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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Jul 17. 2022

이촌동 연가 (21)

■ 이촌동 노포

이촌동에는 이촌동 동네 형성 초기부터 존재해 왔던 오래 상점들이 있고 또 한때 있었다. 아직 영업 중이거나 이미 사라진 이런 상점들에 얽힌 오래된 기억과 추억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강춘, 70년대 짜장면집


70년대만 해도 아직은 외식할 때 가장 자주 찾는 식당이 중국집이었고 또 중국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짜장면이던 시절이었다.  시절 이촌동에도 짜장면 집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한강춘'이었다. 아마도 이촌동의 가장 오래된 식당 중 대표적인 식당을 꼽으라면 바로 한강맨션 11동에 아직도 남아있는 이 '한강춘'이라는 식당일 것이다.


사진) 한강 맨션 11동 2층에 있는 중식당 한강춘


한강춘이 언제 개업했는지는 검색해 봤지만 정확한 일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신용산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70년대 초반에도 이 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는 바 한강맨션이 완공된 1970년부터 한강춘은 이미 영업을 해왔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이 식당은 반백 년 이상 이촌동에서 영업을 해온 식당인 셈이다. 다만 현재 한강춘 사장님이 50여 년 전의 한강춘 사장님과 같은 분인지 또는 관련이 있는 분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게다가 육고기를 못 먹는 나는 이 식당에 자주 가지도 못해 이 식당 음식들 맛도 자세히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오가며  식당 간판을 볼 때마다 70년대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이 식당에서 먹었던 그립고 아련한 짜장면의 기억들은 아직도 흠뻑 떠오른다. 


뿐만 아니다, 70년대 그 과거가 너무 리워 어느 날 굳이 2층 식당 앞까지 올라가 봤는데, 식당 안의 의자나 테이블 구성 등 배치마저도 70년대 모습과 너무도 변화가 없어서  그런 추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인생 너무도 짙게 연결되어 있는 식당, 한강춘....


(한강춘 소개 블로그)

https://jeje0702.tistory.com/m/712



홍보석, 고급 중국집


한강춘이 개업하고 얼마 안 된 1972년에 홍보석이란 다른 중식당이 한강춘 바로 옆에 있는 리버뷰 맨션 안에서 개업을 했다. 그런데 홍보석은 그 시절에 유명했던 고급 중식당 중 하나로 동네 초등학생들이 별 부담 없이 아무 때나 몰려 가서 짜장면 먹곤 했던 바로 옆 한강춘과는 그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다만 홍보석은 이촌동에는 그다지 오래 있지는 않았고 이후 서울 시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다. 현재 여의도에 홍보석이라는 이름의 중식당이 있던데 이 홍보석이 오래전 이촌동에 있었던 그 홍보석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강춘에는 친구들과 같이 갔던 기억들만 남아있는 반면에 훨씬 더 비싼 식당이었던 홍보석에는 친구들과 갔던 기억은 전혀 없고, 부모님이나 부모님 친구분 가족과 함께 갔던 기억들만 남아있다. 그 가족들이 누구였는지는 50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이제는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말이다....


(홍보석 소개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3397017#home



벤케이, 단, 국화.... '로바다야키'라 불리던 주점들


명지 상가 1층 '파리바게트' 옆에는 벤케이(弁慶, 변경)라 불리던 일본식 로바다야키 주점도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이 식당은 80년대 초에 개업한 주점으로 2021년까지 영업을 했으니 약 40년간 이촌동과 함께 해왔던 주점인 셈이다.


80년대에는 이러한 일본풍의 술집이 꽤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나도 대학생 시절 그리고 신입사원 시절까지도 이곳에서 친구들과 종종 맛깔난 안주들과 함께 한잔하곤 했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사실 벤케이는 매우 좁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토록 좁은 분위기가 묘하게도 술 한잔 하기에는 딱 어울리던 그런 술집이었고, 또 안주 맛이 일품이었는데 2021년 말 기준으로 벤케이는 영업을 종료했고 현재는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가 끝나면 그 자리에는 업종이 전혀 다른 '새마을금고'가 입주할 예정이라 한다.


벤케이를 시작으로 얼마 뒤에는 그 바로 옆에 '단'과 '국화' 같은 역시 로바다야키 식당들이 개점했는데, 초기에는 그래도 역시 원조격인 벤케이가 가장 인기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단' 그리고 이후 규모가 훨씬 큰 '국화'가 점점 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국화는 나도 자주 갔던 곳이었지만 2001년 76세로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살아생전 마지막까지 거의 매일 저녁에 한잔하러 가셨던 곳으로 아버님의 최애 단골 식당이었다. 워낙에 단골이다 보니 아버님이 그곳에서 술에 취하시면 내가 해외에 주재 근무하던 시절 국화 주방장님 겸 사장님께서 아버님을 업고 1km 정도 떨어진 청탑 아파트까지 모셔다 드리기도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 벤케이, 단, 국화 모두 2021년 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버님께서 마지막 시절까지도 함께했던 술 한잔의 기억과 내 대학 시절과 신입사원 시절을 함께했던 또 다른 술 한잔의 기억들이 공사와 함께 이제는 모두 사라져 가고 있는 셈이다.


사진) 과거 벤케이, 단, 국화란 술집이 있던 곳의 공사 현장. 한때 수많은 손님들이 앉아 술 한잔과 함께 인생의 회포를 풀었을 공간이 이렇게 휑한 공사판으로 변해버렸다.


(벤케이가 영업하던 절의 2012년 거리뷰)

http://naver.me/5HU6My6U



이촌 부대찌개, 정겨운 분위기의 식당


이촌동 충신교회 뒤편에는 '이촌 부대찌개'란 상호를 가진 식당이 있다. 1982년에 개업을 했다 하니 올해로 40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식당에는 스테이크, 햄, 소시지, 베이컨 등 고기 요리와 각종 찌개류의 음식들이 있는데 육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는 이 식당의 또 다른 인기 메뉴인 오징어볶음을 안주로 술 한잔 하러 동네 후배와 자주 가곤 했었다.   


오징어볶음도 맛이 좋았지만 아담한 식당 분위기가 좋아서 아마 거의 매주 한 번씩은 그 후배와 함께 갈 정도로 자주 갔던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코로나 발발 이후에는 2년이 넘도록 거의 못 갔다. 식당 안 자리 간격이 좁고, 식당이 붐벼서 좀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코로나가 참 많은 것을 빼앗아갔는데 매주 이 식당에 가서 가까운 후배와 해 떨어진 저녁에 얼큰하게 한 잔 하던 그런 소소한 즐거움까지도 빼앗아갔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도 좀 뜸해진 만큼 다시 이 식당을 찾아갈 준비를 해야  것 같다....


사진) 이촌 부대찌개 외관


이 식당 사장님의 친척분이 이촌 시장 안에 유사한 메뉴를 제공하는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을 개업하기도 해서 후배와 함께 그곳에도 몇 번 가보기 했는데 개업 이후 몇 년 되지도 않아서 바로 폐업을 했고 현재는 다른 당이 들어서 있다.


한편 이촌 부대찌개 근처에는 유사한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더 몰려 있는데,  식당들은 가보지 못해서 맛이나 분위기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쨌든 이 근처에 유사한 식당들이 몰려있어서 마치 이 근처가 일종의 이촌동 부대찌개 거리처럼 되어버렸다.


(이촌 부대찌개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1130nh/222029426557



사튀로스, 미지의 매력을 가진 카페


미주 아파트 한쪽 끝에는 유일하게 상점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사튀로스'라는 카페다. 이 카페가 있는 미주 아파트는 1976년 완공되었고 이마 그 당시부터 이 카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니 이 카페도 꽤 오래전부터 있었카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단 한 번도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따라서 어떤 분위기, 어떤 음식들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카페도 매우 오래된 이촌동의 터줏대감 카페인 것 하나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진) 사튀로스 입구. 빨간 벽과 짙은 녹색 담쟁이덩굴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특이한 것은 아무리 검색을 해도 이 카페에 대해서는 좀처럼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요즘도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워낙에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아마도 단골손님 위주로만 영업을 해서 홍보도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사튀로스 소개 블로그, 사진만 있다)

https://m.blog.daum.net/mailmusic/14672690



쟁이, 먼저 떠난 동생의 기억이 짙게 묻어 있는 곳


명지 종합상가 지하에는 '쟁이'라는 카페도 있는데 이 카페도 꽤 오래된 이촌동 터줏대감 중 하나다. 기억이 맞다면 서울 올림픽 개최 전인 1984년에 개업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카페에는 나는 한두 번인가밖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동생은 이 카페를 매우 좋아해서 꽤 자주 갔었고 결국 친구들과 함께 자금을 모아 이 카페와 비슷한 분위기의 카페를 명지 상가 2층에 동생이 직접 오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후  대학에서 교수를 하던 시절 2009년 가을 동생은 갑작스럽게 46 살 아직 한참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결국 그토록 즐기며 찾던 이 세상 속의 이 카페에는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사진) 쟁이 외부 간판 및 위치 소개 안내판


이촌동의 오래된 상점들을 찾다 보니 기억에서 이미 오래전 사라진 이 카페도 기억에 떠올랐던 것인데, 이 카페를 다시 보다 보니 40여 년의 길고도 긴 시간을 거슬러서 80년대 과거 시절로 돌아가 동생이 이 카페를 자주 다니던 그 시절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은 착시현상 경험하기도 했다....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80년대 그 시간....



남정희 헤어,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는


동일한 명지 상가 내에 있는 '남정희 미용실'도 내 기억이 맞다면 80~90년대부터 이미 영업을 했던 미용실이다. 즉, 이미 최소 3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영업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 남정희 미용실 간판 및 입구


이 미용실을 유난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성은 다르지만 미용실 이름이 우리 어머님 이름과 같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어머님께서 이 미용실이 좋다고 직접 추천을 하셔서 처음으로 가게 됐기 때문이었다.


또 세 번째 이유도 있는데 이발 예약을 하고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려 무려 30분이나 늦게 방문해 처음부터 몹시 곤란한 상황에서 이발을 해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매우 언짢아하시던 사장님 표정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데 시간 약속을 하고도 전혀 지키지 못했던 잘못이 내게 있으니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런 질책이었다.


이 미용실은 80년대 처음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매장에서 혼자 일하시던 사장님의 연세가 대략 30세 후반 정도로 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바 현재 그 사장님이 계속 일을 하신다면 아마 70세 넘는 연세가 되셨을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오래된 점포들을 찾다 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70~80년대 이촌동 점포들과 또 그 점포와 관련된 까마득한 과거 기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보면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모두 다 이미 너무도 오래된 30~40년 전 과거의 추억들이다.


세월은 도대체 왜 이리 빨리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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