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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빈 Mar 19. 2021

나는 나의 불안을 사랑하기로 했다.

불면으로부터의 사색

지금 시간은 AM 2:59. 오랜만에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억지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낮은 음량으로 틀어보기도 하고 잔잔한(다른 말로 지루한) 영화를 삼십 분가량 시청해보기도 했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은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루하고도 지루한 글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잠을 청해보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해본다.


사실 알고 있었다. 최근 벗어난 극도로 수면량이 부족한 직장을 다니기 전까지, 나는 지독한 불면증 환자였다.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았으니 환자란 말은 부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주관적인 불편감은 유의미한 것이었으므로 그에 준하는 수준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리학자로서 부끄럽게도 수면장애의 생물학적 기전이나 원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혼자 생각해본 불면의 이유는 딱 두 가지인 것 같다. 다음 날이 너무나 기다려지거나, 혹은 아무 희망 없이 느껴지거나.


불면의 시발점이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대체로 과거의 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일정의 스펙트럼 상에서 간간히 하나하나의 장면이 지나갈 뿐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더듬어 가다 보니 중학생 때 게임, 판타지 소설에 중독되어 공상, 환상에 사로잡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몽롱한 상태로 수업을 들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사례는 다음 날이 너무나 기다려져 잠을 자지 못하는 예시로 떠올린 것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후자에 가까운 듯하다. 나의 유년기(혹은 현재)의 삶은 언제나 불안했다. 어머니로부터 과거력을 청취해봤을 때(아버지께서는 나의 유년 시절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비교적 태평하고 아무거나 잘 먹던 누나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예민함을 드러내고 입 맛에 잘 맛지 않으면 구토를 하던 나의 속성은 애초에 불안 민감성이 높은 성정을 지녔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거기에 더해 사업으로 바빠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 어머니, 집안에 무관심한 아버지, 경제적 문제로 인한 가정의 붕괴까지 더해진다면 불안 그 자체인 인간이 탄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일정 기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게 보였다.


불안에 둘러싸인 아이는 생각보다 파국적인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나갔고, 나쁘지 않은 교우 관계와 학업 성취를 이뤘으며, 모범적인 상이 될 만한 어떤 가족 구성원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호기심을 갖고 이런저런 분야의 지식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다른 불행한 가족의 엇나가는 자식들을 보며 우리 아이는 참 바르다며 안심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따금 이유 없이 몸에서 열이 나고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당시의, 그리고 최근까지의 나는 그저 내가 지나치게 상상의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신이 붕괴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게임 속, 만화 속의 세계는 그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표현되는 방식은 완벽했다. 일정한 크기, 좌우대칭의 완벽한 비율로 제공되는 캐릭터와 아이템들, 나약하지만 정의로운 주인공이 성장하여 끝끝내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강대한 적을 물리치는 완결성 있는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성. 내가 살아갔던,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세계와는 달리 그 세계의 끝은 완벽하게 아름답거나 완벽하게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도 나의 얼굴이 대칭이지 않은 것에 상당한 불편감을 느껴 튀어나왔다고 느껴지는 측면을 반복적으로 매만지고, 최대한 규격화된 걸음을 걷기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다시 돌아가서, 극도의 수면부족을 유발하는 근무환경에 수년간 가려지기는 했으나, 이러한 공상과 불면은 사실 꽤 최근까지도 이어졌던 모양이다. 최근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과도한 업무량이 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며, 직장을 그만두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은 상기한 과거의 행동 양상을 봤을 때 사실 무능력자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덮기 위해 바닥 끝에서 뽑아낸 솜털 같은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퇴직 후 얼마간은 그런 자신감이 유지되었다. 초중고, 대학, 대학원, 병원 수련을 거쳐 드디어 나름의 전문적인 자격증까지 취득해냈다. 다른 사람들이 각각의 단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 나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기어가서라도 성취를 이뤄 결국 내가 그토록 고대해온 자격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각각의 단계에서는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한시도 쉬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해왔으니, 이제는 마음을 좀 놓아도 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퇴사 후 1~2주 간은 즐거운 마음으로 보냈다. 진실하게 앞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 중 가장 걱정 없고 행복한 시기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급하게 찾아온 즐거움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으므로, 자연의 이치에 맞게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이 세상에서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고, 나라는 존재가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여전히 수십만, 수백만 가지의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재밌게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저 피하고 피해왔을 뿐. 나는 항상 사실을 직면하기를 꺼려하고 나만의 갖가지 근거를 만들어 회피했다. 이번에도 그저 내가 나 했을 뿐이다.


이제는 이러한 불안을 받아들이려 한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자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불안하면 불안해하고 우울하면 우울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커피, 술을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불행한 생각이 조금은 잊힐 것이다. 누군가 말해준 것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조금씩 긍정적인 경험들을 찾다 보면, 언젠가는 이상향처럼 느껴지는 불안이 없는 안정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괴로운 현실로부터 도피하며 자위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주 약간의 희망만이라도 안고 살아가는 삶이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인다.


결국 불면의 밤이 끝날 것을 안다. 불면 끝에 잠이 들거나, 시간이 흘러 밤이 끝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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