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는 캐나다의 퀘벡시티(Québec City)에 있는 호텔 쌰또 프롱뜨낙(Château Frontenac)과 주변도 배경으로 나오는데, 유럽풍의 호텔뿐 아니라 전체적인 도시 풍광이나 느낌이 시멘트로 만들어진 마천루가 즐비한 여타 북미 도시들과는 꽤 달라서 마치 중세 유럽의 도시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들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도시의 느낌이 드라마의 몽환적 소재와 너무나 잘 어울려서더욱 감성적으로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이미 너무 오래전부터 그 땅에 대대로 거주해 왔던 프랑스계 주민들 대다수는 자신들의 터전인 그 땅을 떠나지 못했고, 비록 이제부터는 영국 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영국 식민지에서 영국을 상징하는 '유니온 잭(Union Jack)'이 그려진 국기 아래 살아야 하는 신분으로 처지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는 결코 버리지 않고, 여전히 프랑스식으로 퀘벡주(州)의 문화를 유지시키고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캐나다 국기와 Québec주(州) 주기(州旗)를 비교해 보면 디자인이나 색감, 느낌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국기나 군복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붉은색을 선호하는 영국인과 달리 퀘벡 주기(州旗)에는 프랑스인이 즐겨 사용하는 파란색이 주로 사용되고 있고, 또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두 깃발의 이러한 확연한 차이 역시 퀘벡주와 기타 캐나다 지역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뿌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는 것 같다.
영국 국기가 삽입되어 있는 1965년 이전 캐나다 국기
1965년 이후 캐나다 국기. 영국 국기는 삭제되었으나 역시 붉은 색이 주된 색상이다
194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푸른색 위주의 퀘벡주 주기
한국이 대한해협 바로 아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본이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과도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너무나도 많듯이, 같은 유럽에 있지만 유럽 대륙에 위치한 프랑스와 그 바로 옆의 섬나라 영국도 좁은 해협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인접국이지만 상호 간 꽤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럽의 대륙법이 프랑스의 법처럼 성문법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반면 영국에서 유래된 영미법은 판례와 관습 중심으로 발전해와 상호 간 완연히 다른 것도 두 지역 간 큰 차이점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영국인과 프랑스인 간의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는데, 프랑스인과 영국인이 함께 탄 마차가 질주를 하다 벼랑에 떨어져 위험한 상태로 허공에 매달려 있게 되었다 한다. 이때영국인은 모두 조용하고 침착하게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던 반면 프랑스인들은 모두 흥분해서 소동을 일으켜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까지 처하게 될 뻔했다 한다.
그러다 다행히 마차는 구조되었고 위험한 상황이 종료되자, 프랑스인들은 방금 전 그 일을 모두 잊고 유쾌하게 집으로 돌아가버렸는데 영국인들은 그때부터 방금 전에 큰일이 날 뻔했다고 끊임없이 걱정하기 시작해서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 국민을 하나의 성향으로 일반화시켜 언급하는 것은 무리이고, 또 실제로 모든 프랑스인이 이렇게 즉흥적이거나 무모하지만도 않다. 다만 영국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많다는 의미를 다소 과장하여 희화적으로 표현한 얘기인 것 같다.
어쨌든 국민성에서 그렇게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여건에서 전쟁에서 빼앗긴 영토라는 감정까지 더해져서 퀘벡 지역이 영국으로 넘겨진 뒤에도 퀘벡주에서의 프랑스계와 영국계 주민 간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러한 이질감은 시간이 흐르면서도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 1980년 그리고 1995년 두 차례나 캐나다로부터의퀘벡주 독립여부를 묻는 투표가 시행되기도 했다.
주민투표 결과는 과반수 미달로 모두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1980년 40%가 독립에 찬성했던 것과 달리, 1995년에는 49.4%가 독립에 찬성해서 독립을 반대한 50.6%와 매우 근소한 차이로까지 독립 찬성표가 늘어났다. 득표율로 보면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질감을 갖는 프랑스계 후손이 오히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질감은 특이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했는데, 언젠가 신제품 소개를 위해 퀘벡에 출장 갔을 때, 시내에 다니는 차 번호판에 독특한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것도 한 두대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차 번호판에는 모두 똑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바로 "Je me souviens (쥬므수비엥)"이라는 불어 문구였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나는 기억한다"라는 뜻으로 도대체 뭘 기억한다고 뜬금없이 그런 문구가 모든 차 번호판에 새겨져 있는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이것도 전술한 퀘벡주의 아픈 과거 역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이 문구는 퀘벡주 주민들이 자신들은 영국계와는 다른 프랑스계 출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말로 영국과의 전쟁에 패해 자신들의 영토를 잃어버린 아픈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1800년대 후반 퀘벡에서 만들어진 이 문구는 퀘벡 주의회 건물 앞에 처음 새겨진 이후에 이곳저곳으로사용되는 곳이 확산되어 왔고 마침내 1978년부터는 퀘벡주에서등록되는 모든 차량 번호판에 삽입되게 되었다.
이는 예를 들면 서울 시내에 돌아다니는 전 차량 번호판에 "일본 식민지배 36년을 기억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인데, 그 정도로 단호하게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퀘벡주에서는 언어도 영어가 아니라 불어가 주로 통용된다. 물론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불어와는 발음이나 단어 등이 좀 다르긴 하다. 나는 불어를 전공했었고, 캐나다 부임 전에는 프랑스에 연수 가서 1년이나 거주해서연수가 끝날 때에는프랑스인과 불어로 말싸움해도 지지 않을 정도까지 불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퀘벡 불어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는데, 심지어 퀘벡 출장 가서 그쪽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불어를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영어를 참으로 이상하게 발음하는 지방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는 그들이 불어로 얘기를 하고 있었던것이다.
물론 모국어로 불어를 구사하는 프랑스 사람들 경우 나처럼 외국어로 불어를 배운 사람과 달라서 퀘벡 불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퀘벡 불어와 프랑스 불어가 적지 않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프랑스 식민 초기 퀘벡으로 이주했던 사람 대부분이 프랑스 서북부 지방 출신이라 당시 그쪽 지방에서 사용하던 방언이 퀘벡 불어에 남아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중세 시대 불어 발음이 남아 있다든가, 영어 단어와 발음이 섞여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발음이나 단어는 좀 다를지 몰라도, 영국에 합병된 지 이미 250년이 지났음에도, 퀘벡주의 프랑스계 주민들은 여전히 조상의 언어인 불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고집하고 지속 사용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불어 사용을 고집하는 퀘벡주 프랑스계 주민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탄생한 불편한 제도도 있는데, 캐나다의 공식 언어는 영어/불어 두 개로 정해져 있어, 관공서에서나 정부 문서는 반드시 이 두 가지 언어로 작성되어야 했다.
뿐만 아니다. 정부 공식문서가 아닌 일반 상품에도이 두 개 언어가 병행되어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담배, 껌 같은 아주 작은 상품도 마찬가지였다. 퀘벡지역의 주민들을 포용하기 위한 정책에서 이러한 법규나 관행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퀘벡 지역을 제외한 캐나다의 모든 지역에서는 실질적으로 불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캐나다 전국에 걸친 불어/영어 병행 표기법은 사실 실용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캐나다 사회보장 카드. 불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Toronto 지역임에도 영어, 불어 두가지 언어로 표기되어 있다.
내가 근무하던 법인에도 그 당시 약2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했는데, 불어를 모국어처럼 편하게 구사하는 직원은 캐나다 동부가 고향인 여직원 단 한 명이었다. 물론 그녀도 영어/불어 모두가 완벽한 Bilingual로, 토론토로 이사를 온 이후에는 평소에도 항상 영어로 대화를 해왔기 때문에 굳이 불어로 병행 표기해야 문서를 이해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지역을 선호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이 혹시 있어도 성과 이름만으로는 그 출신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사람의 성(姓)만 들어도 그가 퀘벡주 출신의 프랑스계인지 아닌지를 곧바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랑스인의 성(姓)과 영국인의 성(姓)이 많이 다르고 쉽게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성씨가 중국식으로 변해버린 이후에는 그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여전히 동아시아에서도 성씨만으로 국적을 구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임 씨(林氏) 성은 한국, 일본, 중국 3개국에 모두 존재한다. 이런 경우는 성(姓)만으로 국적이나 출신 지역을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성이 전중(田中)이나 좌등(佐藤)이라면 어렵지 않게 일본인임을 알 수가 있고, 구양(歐陽), 호(胡) 또는 습(習)이라면 중국인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캐나다의 역대 수상 중 Laurier, St. Laurent, Trudeau, Chrétien 같은 사람들은 그의 성(姓)만 들어도 그들이 프랑스계라는 것을 누구나 바로 알 수 있다. 영어나 영국에는 그런 성씨(姓氏)가 없기 때문이다.
무려 250년 이상 Nouvelle France라는 광대한 식민지를 북미에 보유하고 있었지만, 한 순간에 빼앗겨버린 북미의 프랑스계 주민들이 그 땅을 빼앗긴 지 또 다른 2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구를 곳곳에 새겨 놓고 스스로를 다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이 겪었을 아픔이 안타깝기도 했고, 아무리 시간이 경과해도 결코 그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캐나다로부터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중국에도 역시 유사한 사례가 있다. 중국 남경 대학살 기념관에는"前事不忘後事之師"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과거를 잊지 않음은 미래의 스승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뜻인데, 불과 6주 만에 무려 30만 명에 달하는 남경 시민이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강간당하거나 혹은학살당한 끔찍하고 또 치욕적인 사건을 추모하는 문구이다.
최근 더 많은 중국인들이 중화 민족주의에과다하게 치우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근저에는 어쩌면 이런 문구가 반복되는 교육을 통해 중국인 마음 깊은 속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