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사마리아인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2편 Toronto-08)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oronto



8. 캐나다의 사마리아인


한국이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듯이,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역시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중에는 전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인종주의적인 발언을 대놓고 노골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인종에 대한 편견 없이 호의까지도 베푸는 고마운 캐나다인들 또한 분명히 있었다.


캐나다의 국토 면적은 한국의 약 100배에 달할 만큼 넓다. 반면 캐나다 인구는 3천7백만 명으로 한국 70% 수준밖에 안된다. 그런데 그 인구의 대부분도 좀 더 따듯한 미국과의 접경지대인 남쪽에 주로 몰려 산다. Toronto, Montreal, Vancouver, Ottawa 같은 캐나다 대도시들도 모두 남쪽 지대에 편중되어 위치하고 있다.


요즘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남쪽에만 편중되어 거주하고 있다 보니 2000년대 초 그 시절만 해도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약 3~4시간 차를 타고 가면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지역이 허다했다. 인적도 드문 그런 지역에서 혹 사고라도 생기게 되면 핸드폰까지 먹통이니 신고하거나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봉변에 처하게 될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그런 경우를 내가 직접 당하는 일이 있었다.




주말에 출장 온 본사 직원과 미팅을 끝내고 출국하기까지는 아직 반나절 이상의 시간 여유가 남아서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캐나다 북부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대자연을 구경시켜 줄 생각에 내 차에 그 출장자를 태워 함께 캐나다 북쪽 지역으로 갔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대자연)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travel/article/things-to-do-best-activities


그런데 서너 시간쯤 북쪽으로 올라간 후 고속도로를 나와서 인적이 없는 캐나다 시골 도로를 주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 옆에 깊이 1미터가 좀 안 되는 도랑이 있었는데, 풀이 무성하게 자라 그 위를 덮고 있었던 탓에, 그 아래에 도랑이 있는 것을 모르고 나는 그 위로 주행했고 결국 차량 오른쪽 바퀴 2개가 모두 그 도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 도랑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도저히 자력으로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결국에는 갖고 있던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해보려 했지만, 우려했던 대로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


핸드폰은 완전히 무용지물인 상태가 되어 버렸는데, 이처럼 인적도 없는 외딴곳에 공중전화가 있을 리 만무했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도움을 요청할만한 사람이나 인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를 그냥 세워 두고 인가를 찾아가려고 해도 어느 방향에 뭐가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니 무턱대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이러한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이제는 출장자의 항공편 출발 시간까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잘못하면 나로 인해 그 출장자의 다음 출장 일정까지 모두 망가지게 될 지경이니 마음은 더 초초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에선가 탱크가 움직이는 소리 같은 굉음이 작지만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비포장도로의 한쪽 끝을 바라보니, 저 멀리 트럭인지, 차량인지, 기계인지, 딱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데 어쨌든 엄청나게 거대한 몸집의 쇳덩이가 길을 따라 천천히 우리 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그 쇳덩이가 가까이 왔을 때 보니, 물체는 미국의 영화나 뉴스에서 몇 번 봤던 Combine이라 불리는 거대한 농기구 차량이었다. 우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던 그 Combine의 백인 운전자는 우리 차가 도랑에 빠진 것과, 동양인 두 명이 그 옆에서 아주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우리 차량 옆에 와서 그 Combine을 세웠다.


(초대형 Combine 모습)

https://www.dtnpf.com/agriculture/web/ag/blogs/machinerylink/blog-post/2019/11/12/deere-reveals-largest-combine


그리고는 변함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도와줄까?"라고 단 한마디 물었다. 몇 시간째 대책도 없이 무인도 같이 고립된 아무것도 없는 시골 한복판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지 뭘 더 기다리겠는가? 바로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의 말을 듣더니, 운전자는 별 말도 없이 운전석에서 내려서 어디에선가 쇠사슬을 꺼내더니 내 차 뒷바퀴 축에 걸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바퀴 축에 쇠사슬을 걸어 차를 끌면 바퀴 축이 휘어질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얼핏 들은 기억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그 운전자에게 "그렇게 하게 되면 바퀴의 축이 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그 운전자는 역시나 아무런 표정 변화나 대꾸도 없이 하던 행동을 멈추더니 곧 쇠사슬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낮은 목소리로 답하기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난 그러한 결과에 책임질 수 없으니 그냥 갈 수밖에 없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아니다 무슨 얘기냐, 아무 문제도 없으니 바퀴 축에 걸어 끌어내 주면 정말로 고맙겠다"라고 황급히 내가 했던 말을 취소했다. 그러자 그는 쇠사슬을 내 차 뒷바퀴 축에 다시 걸기 시작했고, 그게 끝나자 운전석에 앉아 그 대형 Combine 시동을 걸어 내 차를 마치 무슨 장난감 차 끌어내듯이 너무도 가볍게 도랑에서 끄집어냈다.


아무 대책 없이 몇 시간 동안 꼼짝없이 갇혀 있던 공간에서 그렇게 벗어나게 되었으니 너무도 다행이고 감사했는데, 우리의 반복되는 감사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뒤로 하고, 그 운전자는 아무런 보상이나 요구도 없이 다시 거대한 Combine을 몰고 아주 느린 속도로 또다시 탱크 굉음 같은 소리를 내며 서서히 비포장도로 반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 백인이 그날 우리에게 베풀었던 모든 행동, 즉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Combine을 정차해서, 쇠사슬을 끌어내어, 자신이 직접 내차 바퀴 축에 연결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내 차를 끌어내던 그런 행동들은 결코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출장자는 그저 옆에서 보고만 있었을 뿐인데, 그 백인 농부는 아무런 보수나 보상 요구도 없이 이런 모든 행동을 혼자서 다 알아서 해 주었다.


혹 사람도 없는 외딴 시골에서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만났으면 누구나 그렇게 도와주지 않았겠느냐고 혹 생각한다면, 장담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착각이다.


만일 전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Too many Orientals" 운운하는 동양인 혐오 발언을 면전에서 대놓고 하는 그런 백인을 만났다면 절대로 그런 수고를 자처해가며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Colored People이 캐나다로 너무나 많이 이민 와서 캐나다의 온갖 사회복지 혜택을 축내고 훔쳐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종주의적 인식을 갖고 있는 그런 백인을 만났다면 도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봉변을 당하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저 정상적인 인종적 편견이 없는 '선한 사마리아인'같은 백인을 다행히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도움을 받고 난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무덤덤한 표정의 그날 그 백인의 호의가 지금도 감사하다.


한편 도랑에 빠졌던 그 차는 그 사건 후 1년쯤 뒤인가 내가 캐나다를 떠나서 본사로 귀임할 때 부서 직원이었던 한국계 캐나다인 직원에게 공짜로 물려주고 떠났다. 그런데 나중에 그 직원으로부터 들어보니 내 차를 넘겨받은 후 정비소에서 검사해 본 결과 우려했던 대로 뒷바퀴 축이 꽤 휘어져 있어 수리를 했다고 했다. 바퀴 축이 휘어진 그 상태로 1년 여간 그 차를 매일 타고 다닌 셈인데, 별다른 탈도 없었고 사고도 없었으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인종주의자도 겪었지만, 반면에 그러한 인식이 전혀 없는 너무도 감사했던 '선한 사마리아인' 역시 만날 수 있었던 경험에 대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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