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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21. 2020

맛있다고 안 해서 미안해요

전교회장이 된 날, 초밥이는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에게 공을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나 전교회장 됐어.”

“그래, 그런 거 할라마 공부도 잘해야 되고, 책도 마이 일어야 된데이.”

모든 얘기를 공부 얘기로 귀결시키는 할머니. 이번에도 마음 넓은 초밥이가 이해해줬다.

“응, 할머니 그럴게. 사랑해.”


재작년에 엄마가 대구로 내려갔다. 초밥이가 3살 되던 해 봄부터 11살이 될 때까지 8년간 우리 3대는 함께 살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 역할을 유예해 왔다. 엄마가 가고  직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엄마의 존재를 강력하게 느낀 시기였다.


전처럼 아침에 늦잠을 자다가 “아참, 엄마가 없지, 아침밥”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밤늦게 퇴근해서 새벽에 잠든 내가 간신히 일어나 차린 밥상이었다. 그래도 밥을 먹는 녀석을 보니 뿌듯함이 밀려와서 물었다.

“맛있어?”

“먹을만해.”

먹을만하다니.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으며 내가 꼭 그랬다. 내가 한 말을 (입장이 바뀌어서) 딸한테 들으니 미안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 매일 아침밥 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맛있다고 안 해서 미안해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엄마가 말했다.

“그래, 알아주이 내가 더 고맙다.”

“엄마 어제는 꼬맹이가 설거지를 했더라고.”

“아이고, 잘한데이. 둘이 도와가 그래 하면 된다.”


이런 말이 몇 번 더 오가면서 아침드라마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엄마의 커다란 사랑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철없는 딸 역할을 한 내가 전화를 끊자 초밥이 날보고 쿡, 하고 웃었다.

“할머니 보고 싶어?”

“아니, 할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손녀의 엄마 노릇까지 하느라 고생한 엄마. 너무 늦게 철이 든 딸이라 미안했고, 나밖에 모르는 딸이라 면목이 없었다. 엄마가 떠난 직후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엄마와 가까이 있던 때였다. 반면 엄마는 이제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통화는 자주 해도 온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일 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엄마는 한 번도 군산에 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제 내 할 일은 끝난 거다. 캠프는 해산이다,라고 생각했는데(공약이다 뭐다 하면서 녀석이 날 엄청 귀찮게 했다)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무슨…”

“수학여행 건으로 회의를 하는데 학교 운영위원 자격으로 어머님이 참석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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