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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07. 2021

드라마에 나오는 오빠와 현실 오빠

나에게 오빠는 별로 쓸모없으면서도 손만 많이 가는 존재다. 내가 누워서 가요톱텐 같은 걸 집중해서 보고 있을 때 발로 툭툭 차면서 “야, 라면 하나 끓여 와”라고 하는 게 바로 오빠다. 사춘기의 정점에 있던 나는 “먹고 싶으면 네가 끓여먹어라”를 오빠가 알아듣기 쉽도록 접두어를 사용해서 짧고 임팩트 있게 말해줘야 했다.   

   

한 살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오빠는 가을동화에 나오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나로서는 그 드라마를 나도 모르게 나오는 새어 나오는 실소와 어이없는 표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원빈이 “얼마면 돼?”라고 할 때, 나는 오빠(송승헌)가 여동생(송혜교)을 챙기는 걸 보며 “저런 건 다 거짓이야”라고 했다. 결국 나는 외동도 아니면서 남매도 자매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정서를 가지게 되었다.     


“김치 맛있드나?”     


엄마가 택배를 보낸 다음 날 엄마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보내준 파김치는 최고였다. 김치에는 두툼한 오징어도 많아서 생김에 밥을 싸서 김치와 오징어를 번갈아 먹었더니 꼭 충무김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밥을 끝도 없이 먹게 된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했는데 세 그릇째 밥을 푸면서는 파김치를 눈에 안 띄는 곳에 둬야 되나 싶기도 했다.     


그렇다. 김치는 큰 이모가 담은 것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이모들 사이에서 엄마는 주는 음식을 받아오는 역할만 40년째 수행해오는 중이다. 첫 딸을 시작으로 딸만 내리 다섯을 낳은 외할머니는 느즈막에 아들 둘을 얻었다(다섯 번째 이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둘째인 엄마가 중학교 입학통지서를 내밀었을 때 외할머니는 돌이 갓 지난 큰외삼촌을 어르며 “여자가 무슨 공부냐”라고 했다. 아마 두세 살 터울의 이모들도 각자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이지 부모가 안 해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일찍부터 돈을 벌어서 어떻게든 집에 보태주려고 애를 썼다.

      

내가 보기에 엄마는 동생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유독 큰 이모한테만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케케묵은 옛날 일을 들추어내서 큰 이모를 울린 일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일과 상관없이 큰 이모는 자매들이 모일 때면 싫다는 엄마에게 몇 번씩 전화해서 오라고 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워놓고 매실진액 같은 걸 가지고 가라고 하는 큰 이모의 마음이 나는 꼬꼬마 시절부터 궁금할 때가 많았다.      


큰 이모의 텃밭에서 자매들은 자주 만나서 대량으로 산 식재료를 나누고 반찬을 만든다. 우리 엄마와 비슷하게 생긴 네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번에 엄마가 파김치를 가지러 갔을 때 이모들이 텃밭에서 일을 하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 엄마가 주꾸미 볶음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예상대로 주꾸미 볶음은 너무 짜서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엄마는 분명히 밭에 있는 이모들에게 “간장을 얼마나 넣어야 하냐”라고 물었지만 “알아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엄마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을 나한테 전했다. 간장병을 들고 자신 없는 표정의 엄마를 상상하니 나는 어째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큰 이모가 책가방을 사서 우리 집에 왔던 날이 기억난다. 유명 메이커 가방이었다. 1년 전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 때는 두 명의 고모와 삼촌이 와서 오빠한테 가방과 옷을 사주고 우리 집에서 왁자하게 밥을 먹고 갔다. 이듬해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할 살림에 나와 비슷한 또래에 자식을 키우고 있었기에 경제적인 부담이 되어서라는 걸 지금은 나도 안다. 오빠에게 용돈을 준 건 아빠를 생각해서 그랬다는 것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오빠가 받은 것들을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막내 고모가 “네가 학교 들어갈 때는 국물도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어쩌면 내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까지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는 걸 봐서 나에게는 상처였고 서운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고모도 아마 당시에 마음이 힘든 일이 있었고 혹시 사실이었더라도 진심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매운 파 때문인지 눈물이 스민다. 파를 하나하나 다듬어서 정성스럽게 담은 큰 이모가 생각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모들은 내가 중고등학교 입학할 때, 수능시험을 보는 전날에도 찹쌀떡을 사서 우리 집에 왔다(이모들은 항상 단체로 움직였다). 조금 소란스럽고 수다스러운 이모들의 마음속에는 오빠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나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신들이 아들이 아니어서 받은 설움 때문에 그걸 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원망보다는 조카를 챙기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다돋이려고 한건 지도.  

    

그냥 이모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푸근하고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이모들의 상처 때문이었다니. 조금 늦게 알게 되는 게 있다. 나만 상처 받았던 건 아니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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