 직항 노선없었으니 미국을 경유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결국 미국 정부도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예외 규정을 두어서 비자가 없어도 환승하는 조건으로 미국 공항 입국을 허용했던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먼저 가서 그곳에서 중남미행 항공기를 갈아탈 수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미국 경유보다 거리가 훨씬 더 멀었다


하지만 이처럼 환승 조건으로 미국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중남미로 가지 않고 공항에서 도주해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결국 그러다 보니 미국 공항의 관련 부서에서는 미국 비자 없이 환승해서 중남미로 가려는 사람들이 미국 공항에 도착하면 항공기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중남미행 항공기에 올라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감시하고 인솔하여 밀입국을 막으려 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조치가 의외로 나처럼 미국 공항에서 길을 잃기 쉬운 어리바리한 한국 신입사원들에게는 일종의 길 안내를 해 주는 기능으로도 작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외의 기능을 인식한 회사 선배들이 공항에서 신입사원이 실수 없이 환승하는 데에는 이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그것이 우리 회사의 관행으로 굳어졌던 것이다. 실제 공항에 내려서부터 환승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인솔해주니 그보다 더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었다.


미국 당국에서 자신들의 밀입국 방지 시스템을 멀리 한국에 있는 어떤 기업에서는 이처럼 무료 길 안내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써 오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하튼 미국의 제도를 활용해 길 잃지 않고 환승을 안전하게 수 있게끔 했던 것은 시절 우리 회사 대단한 선배님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나 역시 덕분에 공항에 내리자마자부터 공항 관리들의 인솔과 감시에 따라 이동했기 때문에 생애 첫 해외 출장이라서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던 그 와중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무사히 중남미행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감시를 받아가며 환승을 해야 할 때는 기분 나쁜 일도 당연히 있었다. 화장실 갈 때도 미국인 감시자가 따라붙었으며 누군가 갑자기 어딘가로 뛰어가면 도주하는 것으로 오인해 감시자들은 기겁을 했다. 열 살쯤 돼 보이는 한국인 어린애가 아무 생각 없이 공항 내 매장으로 갑자기 뛰어가자, 감시자가 놀라 전력 질주를 해서 그 아이를 다시 데려 오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공항 매장에서 뭔가를 사려했던 것인데 갑자기 뛰어가니 밀입국하기 위해 도주하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었다.


또 여권도 미국을 완전히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감시자가 압수하는데, 중남미행 항공기에 탑승해도 마카오에서처럼 본인에게 여권을 직접 돌려주지 않았항공기 승무원에게 전달한 후 승무원이 보관하다 목적지에 도착해야 돌려주곤 했다.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몰래 다시 내려서 도주하는 것 같은 아주 적은 밀입국 가능성까지도 철저히 막겠다는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규정일 것이다.


나 역시도 같은 대우를 받았는데 당시 나는 그런 규정을 잘 몰라서 중남미로 가는 항공기가 이륙하자 바로 여권을 받은 스튜어디스에게 "내 여권 돌려달라"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그 스튜어디스가 한 말이 참 재미있었는데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에도 그때 그녀가 했던 말과 표정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아주 잠시 고민하는 듯한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허공을 응시하며 여권을 '툭' 건네주고 가면서, "그래 네가 하늘 위에 떠 있는 이 비행기 안에서 뭘 어떻게 하겠냐!"였다.... 매우 낙천적이기로 유명한 중남미 사람들의 성향이 새삼 진하게 느껴지던 그런 말이었다.


한편 이러한 미국 무비자 환승 방식은 이후에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다. 테러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미국 정부가 환승 경우에도 경유 비자를 요구했고 경유 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경우에는 누군가 따라붙어 감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항에까지 갔다가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그때에야 인식하고 곤경에 처하는 경우는 내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권을 지참하지 않고서 출국까지도 했던 경우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여권 없이 출국 자체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콩 경우는 ID 카드가 여권 기능 일부를 대신했던 덕분에 여권 없이 목적지에까지 도착해 곧바로 추방당하는 난감하고도 또 한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어찌 보면 귀한 경험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당시 그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 주변에 있던 마카오와 홍콩 사람들의 표정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함께 갔던 법인의 홍콩인 Director, 마카오 출입국 사무소 직원, 입국 거부 도장 찍던 직원, 홍콩으로 돌아오는 배의 승무원, 홍콩에서 ID 카드를 받은 홍콩 경찰.... 기억해 보면 그들 모두 아무런 내색 없는 매우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들이 마음속으로는 뭔가를 꼭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뭐 이런 바보가 있지?"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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