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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도박, 호텔, 그리고....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29)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29. 카지노, 도박, 호텔, 그리고....


한국에서 도박은 불법이다. 서울 거리를 걷다가 보면 간혹 '카지노'라는 간판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이러한 곳은 모두 외국인 전용이며 한국인은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 역시 합법적으로 도박을 할 수 있는 곳이 국내에 유일하게 한 곳이 있는데 바로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강원랜드'라는 카지노다.


정선군에는 과거 유명한 탄광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한다. 하지만 80년대 말 국내 탄광 산업이 몰락하면서 폐광하는 탄광들이 속출해 정선 지역 경제가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탄광들이 있던 이 지역이 워낙 험한 산속 오지라 탄광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던 정부는 정선 경제 활성화를 위해 내국인의 도박을 허용하는 카지노를 설립하는 예외적인 특별법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특별법을 통해 카지노를 도입한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강원랜드가 직접 고용한 직원 수만도 3천 명 이상이 되며, 2019년 기준 강원랜드 매출액이 1조 5천억 원 수준이라 하니, 이 특별법 덕분에 지역 경제가 붕괴되는 것은 분명히 막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강원랜드 유치와 함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이 대신 발생하기도 했는데,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하고는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결국 정부는 강원랜드 인근 지역 주민에 대해서는 카지노 출입을 월 1회로 제한하고 외지인에 대해서도 한 달에 일정한 횟수 이상은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선군 자료에 의하면 한때 정선군에서 자살자나 변사체로 발견되는 사람의 수가 매달 7~8명에까지 달했다 한다. 1년에 7~8명이 아니라 매달 7~8명이다.... 그만큼 폐해가 크고, 한 번 빠지면 좀처럼 자력으로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 도박이란 것을 새삼 증명하는 같은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써 정선군에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도박중독 재활 센터까지도 설립되었다. 국내 최초 내국인용 카지노가 들어선 곳도 정선이고, 그 카지노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치료 시설이 국내 최초로 들어선 곳 또한 정선이었던 셈이다.


(정선 지역 카지노로 야기되는 문제)

1.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160804/79551834/1

2. https://news.joins.com/article/22155742

3. https://m.news1.kr/articles/?3105236

4. https://www.yna.co.kr/view/AKR20210201102100005


그런데 한국에서는 강원도의 외딴 깊은 산속에 카지노가 단 하나만 들어서 있어도 이처럼 허다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서울 송파구 만한 좁은 면적의 마카오에는 무려 총 41개의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게다가 이 41개의 카지노 대부분은 그 규모가 강원랜드 몇 배나 되는 초대형 카지노들이었다. 강원랜드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큰 초대형 카지노 41개가 서울 송파구에 들어가 앉아 있는 셈이었다.


이처럼 도박이 창궐하는 곳이 마카오다 보니, 마카오 역시 강원도 정선에서 당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도박으로 인해서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를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도박 역사가 너무나도 오래된 만큼 마카오에서는 도박으로 인한 문제가 쉽게 노출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이면에는 도박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도박이라는 향락 산업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다양한 문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홍콩과 마카오 두 도시는 모두 중국 최남단 광둥성에 있고, 또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언어 역시 동일한 광둥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게다가 유럽 국가의 식민지배를 수백 년간 받아왔다가 1900년대 말 2년 간격을 두고 중국으로 반환된 공통점도 있다. 아울러 마카오 화폐는 홍콩 화폐에 고정(Peg)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 HK$ = 1.03 MOP), 홍콩의 화폐가 마카오에서 그대로 통용되기도 할 만큼 두 도시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밀착되어서 '공동 경제권'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진) 마카오 화폐. Pataca라고 불리는 이 마카오 화폐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도 역시 그대로 통용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좀 더 들여다보면 두 도시는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이라는 유럽 국가의 지배를 받는 동안 서로 너무도 다른 방향으로 도시 특성이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홍콩이 금융과 무역의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성장해서 국제 금융 허브와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발전해온 반면, 마카오는 세계 최대의 도박 도시로 성장해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두 도시가 모두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는 것에는 성공한 공통점이 있지만 그 내용과 방향이 너무도 다른 것이다.


주윤발이 등장하는 도신(賭神)이라는 홍콩 영화도 있지만 도박이 소재로 사용된 홍콩 영화가 꽤 많다. 하지만 의외로 홍콩에서는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박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오히려 한국의 강원랜드와 같이 예외가 허용되는 공간도 없다. 도박과 관련되는 홍콩 영화를 봐도 이를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공식적으로 도박하는 장소는 모두 홍콩 영해를 벗어나 공해상에 있는 선박이라든가 또는 인근 마카오로 묘사된다.


반면에 마카오에서는 도박이 합법이다. 합법일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거대한 카지노라고 불릴 만큼 도박이 창궐하는 곳이다. 마카오 GDP의 50% 이상, 마카오 정부가 거두는 세금의 약 80% 이상이 도박과 관련된 분야에서 얻어지고 있었다. 마카오에서 도박이 사라지면 당장 마카오 정부부터 존재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홍콩과 마찬가지로 중국 본토에서도 도박은 불법이다. 따라서 14억에 달하는 거대한 수의 중국인들이 합법적으로 도박을 하려면 딱 한 지역으로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바로 '마카오'였다. 그런데 도박을 즐기기로 너무도 유명한 사람들이 중국인들이다 보니 2~3천만이나 되는 엄청난 중국인들이 마카오로 매년 몰려왔고 그러한 유입이 마카오 도박 산업을 이처럼 폭발적으로 발전시켜 마카오를 전 세계 최대 도박 도시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마카오의 도박 산업 규모는 이미 2006년부터는 미국 Las Vegas 규모를 능가하게 되었다. 마카오는 이제 도박과는 더 이상 뗄 수가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도박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Las Vegas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도박 도시)

https://www.ar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624


마카오를 방문하면서 실제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마카오에 와서 도박을 하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는데 호텔의 1층 카지노에 가보면 훤한 대낮임에도 이미 도박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백인이나 여타 인종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본토의 중국어를 구사하는 중국인들이 거의 전부였다.


수천만이나 되는 마카오 방문 중국인들이 송파구 면적 만한 그 작은 마카오에서 사실 갈 곳이 얼마나 많겠는가? 카지도 이외에는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마카오 카지노 모습)

https://theculturetrip.com/asia/china/articles/where-to-gamble-in-macau-the-5-best-casinos/




마카오 도박 역사는 꽤 오래돼서 1800년대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849년에 포르투갈 마카오 정부는 세금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도박을 공식적으로 합법화시켰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즈음에 벌써 약 200개의 사설 도박장이 마카오에는 존재했다고 한다.


이제 이 도박장들은 마카오 정부에 세금을 내고서 합법적인 허가증을 받아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오늘날 같은 서양식 도박이 아니라 'Fan-Tan'이라고 불리는 중국 전통 방식의 도박이었지만 어쨌든 마카오가 도박의 도시로 들어서게 되는 길을 밟게 된 역사는 그만큼이나 오래되었던 셈이다.


(Fan-Tan 게임 구성품)

https://en.wikipedia.org/wiki/Fan-Tan#/media/File:Fan-Tan.jpg

(마카오인들이 Fan-Tan 게임하던 모습)

https://macaulifestyle.com/travel/macau/five-things-macau-guide-books-wont-tell-you/


이후 1961년에 마카오 정부가 제시한 도박 사업 독점권을 홍콩 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유명한 Stanley Ho란 인물이 주축이 된 회사에서 따냈다. 독점권을 따낸 이후에 Stanley Ho에 의해 Lisboa Casino라는 카지노 건물이 1960년대 세워졌고 이 카지노의 개장과 함께 오늘날과 유사한 서구식 카지노가 본격적으로 마카오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또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마카오 도박 산업을 보다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 홍콩과 마카오 간을 정기 운항하는 고속 Ferry도 새로 도입해 도박이 불법이던 홍콩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카오로 와서 도박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리고 실제 이 Ferry가 도입된 이후부터 많은 홍콩인들이 마카오까지 와서 도박을 즐기고 돌아가곤 했었다. 홍콩에서 마카오까지 고속 Ferry를 타면 1시간이면 도착하니 그다지 먼 거리가 결코 아니었고, 또한 홍콩인이 마카오에 입국할 때는 비자, 여권 모두 필요 없이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만 있으면 입국이 가능했으니 마카오까지 가서 도박을 즐기고 돌아오는 것이 별 부담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오늘날에는 중국인이 마카오 카지노의 주 고객이지만 과거 중국이 너무 가난해 카지노 출입을 엄두내기 어려웠던 마카오 도박 사업 초창기에는 중국인 대신 홍콩인이 마카오 카지노의 주요 고객이었던 셈이다.


Stanley Ho 회사가 마카오 도박 사업 독점권을 갖고 있던 시절 그는 마카오에 19개의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마카오를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도박 도시로 성장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마카오 도박 독점권은 2001년을 마지막으로 해제되었고 그 이후에는 Wynn, Sands, MGM 등과 같은 초대형 미국 도박 기업들이 마카오에 본격 진출하게 되면서 마카오 도박 사업은 재도약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마카오가 세계적인 도박 도시로 성장하게 되는 역사의 밑바탕과 시작점에는 분명히 Stanley Ho라는 사람이 있었고 또 그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마카오를 도박의 도시로 만들어버린 그의 업적(?)을 과연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비판은 분명히 있으며 그보다 더 심각하게는 미국이나 캐나다 언론에서 언급된 것처럼 중국의 조폭 조직 삼합회와 그가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 것이다.


즉 조직 폭력과 같은 범죄와 연관된 검은 자금을 도박 사업 확장에 적극 활용했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생각해보면 조폭 조직인 삼합회의 활동이 중화권 안에서는 가장 왕성하다는 마카오에서 그런 삼합회 조직과 연관 없이 그 거대한 도박 사업을 운영해 오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Stanley Ho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p5342&logNo=13018734510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한편 그는 순수 중국인은 아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쉽게 외모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유럽 백인으로 유태계 네덜란드인이었다. 또한 그는 1921년에 홍콩에서 태어났는데 그에게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부인만도 4명이며 그녀들과의 사이에서 모두 17명의 자식을 낳았다.


한편 특이한 사실은 1971년 당시의 관습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기 전까지는 한 남자가 여러 여인과 결혼하는 것, 즉 소위 '일부다처제'가 홍콩에서는 그 시절까지 전혀 불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50년대에 만난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은 당시에는 합법적이었으며 관습법이 폐지된 이후에 만난 3번째 부인부터는 합법적 부인으로 인정받기 어렵게 된 것이다. 한국은 해방 직후 1948년에 헌법이 제정되면서 바로 일부다처제가 법적으로 금지됐다 하는데 그런 한국의 현상과는 꽤 다른 상황이었다.


수십 년간 전 세계 최대 도박 도시의 카지노를 독점적으로 운영하면서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그 부로 인해 얻은 막강한 권력까지 누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년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뇌의 핏덩이를 제거하기 위해 뇌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후에는 후유증으로 야기된 온전치 못한 정신과 10년 이상 장기간 휠체어에 앉아 지내야 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또 적지 않은 갑부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듯이 그 역시 그가 보유한 막대한 재산의 상속을 두고 부인들 및 자녀들 간의 분쟁에 휘말리기도 해야 했었다.


그리고 그런 시련 한복판에서 그는 2020년 5월에 98세의 나이로 인생을 끝내 마감하게 되었다. 물론 그 많은 재산을 모았고 또 향유했으며, 수명 역시 100세 가까이 살았으니 장수의 축복을 누린 경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년의 시간은, 질병과 혈육 간의 분쟁 속에서 이어가야만 했으니 진정으로 축복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Stanley Ho의 인생을 보면, 돈이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코 그것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증서는 결코 될 수 없다는 평범하지만 너무 쉽게 잊는 진리를 새삼 깨우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가족 간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는 분쟁 한복판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창백한 얼굴의 휑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때로는 이 가족 말이, 때로는 또 저 가족 말이 옳다고 횡설수설하던 말년의 그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한 것 같다.


(Stanley Ho 재산 분쟁)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27/2011012700142.html


(Stanley Ho의 일생 02:05)

https://www.youtube.com/watch?v=wCu8tNG32ng




마카오에는 호텔과 같은 숙박 시설 없이 카지노만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Venetian처럼 유명 카지노는 대부분 호텔과 함께 있었는데, 이 경우 호텔이 카지노를 운영했던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카지노가 좀 더 효율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기 위한 부대시설로써 호텔을 운영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만큼 호텔 숙박업보다 카지노가 그들의 본업이었고, 또 카지노에서의 수입이 더 중요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미국 Las Vegas 카지노 호텔에 숙박했을 때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곳의 호텔은 예를 들어 방에 들어가 보면 전 세계의 여느 호텔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생수병이 전혀 없었다. 무료 생수병은 물론 유료 생수병도 없었는데 이유는 생수 사러 일단 방 밖으로 나오게 만들고 이후 생수 사러 오고 가다 마주칠 수밖에 없는 1층 카지노를 이용하도록 유인하려는 목적에서 그처럼 방안에 생수병을 비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숙박을 목적으로 하는 투숙객들에게는 꽤나 불편한 일이고 숙박을 본업으로 하는 호텔에서도 상상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Las Vegas의 호텔 경우도 마카오 호텔들처럼 숙박업이 본업이 아니고 카지노 운영이 본업이다 보니 감히 처럼 너무도 불편한 서비스를 제공할 엄두를 내기도 했던 셈이다.


한편 도박을 즐기기 위해서 마카오에까지 온 연간 수천만에 달하는 중국인들이 반나절 정도만 도박하고 당일 중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결국 마카오에는 그 수천만 명이 숙박할 수 있는 많은 호텔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는데 마카오를 찾는 중국인들 수가 너무도 많은 만큼 마카오에도 꽤 많은 호텔들이 들어서 2020년 기준으로 무려 132개의 호텔이 마카오에서 영업 중이라 한다. 서울 전체 호텔을 다 합쳐도 약 160개라 하는데, 송파구 만한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 마카오에 그렇게 많은 호텔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술한 Lisboa Casino 호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마카오 호텔들은 도박 독점권이 해지된 2000년대 이후에 마카오로 진출한 미국 도박 자본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호텔 규모가 서울에 있는 호텔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의 초대형 호텔들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나름 대형 호텔에 속하는 신라호텔 객실수가 총 464개라 한다. 그런데 이 Cotai 지역에 있는 호텔들의 경우는 그 객실수가 Sheraton 호텔 약 4,000개, Venetian 호텔 약 3,000개, Parisian 호텔이 약 2,500개 등이라고 하니 이곳에 있는 호텔들이 얼마나 큰 호텔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마카오는 마카오 반도 및 Taipa와 Coloane라 불리는 2개 섬, 즉 3개 지역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마카오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자 마카오 정부는 바다를 매립하여 지표 면적을 계속해서 넓혀갔는데 그중에 가장 큰 매립사업이 1990년대 시작된 Taipa와 Coloane 두 섬 사이를 완전히 매립하는 사업이었다.


이 매립 사업으로 Taipa와 Coloane 두 섬 사이에 있었던 바다는 완전히 사라지고 두 섬은 이제 하나의 섬이 되었다. 그리고 두 섬 사이에는 무려 약 5.9㎢에 달하는 땅이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이 땅은 두 섬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Cotai라 부르게 되었다.


이 Cotai 지역 외에도 마카오 전역에서 바다를 메워 육지로 만들어 가는 작업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그런 결과로 1912년에 11.6㎢였던 마카오 육지는 2015년에는 30.4㎢로까지 무려 2.5배 이상이나 확장되었다. 여의도의 면적이 약 3㎢라 하니 그 기간에 마카오에는 여의도와 같은 면적의 땅이 무려 6개나 만들어진 셈이었다.


(마카오 영토 매립 과정 1555~2011년)

https://en.wikipedia.org/wiki/Geography_of_Macau#/media/File:Macau_topographic_map-fr_animated.gif


한편 2001년 도박 독점권이 해지된 이후 마카오에 진출한 미국 Las Vegas의 카지노 기업들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마카오 반도가 아니라 바다를 매립하여 새롭게 탄생한 바로 이 Cotai 지역에 초대형 카지노 호텔들을 건축하여 마카오 도박 사업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로 이 Cotai 지역에는 객실 수가 무려 1천 개도 넘는 초대형 호텔들이 10개 이상이나 2000년대 이후 지속해서 들어서게 되는데,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Las Vegas에서 보던 거대한 카지노 호텔들보다 이곳에서 봤던 초대형 호텔들이 훨씬 더 웅장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Cotai 지역의 초대형 Casino 호텔들 모습)

http://www.china-macau.com/hotels/cotai.htm


나도 Cotai 지역의 호텔들을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벌건 대낮에 도박을 할 만큼 여유가 있어서 방문했던 것은 아니고 너무도 왕성한 소비가 이루어지던 호텔 내부 상가에 우리 제품을 판매하는 Brand Shop을 오픈하는 것을 검토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호텔에는 1층에 명품 매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곳의 주 고객 역시 중국에서 도박을 즐기러 온 중국인 부자들로써 그들은 씀씀이가 너무도 커서 고가의 명품도 부담 없이 여러 개 사가곤 했었고 그러한 수요를 우리 제품 판매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 방문했던 것이었다.


아래 사진들이 그러한 이유로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인데 Venetian Hotel 내부 카지노와 쇼핑몰 그리고 인근의 JW Marriott Hotel 앞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 베네치안 호텔 카지노와 쇼핑몰 (2013. 7월)


사진) JW Marriott 호텔, 사진 왼쪽에 Venetian Hotel이 희미하게 보인다. (2013. 10월)


한편 카지노가 가득하고 도박이 난무하는 Cotai 지역과는 매우 안 어울리는 모습이었지만, 중국의 인민해방군 마카오 주둔군 기지가 Venetian Hotel 바로 앞에 있기도 했다. 1999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된 이후 마카오에 주둔하게 된 부대인데, 초대형 호텔이 즐비한 Cotai 거리를 지나치다 우연히 군부대 휘장과 초병들이 서 있는 인민해방군 부대를 보니 잠시 좀 섬찟하기도 했던 기억도 있다.


(Venetian Hotel 바로 옆에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기지)

https://goo.gl/maps/yiV4UR9HjGf992tS8




둘 모두 유럽 국가의 식민지였지만 마카오는 홍콩과는 크게 다른 점이 또 하나 있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확고한 영국의 식민지였다면, 마카오 경우 1966년에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마카오 거주 중국인들의 대규모 폭동 이후 실질적으로 포르투갈의 지배력은 대폭 약화되었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1974년 포르투갈에서 혁명이 발생해 좌파 성향 정부가 집권하게 되면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등 해외에 있던 기존의 식민지를 모두 포기했고 마카오도 역시 중국에 반환하겠다고 제안했다. 즉, 중국이 요구하기 전에 포르투갈이 먼저 마카오에 대한 포기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마지막까지도 홍콩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영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포르투갈의 지배력이 서서히 약화되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은 중국으로 반환이 실현되지 않았던 실정에서 중국은 마카오 내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마카오의 치안력은 점차 화되었고 결국 마카오는 중국의 조폭 삼합회가 지배하는 도시와 같은 그런 지역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삼합회 조직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던 판사가 대낮에 살해되고, 조직범죄 소탕을 지휘하던 경찰 총책임자 차량이 폭파되기도 했으며, 조폭들이 경찰서에 기관총까지 난사하기도 했다. 치안이 극히 불안정하다는 웬만한 중남미 국가보다도 더 안 좋은 실정이었는데, 치안 상황이 이처럼 최악이다 보니 일반 시민은 당연히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배경에서 보다 확고한 치안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기대하기도 했다.


(마카오의 조직범죄)

1.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87487#0DKW

2.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5/13/1998051370191.html


하지만 해외 모든 식민지를 스스로 포기한 포르투갈에는 더 이상 그러한 치안 강화 의지를 기대를 할 수 없었마카오 주민들은 마카오의 중국 반환과 함께 마카오에 진주하게 될 중국의 인민 해방군에게 그런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홍콩에서와는 달리 마카오에 진입하던 중국 인민해방군은 마카오 주민들의 환영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인민해방군의 진입을 환영하는 마카오 주민들)

http://news.bbc.co.uk/2/hi/asia-pacific/572441.stm


그리고 실제 중국 정부는 마카오의 중국 반환 초기 민심을 회유하고자 마카오 주민들의 그러한 기대에 적극 부응해서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자마자 조폭과 또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하 세계를 대대적으로 소탕하기도 했었다.


(마카오 지하 세계부터 청소하는 중국)

https://news.joins.com/article/522250


이와 같은 중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한때는 마카오의 조폭 조직이 크게 약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 중앙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해도 중국 본토에 역시 조폭들이 활개를 펴고 있는 것처럼 마카오에도 전보다 그 정도가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조폭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물론,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 중국에서도 여전히 조폭들이 여기저기서 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역시 중국의 일부인 마카오만이 그러한 현상에서 예외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며 더욱이 도시 전체에 도박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 마카오 삼합회 두목 활동 재개)

https://www.news1.kr/articles/?4145476


마카오의 그런 조직적인 범죄에 한국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연루가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된 지 10년도 넘는 2010년에는 마카오의 현지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남자가 살해된 후에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또 2015년에는 도박에 돈을 탕진한 한국인이 마카오 여성을 습격해 강도짓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마카오에서 목 매달린 한국인)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3/2010011300761.html

(도박으로 인한 마카오 내 한국인 범죄)

https://www.yna.co.kr/view/AKR20151020174700074


한편 조폭 문제 외에도 도박이나 호텔과 같은 향락 산업이 발달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매춘 사업이었다. 마카오에 오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도박을 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보니 당연히 가족과 함께 마카오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며, 혼자 또는 같은 남성들끼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이런 남성들을 대상으로 매춘을 하는 여성들 또한 마카오로 몰리는 것이었다.


그런 여성들은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단체로 마카오에 오는 중국인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중국 이외에도 베네수엘라나 러시아처럼 해외에서 오는 여성들도 있었고 좀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온 한국 매춘 조직이 마카오에서 활동하다 적발돼 언론에 대서특필된 사례가 있기도 했다.


(마카오의 매춘 산업)

1. http://blog.daum.net/yjb0802/13801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cauu&logNo=221417957232&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마카오 내 한국인 매춘 조직 적발)

https://m.blog.naver.com/shanghai555/220337573803


성매매를 하려는 여인들호텔의 주변 등 마카오 곳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그녀들이 언제나 등장해서 마카오의 관광 명소처럼 인식될 정도로 유명한 곳도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Lisboa 호텔이었다. 이 호텔에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쇼핑몰 같은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 가면 성매매를 하려는 젊은 여인들이 선정적인 옷을 빼입고 쇼핑몰 안을 부지런히 걸어가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들 걸음의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그저 그 쇼핑몰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걸어갔다가 끝부분도착하면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이처럼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좀 우스워 보이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 계속 걷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남자를 만나면 관계를 갖겠냐고 묻고, 동의하면 그 남자의 방으로 가서 성매매 거래를 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한편 그곳에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여성들이 너무도 많았었고 또 성매매를 할 대상을 찾는다는 것 또한 매우 분명해 보였지만 경찰의 단속 같은 것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홍콩 법인 부임 후 마카오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곳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 실상이 궁금해 나 역시도 이 쇼핑몰 거리를 직접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전해 들었던 그대로 실제 젊은 여성들이 다소 심한 노출을 하고 쇼핑몰 내부를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중 어떤 여인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의 표준어로 "你要去吗?"라고 바로 물었다. 번역을 하면, "너 갈래?" 이런 의미인데 같이 잠자러 가겠냐고 먼저 묻는 것이었다. 완벽한 중국의 표준어 발음으로 묻는 것을 보면 그 여성이 중국 본토에서 온 여성이며, 잠재적 남성 고객 또한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온 남자였다는 의미이다.


내게 그렇게 물었던 그 여성은 너무도 짧은 치마를 입고는 있었지만 얼굴 표정은 꽤 평범해 보이는 그런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도 역시 마찬가지인지 모르겠지만,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인들의 사고가 너무나도 물질적인 면에만 편중되는 경우가 많아 그런지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는 그러한 질문을 하면서도 표정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태연하고 당당해서 마치 평범한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리스보아 호텔 쇼핑몰의 여성들)

1. http://blog.daum.net/supp1000/57

2.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7012394




중국에 흡수된 홍콩은 중국 통제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위를 지속하는 끊임없는 저항을 이어 오고 있다. 반면 마카오 경우는 그러한 저항이 있다는 소식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꽤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와는 별개로 두 지역 모두 큰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이 도시의 미래는 모두 꽤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반항아' 홍콩, '친중 노선' 마카오)

https://www.yna.co.kr/view/AKR20191217191651074


중국 정부가 두 지역에 보장했던 자치권은 50년뿐이다. 즉, 중국에 반환된 지 50년이 경과한 후에는 자치권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50년을 홍콩은 2047년, 마카오는 2049년에 각각 맞이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홍콩과 마카오의 자본주의 체제와 자치권한은 사라지고, 그저 상하이나 광저우 같은 중국 다른 도시처럼 공산당의 직접적이고도 철저한 통제를 받는 중국의 평범한 도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몇 차례 나온 얘기지만 중국 정부는 민주주의 의식이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통제하기 힘든 홍콩을 포기하고 금융 기지와 같은 홍콩의 기존 기능을 선전이나 또 상하이 같은 도시로 이전하는 것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또한 중국의 간섭이 더 심화된다면 홍콩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자치권한을 가진 지역으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홍콩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카오의 미래는 사실 홍콩보다도 훨씬 더 불투명한 것 같다. 마카오는 규모가 너무 작아 향후 대만을 포섭하기 위한 일국양제의 선례로 활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마카오라는 작은 도시가 그간 생존해 올 수 있었던 유일한 산업이었던 도박 산업이 중국 공산당에게 과연 향후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느냐의 판단 여부에 따라 마카오의 미래는 결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이후 마카오 전체 GDP는 이미 기존 대비 반 수준으로 급락했다고 한다. 도박을 위해 마카오를 찾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돈이 마카오 경제의 거의 전부였던 실정에서 코로나로 사람들이 아예 마카오에 오지를 못하니 도박 산업이 급속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9년도에는 무려 4천만 명에 달했던 마카오 방문객들이 2020년에는 그 수치의 15%밖에 안 되는 6백만 명도 안 될 정도로 급감했다는 것을 보면 그런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데, 그처럼 심각했던 상황에서도 인구 66만의 마카오 GDP는 50%만 감소했다는 것은 어쩌면 오히려 예상외로 마카오 경제가 위기를 잘 극복한 결과였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카오의 50년 자치권 보장이 종료되는 2049년은 이제는 앞으로 28년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 수백 년간 포르투갈의 오래된 동방 거점이었고 이후에는 도박 그리고 그에 따르는 향락과 범죄 그리고 성매매가 난무하는 도시였던 마카오는 28년 이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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