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흑인, 아랍인, 동남아인과는 외모에서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심지어 외모로는 구분이 쉽지 않을 수도 있는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도 구분되는 별도의 민족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미국을중심으로 한 영어권 국가에서는 백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종은 전혀 구분하지 않고 그저 단 한 인종으로 모두 뭉뚱그려 표현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흑인, 아랍인, 동남아인,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이 모두가 그저 하나의 인종으로만 인식되는 것인데, 이때 백인들이 사용하는 인종 명칭이 바로 'Colored People'이었다. 즉 그들의 인식에는 이 세상에는 오로지 2개 인종만 있는데 그 2개 인종은 '백인'과 '백인 아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백인은 White라 표현하고, White가 아닌 다른 모든 인종 또는 민족은 색이 좀 더 짙거나 좀 더 엷은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피부에 색이 들어간 사람'으로 모두 'Colored'라는 한 단어로 표현해도 되고 또 표현할 수 있다는 매우 독특한 가치관을갖고 있는 것이었다.
전 세계 인구가 약 76억 명이라고 봤을 때, 백인은 약 11% 정도밖에 안된다 하니, 10%에 해당하는 소수가 자신들과 다른 나머지 90%의 다수를 모두 한 인종이라고 표현하는 셈인데 한마디로 너무도 백인 중심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표현법인것 같다.
Colored라는 이 단어도 황당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짙은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는 또 다른 영어 단어가 있다. 바로 'Oriental'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동쪽'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oriens'에서 유래된 단어라 하는데, 그저 동양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에 왜 비하의 의미가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조센징(朝鮮人)'이라고 하면 문자적으로는 그저 '조선인'을 의미하지만 그 단어에는 조선인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짙게 담겨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고, 또 흑인을 의미하는 'nigger'라는 영어 단어도 단순히 '검다'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 'negro'에서 왔을 뿐이지만, 이 단어에도역시 꽤 심한 비하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어쨌든 2016년 5월 미국 Obama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 법안에 의하면 향후 미국 연방법에 'Negro'나 'Oriental' 같은 단어는 일절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었다 하는데, 국가 차원에서 사용을 금지할 정도인 것을 보면 그 단어에 내포된 비하의 의미가 얼마나 강한지를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Oriental'라는 이 단어에 그런 부정적 의미가 들어 있는지를 사실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느 백인 노부부로부터이 말을 듣는 경험을 하면서 이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깨우치게 되었다.
퇴근해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올라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70은 넘어 보이는 백인 부부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나를 힐끗 보며, "이 아파트에는 Oriental이 너무 많다'라고 바로 앞에서 나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이 말을 접했던 그 시점에는 Oriental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단순히 동양인이 많다고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것과, 언어 외적으로 전달되는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에 다소의 불쾌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뒤에 있던 동료 주재원에게 그 얘기를 전했더니 그 동료가 갑자기 흥분해서 그 사람들 어디 갔냐고, 반드시 따져야 한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Asian이 너무나 많다고 해도 특정 인종을 지칭해서 많다고 하는 것으로 그것부터 문제 되는 말인데, Oriental이라는 비하의 의미까지 포함된 단어를 사용한 것은 정말 참아서는 안 되는 문제라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흑인의 면전에서 "이 아파트에는 깜둥이가 너무 많아"라고 말한 것과 똑같은 경우였던 셈이라는것이었다.하지만 그들은 이미 떠나간 뒤였고, 우리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는 못했다.
토론토 시내에 운전하고 갔다가 또 다른 꽤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차창 밖 인도에 부모와 함께 가는 한 5~6살 정도 돼 보이는 백인 여자아이가 인형 같고 너무 귀여워서 신호대기로 차가 정차되어 있는 동안 그 애를 잠시 바라본 적이 있었다. 사진을 찍거나 손을 흔들거나 했던 것은 전혀 아니고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것도 가까이서도 결코 아니고 5~6미터 이상 떨어진 도로 위 차 안에서....
그런데 그 아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갑자기 꽤 험한 인상을 쓰며 욕하듯이 입을 중얼거렸다. 천사 같이 귀여워 보이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그렇게 변하니 꽤나 황당했었다. 그 아이가 귀엽다고 감히 쓰다듬었던 것도 아니고, 말을 건 것도 아니며 단지 멀리 차 안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본 것뿐인데 도대체 왜 그런 혐오의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안 됐다.
어쩌면 그 아이가 속했던 사회나 그 아이 부모의 인종 또는 피부색에 대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편견이 그 어린아이가 동양인인 나의 시선에 그러한 과격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 귀엽고 천사 같은 어린아이에게 벌써부터 그런 심한 인종적 편견이 교육된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법인의 1층에는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식사할 수 있는 작은 Canteen이 있었는데, 오고 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식당에서 먹는 따뜻한 한식을 선호했던 나로서는 그곳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거나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가끔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식사할 때는 뭘 먹을지라도 심지어 햄버거 같은 빵을 먹을지라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김치를 꺼내서 같이 먹곤 했는데, 하루는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백인 여자 직원들 중 한 명이 적지도 않은 목소리로, "또 저 김치 냄새 쟤들은 자기네들 마음대로 한다니까 자기들이 주인인 줄 알아요"라고 나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말이 너무나도 공격적이라 처음에는 혹 내가 잘 못 들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여자와 같이 식사를 하던 다른 백인 여자 직원들의 표정이 그 말을 듣고 당황해 급변하는 것을 보니 결코 내가 잘 못 들은 말이 아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매우 강한 냄새가 나는 김치 같은 음식은 타민족과 함께 여러 명이 식사하는 Canteen 같은 곳에서는 좀 피해야 하는 것이 보다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발가락 고린내 나는 것 같은 역시 매우 강한 냄새가 나는 프랑스 치즈를 프랑스계 백인이 옆에서 먹을 때에도 그 여자가 과연 그렇게 용감한 말을 표출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업무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그로부터 며칠 뒤 해고될 예정이었고, 내게 그런 심한 말을 하던 날은 이미 해고가 확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한국주재원으로부터 해고당했으니 한국인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을 것인데 어차피 떠나는 상황에서 그 감정을 한국인 대상으로 풀고 싶던 차에 4명밖에 안되었던 한국인 주재원 중 하나인 내가 우연히 그 Canteen에서 걸린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백인도 캐나다의 주류 민족인 영국계나 프랑스계 캐나다인은 아니었고 동구권에서 온 이민자였다. 동양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들도 캐나다에 살면서 나름 일부 차별을 느끼고 살았을 턴데, 그래도 자신은 큰 범위에서는 같은 백인이라고 더 차별받는 Colored People을 대상으로 과격한 언사를 구사했던 셈이다.
캐나다에서는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을 예를 들어 비난하며, 자신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홍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미국이 여러 인종을 강제적으로 한 문화로 섞어 살게 하는 'Melting Pot' 사회를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은 각 민족이나 인종의 특성들을 인정하는 'Mosaic Society'를 지향하고 있다고까지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캐나다에 실제 거주해보면 캐나다에 그러한 이상과 목표가 존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캐나다 현실이 그 이상과 목표에 일치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캐나다에도 분명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때로는 이웃 미국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이 독립할 때 독립을 반대하는 보수적인 식민지 영국인들 다수가 이주했던 곳이 바로 캐나다라 하니 역사적 측면에서도 그럴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 같았다.
아울러 프랑스나 스페인의 식민역사와는 달리, 영국 식민 역사의 결과를 놓고 보면 원주민이 멸족되다시피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모두 영국이 식민 지배했던 국가인데,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식민 지배했던 곳과는 달리 모두 원주민이 말살되다시피 해서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가장 점포가 많았던 T 모(某) 커피 체인점은 백인이 아닌 캐나다인이 체인점 가맹을 신청하면, 자금력 등 모든 조건이 백인보다 훨씬 더 우월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결코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캐나다에도 미국에서처럼 수많은 이민족들이 있다. 동양인, 흑인, 아랍인 등등. 특히 토론토 한복판의 차이나타운은 그 규모가 워낙 커서, 그 지역에 있는 도로명 표지판도 영어와 함께 중국의 한자가 쓰여 있을 정도였고, 그 지역 안에서는 중국어만으로도 거의 모든 곳에서 대화가 가능해서 영어를 못해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고 들었다.
사실 토론토 인구의 약 11%가 중국인이라 한다. 즉 토론토 거주 인구 10명 중 1명은 중국인이니 너무 많은 동양인이 있다는 그 노부부의 말은 일부 타당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시 인구 10명 중 1명이 흑인이라고 가정해보면 상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토론토 인구의 약 50%는 여전히 백인이라 하니 백인수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많은 것인데 생각해 보면 원래 그 땅에 백인은 0.1%는 고사하고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전체 인구의 50%까지 백인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반면 한때 그 수가 수천만 명에 달했다는 북미의 원주민은 과거 캐나다와 미국에서 벌어진 백인들의 지속적인 학살 행위로 이제는 수백만 명 수준으로까지 급감하여, 토론토 거주기간 내내 눈을 씻고 찾아도 단 한 명도 만나기 어려울 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결국 특정 인종이 왜 이렇게 많냐는 질문은, 오히려 그렇게 사라지다시피 한 캐나다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들이 해야 하는 말이 아닐지? "왜 원주민의 땅 토론토에 백인 인구가 50%나 되느냐고...."
원래 살던 원주민을 쫓아내고 백인들이 들어와서 거주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그다음으로 다시 동양인들이나 흑인들이 들어와서 사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더 이상 오지 못하도록 괴롭히고 차별해도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것 같다.
"너희들은 절대 안 되지만, 우리는 된다"는 특권은 누구도 백인들에게 부여한 바가 없을 것이고, 아직도 그렇게 믿는 백인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착각일 뿐이다.
토론토에는 파키스탄 출신의 사람들이 밀집 거주하는 곳도 있었다. 그 지역의 초등학교에서는 파키스탄 출신 학생수가 압도적 다수이며 백인 학생이 오히려 소수로 역전되다 보니 몇 명 안되던 백인 학생들이 교내에서 따돌림을 받아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는 우스개 소리 같은 얘기도 있었다.
토론토시 인구 중에 백인이 50%라는 얘기는, 백인이 아닌 인종이 50%라는 얘기니 차이나타운이나 파키스탄인 밀집 지역처럼 지역에 따라서는 백인이 아닌 특정 민족이 다수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이나 파키스탄인과 같은 백인이 아닌 주민도 국토 면적 대비 인구가 너무도 적은 캐나다의 정부가 정부 차원 필요에 따라 받아들인 이민자들로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입국해서 적법하게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과거 영국인이 현재 캐나다라 불리는 땅에 들어올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원래 그 땅에 거주하던 원주민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과정들을 통해 정착지를 넓혀 왔으며, 그런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 과정을 거쳐 그 땅의 다수인종이 되었고 주인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니 이제는 자신들 이외의 다른 인종이 유입되는 것을 싫어해서 노골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차별과 괴롭힘을 통해 그들이 그 땅을 떠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제국주의의 횡포가 절정에 달했던 시절 유럽의 다수 국가가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했다. 하지만 원주민이 말살되다시피 한 사례는 영국이 식민 지배했던 곳 외에는 좀처럼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죄를 범한 바로 그 영국인의 후손이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아직도 여전히 주변에 다른 인종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역시 한국어가 어눌하고 우리보다 가난한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외국인 근로자에게 막말하고, 차별하고, 학대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인이 있다.
반면, 그렇게 차별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돕기 위해서 그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사는 한국인도 역시 있는 것처럼, 캐나다에 거주하는 모든 백인 캐나다인이 인종주의자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너무 선하고 고마운 백인 캐나다인도 많이 경험했었다. 인종주의자가 아닌 캐나다인이 있듯이, 인종주의자인 캐나다인도 분명히 있었다는 경험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이순(耳順)을 넘어 고희(古稀)에 다다른 나이에도, 자기 조상들이 식민침략 과정에서 자행한 극악한 죄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못하고,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웃을 차별하는 그 불쌍한 백인 노부부와 같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 백인 노부부도 일종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국가의 어둡고 추악한 과거 역사를 있는 그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깨우칠 기회가 박탈된 일본인이 역사의 진실을 모른채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일종의 피해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들이 2차 대전 기간 저지른 끔찍한 과거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교육시키는 독일이란 국가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일본에도 독일과 같은 그런 처절한 자기반성의 역사 교육이 있었다면 이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살아가기 편한 그런 세상이 되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