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저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처음 만나기로 했던 날, 그러니까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하기로 한 날 J가 고백한 내용이 있다. 아직도 그 말이 참 사랑스럽고 대단하고 또 기특해서 여전히 종종 떠올리는 말인데, 그 뒤로도 우리가 잠시 토라졌다가 다시 화해하거나 아니면 상대의 어떠함에 감동하거나 또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시 새롭게 할 때 서로에게 고백처럼 하게 되는 말이다.
“내가 잘할게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런 것도 못하고, 저런 것도 못하고, 이런 것도 서툴고.......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냥....... 내가 잘할게요.
사랑이란 무엇일까. 많은 시간을 고민해왔지만 그것은 너무 깊은 말이어서 어떻게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내가 돌아보는 사랑이란 그냥 그거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잘하겠노라 하는 마음. 나는 이런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기꺼이 그 노력을 감수하겠다는 마음.
처음부터 잘 맞는 존재는 없다.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맞춰가고 배워갈 것 투성인데, 서로 완벽한 타인으로부터 시작한 관계는 오죽할까. 맞춰가는 것일 터이다. 나를 적게 주장하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는 것. 사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종류의 성격유형과 그 검사는, 단순히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잘 알아둬!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통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에 궁극적인 의의를 둔다.
남녀관계뿐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관계에 유효하다—그렇기에 나는 좋은 결혼 생활을 위해서 여러 이성을 만나봐라는 말보다는 유의미한 인간관계를 많이 경험하라는 말에 더 동의한다.
성숙하고 건강한 사랑은 얼마나 자신을 잘 제어하는가에 있다. 애정 표현을 적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혜롭게 할 필요는 있겠다. 내 생각에 A가 좋을 것이다 생각해도 상대방에게는 A보다 B가 절실할 수 있다. 사람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것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적절한 소통을 하되,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지 말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보통 싸울 때, 어떤 말을 던지면 120% 이상의 효과를 내는 비수가 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칼을 꽂고 나서 드는 카타르시스는 고작 순간인 것에 반해 상처와 죄책감의 유효기한은 보다 훨씬 길다. 때로는 그것이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트라우마처럼 오래 남을 때도 있다. 이런 비극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종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데 어떡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것이 어렵고 제어가 되지 않고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잘하려고 하는 거다. 사랑하니까.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우며 어렵고도 도저히 지키기 힘든 말씀인지. 하지만 동시에 또 얼마나 도전이 되는가. 그러니 잠시 묵상하며 그렇게 다짐하는 것이다.
내가 더 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