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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Jul 03. 2022

이촌동 연가 (19)

■ 이촌동 또 다른 터줏대감 로얄 맨션

2022년 현재 이촌동에 남아있는 아파트 중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한강 맨션으로 1970년 완공되었고 이촌동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강 맨션 바로 앞에는 그 보다 약 2년 후인 1972년 완공된 로얄 맨션이라는 또 다른 아파트가 남아있다.


결국  로 맨션 한강 맨션에 버금갈 만큼 오래된 이촌동 터줏대감 아파트인 셈인데 재건축이 결정되어 조만간 사라질 한강 맨션이나 이미 사라진 공무원 아파트처럼 이 로얄 맨션 역시 70년대부터 오랜 기간 이촌동을 상징하는 대표 아파트 중 하나였다.



1. 70년대 실내 수영장이 있던 아파트


최근에 새로 건축되는 고급 아파트에는 단지나 건물 내부에 수영장 시설까지 구비되는 경우도 있다. 1974년 완공된 렉스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2015년 새로 들어선 첼리투스가 그런 경우인데 아파트 내부에 실내 수영장이 구비되어 있다. 2022년 현재 첼리투스가 이촌동에서는 수영장이 있는 유일한 아파트다.


사진) 건물 내부에 실내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 첼리투스, 56층으로 이촌동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지만, 오히려 1970년대로 50년 정도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촌동에 수영장이 구비된 아파트가 2개나 있었다. 그중 하나는 1970년 완공된 외인 아파트로 단지 내부에 실외 수영장이 있었는데 이 수영장은 2000년 외인 아파트 재건축 당시 아파트와 함께 사라졌다.


(외인 아파트 수영장 모습)

https://m.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609262106005


 다른 하나는 실내에 있던 수영장으로 1972년 로얄 맨션과 함께 완공됐으며 바로 로얄 맨션 지하있던 것이었. 그런데 70년대 아파트 내부에 수영장이 있것은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이어서 이 로얄 수영장은 신문에 기사화될 정도로 유명했었다.


(로얄 맨션 수영장)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ics211&logNo=221042101722


하지만  로얄 수영장도 2004년 로얄 맨션 리모델링 공사  철거되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대신 로얄 맨션 지하 주차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한때 유명했던 추억 속의 로얄 수영장은 결국 30여 년간 이촌동에 존재했다 그렇게 과거 기억 속으로 사라진 셈이었다.


외인 아파트 수영장은 2000년, 로얄 맨션 수영장은 2004년 각각 사라졌으니 이후 2015년 첼리투스가 들어설 때까지 한동안 이촌동에 수영장이 구비된 아파트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요즘 이촌동 아파트들 재건축과 리모델링 추진이 매우 활발하니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2. 로얄 수영장에서 얻은 상처


어린 시절 이촌동에 살면서도 외인 아파트 수영장에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로얄 수영장에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너무도 자주 갔었는데 한 번은 이곳에서 큰 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다. 수영장 물 밖에 서 있다가 물 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었는데, 그때 내 턱이 수영장 모서리 타일 바닥에 그대로 부딪혔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아픈 것도 기억이 없을 정도였는데, 당연히 내 턱 밑 살은 2~3cm 정도 찢어졌고, 수영장 안전 요원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 몇 바늘을 꿰맸다. 그때 꿰맨 상처 흔적은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70년대 10대 시절의 적으로 남아있다.


한편 소식을 듣고 어머님도 급하게 병원으로 오셨는데 안전 요원은 어머님을 보자마자 마치 어머님 들으시라는 듯 내게 말하기를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사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임무를 할 만큼은 했다는 것을 어머님과 고용주에게 증명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는 전혀 엉뚱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네, 아저씨 말이 맞아요...."라고 대답하며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턱이 찢어진 것은 이미 발생한 일인데, 문제가 될 것을 두려워하는 그 수영장 안전 관리자에게 굳이 추가적인 불이익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 그 아저씨를 보호함으로써 나름 나 스스로 뿌듯해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 상처를 보고 화가 나서 안전 관리 요원에게 뭔가를 따지려 했던 어머님은 그런 내 말을 듣고는 결국 그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못하셨다. 여러 차례 주의까지 주었음에도 나 스스로 초래한 사고에 대해서까지는 도무지 하실 말씀이 없으셨던 것이다.


성장한 이후에는 전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초등학교 시절 나는 어른의 곤란한 입장까지도 고려하는 배려심 깊은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사진) 1972년 완공됐지만 2004~5년 전면적인 리모델링 공사가 이루어진 로얄 맨션의 최근 2021년 모습. 이 건물 지하에 수영장이 있었다.



3. 70년대 '로얄' 그 이름 그대로....


로얄 맨션 상가는 신용산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어서 유난히 자주 방문했었고 그만큼 추억과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과거 수정 아파트(두산 위브)나, 골든 맨션(월드 메리디앙)처럼 이촌동 다른 아파트들은 리모델링하게 되면 아파트 이름이 바뀌었는데, 로얄 맨션만은 리모델링 후에도 과거 이름을 여전히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나름 좀 새삼스러다.  


왜 로얄 맨션만 리모델링 이전 아파트 이름을 굳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어쩌면 이촌동에서는 나름 오랜 전통이 있는 로얄 아파트 그 이름에 대한 입주민들의 자긍심 때문은 아니었을지....


한편 한글 사전에 의하면 영어 단어 '로얄'의 올바른 한글 표기법은 '로열'로 나온다. 하지만 로얄 맨션은 여전히 스스로를 '로얄'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70년대 그 이름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리모델링 후에도 과거와 같은 표기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4. 추억의 냄비 우동....


로얄 맨션은 아파트 지하에도 상점들이 있지만 아파트 바로 앞에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자체 상가 건물이 있어서 다양한 상점들이 이곳에 입주해 있다. 


물론 70년대 이곳에 있던 상점들은 이미 거의 사라졌고 지금은 전혀 다른 상점들이 들어서 있지만 과거 이곳에 있던 상점들 중 유독 기억나는 상점도 하나 있는데 바로 위 사진 속 파리크라상 자리에 있던 '로얄의 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그 식당에서는 주로 한 가지 음식만 주문해서 먹었는데 냄비우동이었다. 계란, 쑥갓, 튀김가루 등을 토핑으로 올려서 실제로 펄펄 끓는 뜨거운 냄비에 우동이 나왔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냄비우동 이외 이 식당의 다른 메뉴들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데 40~50년 전 너무도 오래전에 갔던 식당이니 즐겨 먹던 메뉴 외에는 몽땅 잊어버리게 된 것 같다.


그 시절 이 식당 바로 지하에 있던 로얄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영을 하고 나오면 항상 배가 고팠다. 그래서 그런지 수영장을 다녀온 직후 아직 머리도 제대로 마르지 않은 상태로 이 식당으로 직행해 냄비우동을 먹곤 했던 오래된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세월과 함께 그 추억의 식당은 70년대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세련되고 멋진 파리크라상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 있다....


 사진) 과거 냄비우동을 하던 식당이 있던 공간. 70년대 허름한 식당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멋진 빵집이 대신 들어서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973년에 찍었다는 아래와 같은 로얄 맨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사진에도 오른쪽 끝에 '로얄의 집'이라는 식당 이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70년대 그리운 시간과 공간이라 그만큼 더 아쉽다....


(사진) 1973년 찍은 로얄 맨션 사진

(사진 출처)

https://mobile.twitter.com/salguajc/status/686931270782156800


사진) 로얄 맨션 2021년 모습과1973년 모습 비교.



5. 최근 알게 된 또 다른 로얄 상가


이촌동에 오랜 기간 살아왔지만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로얄 맨션에는 눈에 잘 띄는 상가 외에도 아파트 뒤쪽 이촌 시장 내부 다른 상가 즉 '로얄 B동'이라 불리는 상가가 있었다.


사진) '로얄 B동'이라고 표기된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시장 안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로얄 B동'이라는 건물도 그 오래된 외관 모습으로 볼 때 1972년 로얄 맨션이 최초 완공될 때 함께 완공된 건물로 보였다.       


그럼에도 50년 넘게 이촌동에 살아오면서도 그동안 이 건물이 로얄 상가 일부분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반백년도 넘게 살아왔으니 이촌동은 구석구석 손금 들여다보듯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모르겠다.... 아직도 전혀 모르는 미지의 또 다른 모습과 공간들이 이촌동에는 여전히 많이 숨어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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