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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감독 Mar 30. 2022

이 정도면 감정 수집가 아닌가요?

나를 반증해낸 3월



나는 어떤 일을 가장 잘하나요?


내가 어떤 일을 잘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열거하기 바빴던 3월이었다. 이유인 즉 휴식기에 급하게 한 회사에 입사 의뢰를 받아 근무하게 되었고, 서로 엇나갔던 업무들에 다시금 이른 이별을 고하고 나는 나의 일을 직접 찾기로 했다. 우선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제일 열심히 미친 듯 고민했다. 한 가지 명확한 점으로 통일되었다. "내 능력으로 회사를 알리고 회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자" 즉 브랜드 에디터의 직무를 하고 싶어졌다. 이번 기회에 하고 싶은 게 명확해진 건 아니었다. 그간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제일 재밌었지만 또 제일 두려웠던 지점들이 많이 있었다. "나의 인터뷰 글이 이 기업을 평생 기록하는 것. 즉 기업의 자전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고로 정직하게 선하게 이 기업의 가치를 기록하자"의 신념을 가지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다. 세상에 콘텐츠가 공개되면 이제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왕이면 그 기업의 기록들을 잘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 철학, 회사의 존재 이유 등을 많이 들었었고, 그런 내용을 정리해오며 정말 진실성 있는 회사를 만나 그 회사를 내가 널리 알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을 꾸준히 해오다 드디어 직무를 찾았고 여러 회사 브랜드 에디터에 지원하기 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열거하기 위해 나 자신을 많이 돌이켜보고 다시 한번 나에 대해 알아가고 정립해온 시간이 있었다. 3월 참으로 복잡했다.








바깥수니는 코로나 격리가 지옥 같았지만 또 나름 느낀 것들이 있다.



지금은 퇴사했지만 첫 출근을 하자마자 그다음 날 나는 따끔한 목 증상에 곧장 코로나를 직감하여 병원을 방문했고 확진자의 선고를 받았다. 회사에도 민망했고, 나는 멘붕이 찾아왔다. 내가 최근 들어 가장 무서워했던 상황이었다. 나는 하루에 4번 정도 외출을 강행한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 식단을 먹고 다시금 마트에 갔다가 카페도 가고. 약속도 가고. 또 까미와 하루 마무리 산책까지 진행해야 나의 하루가 끝나는 루틴이었다. 집에 긴 시간 있어본 날도 없었고 집에서 늘어져 쉬는 시간을 나는 싫어했다. (찐 바깥수니)


그런 사람이 자진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집순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암담했다. 그렇다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옮고 아파지는 건 또 싫고 무서웠다. 그렇게 확진의 소식을 듣고 집으로 향하며 나는 여러 생각을 했다. 일단 운동은 어쩌고 까미 산책은 어쩔 것이며 내 우울함은 어떻게 해소를 해야 하고 24시간을 어떤 식으로 보내야 하는지 누군가 시간표라도 짜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건 나의 오만함이었고 사실 너~~ 어무 아팠던 나머지 나는 거의 힘없이 누워있거나, 약에 취해 잠들거나, 거진 병든 닭 마냥 생활하기 바빴다.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정말 주변인들에게 고마웠던 적이 많다. 심심하거나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여은파(민지, 여의, 지혜, 윤지, 송아)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보냈고, 이게 참 큰 위안이 되었다. 집에 혼자 있어 고립되기 쉬운데 각자 업무 이야기, 오늘 느낀 감정들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나를 너무 즐겁고 편안하게 해 주었단 걸 언니 친구 동생은 알까 모르겠다. 다들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가족들 그리고 미정 언니

혼자 자취를 하니 가족들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 말하면 문 밖에 사다 두고, 걱정된다며 매일 전화하고 특히나 동생도 많이 찾아와 주었다. 이렇게 가족들이 문 앞에 두고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반갑고 애잔하고 빨리 격리 끝나고 달려가서 보아야지 하며 애틋한 마음을 줄지 몰랐는데, 오랜만에 가족들이 그냥 가족이 아닌 애틋한 나의 가족이 된 것 같아 느낌이 새로웠다. 또 미정 언니는 가장 웃겼는데, 겁도 없이 자고 있으면 문을 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의 라떼를 사다 주고, 몸에 좋다는 약도 구해주고 자주 찾아와 주었다. (우리 아빠도 무섭다고 문 앞에 두고 도망갔는데... 언닌 겁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외에도 나의 친구 은빈이는 심심할까  뜨개질 세트도 보내주고 (물론  손재주가 없어서 하다가 포기했다. 미안..) 찬규는 굶는  안된다며 나의 밥을 챙겼다. 덕분에 먹기 싫은 날에도 죽도  그릇  먹고,  먹기도 인증하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힘이 많이 되어주었다.   주변인들 모두 각자 일상을 살아가면서 고맙게도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고,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마웠다. 그러면서 다시금 느꼈다. 인간은 절대 혼자서   없다. 그러니 주변인들에게  하자 송아야.



까미에게도 힘들었던 나의 격리. 결국 이틀 차에 아빠가 까미를 데리러 와서 본집으로 갔다. 까미는 영문도 모르고 나가지도 않고 누워만 있는 언니가 애석했겠지?


사랑들









사람이 감동받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없을 수도



힘들었던 코로나 격리가 끝나고 나는 가장 첫 번째 외출로 월미도를 가게 되었다. 내가 직접 생각한 건 아니었고 바깥 수니였던 내게 바람을 쐐어 주겠다며 데려간 곳이 바로 월미도였다. 어릴 때에 많은 추억이 있던 장소였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랜만에 찾아갈지 몰랐다. 너무 반가웠다.


일단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1. 바다를 좋아함  2. 바람 쐐러 가는 행위 자체를 설레어함  3. 가끔은 분위기 먹는 걸 행복해함 (조개구이와 새우를 먹었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조합을 내가 직접 떠올린 게 아니라 날 생각해주고 심도 있게 고민해주어 직접 데려가 준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난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었고, 행복한 하루였다. 알긴 알까. 이 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신나는 음악을 듣고 새우 까주는 걸 애기처럼 받아먹으며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내가 가장 빛이 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




위와 같은 생각에 잡아먹혀 하루를 통으로 우울하게 자책하며 지내던 날들이 많았던 한 달이었다. 남들은 내가 기쁘게만 사는 줄 알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밀조밀 연약한 심줄들이 꼬여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일이 정말 쉽지가 않다. 남들보다 느끼는 감정도 너무 방대하고, 그 깊이도 가끔 턱턱 숨이 막히게 내려간다. 언제는 또 그 사실을 인정하며 나를 잘 다독이고 살아낼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도 또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밀려올 땐 정말 힘이 든다. 그 힘이 든 시기가 이번이었다. 이유인 즉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모르면 도대체 누가 날 알아줄 것이고, 누구랑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확장되었다. 나는 나를 잘 알아야 일도 할 테고, 즐거운 일상을 마주 할 테고, 또 건강도 할 텐데.

그런 고민들을 한 참 했던 때. 나는 내가 정말 빛나 보이지 않았다. 정말 빛나는 나의 한때가 이렇게 저무는 걸까?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잠시 했었다. 무언가 결정하기 전 나는 가장 많이 흔들리고, 내가 다짐했던 것이 외부적 요인으로 무산되는 순간도 굉장히 큰 타격을 얻는다는 걸 이번에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러곤 지금 현재는 모든 사실을 인정했고, 그래도 그래도 나를 잘 다독이며 고민하며 나름의 답을 내려 현재는 모든 상황이 안정되었고, 명확히 정리가 되었다.


그러고 내가 내 삶에 다시 몰입하게 되고, 무언가 성취감을 느끼는 날이 잦아지면 분명 나는 다시 또 빛이 날 것이다. 빛이 안나는 시기에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나를 최우선으로 알아주는 것, 남에게 기대기보단 내가 나를 스스로 기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앞으론 이 부분을 절대적으로 지켜가며 살아야지.









친구의 생일이 가장 많은 3월



3월에 생일인 친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이번 3월에는 내가 많이 힘들었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생일을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미세하게 들었다. 늘 매일 같이 안부를 묻는 친한 친구들이지만 생일엔 정말 마음껏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내 마음이 힘들단 핑계로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친구를 먼저 만났는데 늘 그렇듯 떠올려보니 우리는 서로를 매년 축하해주기 바빴다. 서로의 취향을 너무나 명확히 잘 알고 있어 서로를 기쁘게 하는 일에 가끔 중독이 된 걸까? 싶을 정도로 알뜰살뜰 서로를 기쁘기 하기 위해 깜짝 선물을 많이 주고받았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친구가 너무너무 기뻐해 주었고 그 모습이 나는 너무 행복했다. 이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러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서로 회사와 사업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잘 안될 때 무언가 가라앉을 때 그게 굉장히 내 탓이라고 자책을 많이 했었어. 사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던 시기도 있었고, 또 아래로 내려가면 다시금 위로 올라오는 걸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땐 왜 이렇게 그걸 모르겠던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의 문제부터 찾기 급급했고 나의 능력이나 상황들에 대한 자책을 많이 했었어. 그런데 이젠 알지. 좋았다 나빴다 전부 사업에도 동일하게 된다는 걸!"


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친구가 정말 사업을 해오면서 많이 성숙해졌구나 느꼈고, 언제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건가 서글퍼졌다.(는 뻥이다. 성숙해져서 좋다) 친구한테 꼭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어린 나이부터 그렇게 도전해오면서 코로나며 뭐며 힘든 외부적인 요소들이 많았을 텐데 항상 네가 대견했고, 또 너도 알듯 정말 너의 탓은 없다! 그저 인생처럼 나빠졌다, 좋아졌다 적자였다 흑자였다 늘 반복되는 것은 순리이다라고! 친구야 고생했다. 고생 더 해서 예쁜 거 또 많이 사줘 ^_________^









엄마가 그냥 전화를 했다고 하고 한참을 침묵했던 날



코로나가 끝이 나고 격리 기간 동안 엄마랑 수다를 떨지 못해 엄마랑 날 좋은 날 드라이브 겸 카페를 가서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엄마는 내가 창피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지만 이 날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그런 엄마 모습을 바라보는데 귀여웠다.


어젯밤. 엄마한테 부재중 전화가 와있어서 다시 하곤 또 어떤 잔소리를 늘어놓을까 별 기대 없이 퉁명스럽게 전화를 이어갔는데 엄마는 계속 그냥 전화했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점점 귀찮아져서 "왜 전화한 거야 왜~"라고 말했고, 엄마는 한참 뒤에 나지막이 "엄마 친한 아는 사람이 죽었대"라고 말을 했다.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고, 나 자신이 참 이상했다. 눈치도 빠르고 사람들 감정에도 예민하여 모든 느낌을 잘 캐치해내면서 왜 정작 엄마의 망설이는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퉁며스럽게 말을 했을까.


"친한 사람이었어?"

"그렇지"

"장례식 가야겠네?"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야지... 언제 마지막으로 뵈었는데?"

"맨날 보자 보자 했는데 내가 바쁘단 핑계로 피곤하단 핑계로 미뤘는데 그래서 내일은 꼭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죽었대. 하루만 기다리지"

"만나기로 했었다고 내일?"

"원래 아팠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해서 보러 가려고 내일 간다고 말을 해놨는데 하루를 못 기다려줬어. 참 그렇다"



엄마는 오전부터 울어서 목이 찢어질 것 같다고 말했고, 나중으로 무언가를 미룬다는 게 이렇게 큰 일을 불러올 감정인지 다시금 느꼈다며 많이 힘들어했다. 엄마가 많이 슬퍼 보였다. 그렇지만 딱히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나는 오늘 아침 다시금 전화를 했다.


엄마가 그 분과 잘 이별하는 시간을 보내길 바랄 뿐이다.








내 몸을 그냥 사랑하면 안 될까



엄마는 항상 과한 내 몸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또 내가 주목받는 것을 옆에서 바라볼 때 굉장히 싫어했다. 엄마랑 이 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남다른 발육을 보였는지, 난 어릴 때도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기억으론 고등학교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고 크면서 더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사실 나지 않는다. 그냥 자라다 보니 난 이런 여성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것에 적응을 하게 되었고.


적응하기까지 사실 어려움도 많았다. 남다른 모습에 왜 난 늘 과하지? 싶었고,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부끄러워서 오히려 가리고 다니기도 했다. 엄마의 요구에 더욱 그런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엄마랑 세부 여행을 갔을 때에도 엄마는 휴양지에서 수영복을 입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무덥게 찌던 휴양지에 나를 꽁꽁 싸맬 궁리만 하던 엄마의 모습에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역으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내 체형이 어때서?, 뭐가 잘못된 건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엄마에게 나는 더 예민하게 굴었던 적도 많았다. 그 후 나는 더 삶을 뒤바꿨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몸을 사랑하고, 나의 특징을 인정하고 그것을 더 이상 숨긴다거나 스스로 부정적인 느낌을 갖지 않겠다고 말이다.


정말 엄마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의 몸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게 나고 나라서 난 좋고, 좋은 점을 더 강조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내 최선의 노력이고 행복이라고.









내일 당장 해야 하는 일을 멋지게 해내는 것부터가 성공의 지름길 아니겠나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간극은 늘 살면서 가져가야 하는 숙명의 숙제인 것 같다. 사람이 왜 그렇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멋진 인생을 사는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 예전엔 나도 이렇게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지금은 또 아니다.  (위의 말에 너무 극 공감이다)


해야 하는 일, 내게 주어진 일, 내가 내일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을 등한시하고 하고 싶은 일만 매진하게 된다면 결코 쾌적한 행복을 가져와 주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미래를 위해, 내 감정적 만족도를 위해 그렇게 일상의 밸런스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오버하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성취밖에 느끼지 못한다. 실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들어가는 일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 부분과 맞닿아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해내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같이 하게 되거나,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과중되다 보면 회사의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되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도. 시원한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해야 하는 일로 바꾸는 게 맞는 것 같다. 난 그걸 아직 못하기 때문에 회사에 다시 들어간다. 열심히 한눈팔지 않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정말 열심히 업무를 이행할 것이다.








배달의 설렘


그냥 문득 도시락을 쌌다. 김밥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김밥을 먹을 수 없었고 그래서 급하게 장을 보고 닭가슴살 김밥을 후루룩 만들어서 배달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무언가 만들어 선물하는 걸 좋아했다. 가장 재미있고 가장 위트 있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먹는 행위는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라 딱히 특이할 것도 없어서겠지?


아무튼 배달하는 길 혼자 설레었다.


요 근래 이런 느낌을 자주 받았었는데, 자주 받으면서 또 자주 복잡했다. 내 마음이 어떤 가까운 사람에게 전달될 때 부정적으로 혹은 상대방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주 내 마음을 정돈하기 바빴다. 사랑한다고 해서, 어떠한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내가 상대방을 복잡하게 만들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을 온전히 풀어내지 못할 때가 많아진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존중을 기반으로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아낌없이 좋은 마음을 나누되, 그 사람을 전부 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정말 그렇게 잘해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정작 그렇게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잦은 다짐은, 본인의 목표가 자꾸 흔들리는 결과를 반증한다고요?



최근 가장 뼈 맞은 문장.


돌이켜보니 요즘 계속 나는 무언갈 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일이 잦았다.

"다이어트해야지"

"식단 잘 챙겨야지"

"까미 잘 챙겨야지"

"내 주변인에게 다정해야지"

"운동 빠지지 말아야지"

"글 열심히 써야지"


생각해보니 무언갈 정말 열심히 하고 있었다면 다시금 다짐하는 일이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문장은 한 줄인데 무수한 생각을 쏟아내게 한다. 글을 쓰면서 마침표도 이렇게 해야지. 이런 내가 되어야지하는 반성을 남기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 또한 나의 흔들리는 목표임을 인증하는 것 같아서 이번엔 글을 그렇게 끝내지 않으려고 한다.


송아야 3월. 당황스럽고 복잡하고 스스로를 알아내고 결정하기까지 많이 힘들고 몸도 아프고 약해졌단 핑계로 주변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열심히 분투하여 결정을 내렸고 행동을 했고. 잘했어. 4월에는 열심히 산 마음들에 대해 이제 작성해보자. 4월 파이팅. 이 글 본 사람들도 모두 4월 따스하길! 바라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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