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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11. 2020

엄마, 이번 김치 대성공이야!

요리를 못하는 엄마의 자식들

세상에서 엄마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말을 우리 남매는 알지 못한다. 대신 "엄마 음식 말고는 다 맛있다"는 말에 우리는 뜻을 같이 한다. 우리는 외롭다. 모든 이들이 엄마의 음식을 찬양할 때 우리는 소외감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모든 엄마가 음식을 잘하는 건 아닐 텐데 요리를 못하는 엄마의 자식들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오빠네 집에 가서 자고 난 아침, 나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마트에 가서 콩나물, 두부, 파를 사 와서 콩나물밥을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너 진짜 집에서 이런 거 해 먹고 사냐?"

오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콩나물밥이 뭐라고.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는 오빠와 세 끼 빵만 먹어도 충분하다는 올케는 환상의 커플이었다. 뭐 각자 좋아하는 걸 먹고살면 그걸로 된 거지만 오빠에게는 콩나물밥이 아직 TV에만 나오는 음식일 뿐이었다. 한 번은 내가 본가에서 배달음식 책자를 보고 있는데 올케가 말했다.


"아가씨, 오빠하고 똑같다, 오빠가 광고를 하나하나 자세히 읽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데 아가씨도 똑같잖아요. 하하하하."

    

아... 오빠도... 아직... 벗어나지 못했구나. 언니는 모르잖아요. 우리 남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의 심정은 올드보이의 오대수만이 알 거라고요. 순간 나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가장 많이 보아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연민, 책임감 같은 걸 느꼈다.

  

우리는 광고 책에 나온 음식 사진을 보면서 상상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고 언제든 전화만 걸면 그 음식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보다 오빠의 "떡볶이 시켰는데 먹을래?"라는 말이 더 반가웠다.


"신전 떡볶이의 전신은 신천 떡볶이인데 신천의 후추 맛을 빼고 보편적인 입맛에 맞게 변형했어. 공장은 너희 고등학교 옆에 있는데 본 적 없냐?"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오빠는 잘도 했다.    

  

엄마의 단조로운 식단과 입이 짧은 오빠는 최악의 궁합이었다. 오빠는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독립군처럼 엄마의 음식을 거부했고 꼿꼿하게 라면을 주식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이후 그는 라면의 계보와 변천사에 대한 자잘한 지식 갖춘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반면 나는 아무거나 잘 먹는 잡식성으로 쌓은 내공으로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이것이 진정한 엄마놀이의 완성이구나, 콧물 줄줄 흘리면서 흙으로 밥을 하고 풀 뜯어서 반찬을 만들던 시간은 바로 오늘을 위한 예행연습이었어. 나는 '최고의 요리비결'을 찍는 심정으로 매일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엄마의 무한 반복 식단으로 억눌린 식욕이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이름만 들어온 음식들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데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다.


비지찌개, 청국장, 부대찌개, 오리엔탈 소스의 새우나 닭 가슴살, 버섯 샐러드, (지금은 비싸서 못 먹지만) 연어샐러드를 만들었다. TV 혹은 다른 집 식탁에만 있고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메뉴에 도전했고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일수록 만들기가 쉽다는 걸 알았다.    


흔한 음식은 만드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설거지 거리도 많이 나온다. 고사리무침을 예를 들자면 말린 고사리를 반나절 물에 담가놓았다가 데치고 갖은 양념을 하고 볶아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공을 들이고 접시에 담아도 그저 평범한 반찬 한 가지일 뿐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연기력이 좋아도 조연밖에 될 수 없는 배우처럼.    


   



엄마 김치가 택배로 왔다. 하얗고 파란 엄마 김치. 양념과 섞이지 못하고 고춧가루들이 점점이 박힌 김치는 생김새부터가 일반 김치와 달랐다. 물김치라고 하기에는 물이 모자랐고 배추김치라고 하기에는 양념이 턱없이 부족했다. 김치를 보고 있자니 지난 식탁풍경이 저절로 그려졌다.    


"이모가 줬는데 무봐라."

딱 봐도 엄마 김치였다.

"안 속아요."

이런 거짓말까지 해야 했던 엄마와 늘 이모의 구호 반찬에 목말랐던 우리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엄마 김치의 맛을 봤다. 정말 아무 기대 없이.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맛있었다! 김치는 시원하면서 칼칼했고 MSG가 1도 들어가지 않은 산삼 같은 맛이 났다. 자식한테 주려고 속이 꽉 찬 배추를 골라 손수레에 끌고 와서 부족한 솜씨로 어떻게든 잘 담아보려고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고춧가루는 얼마를 넣을지 액젓은 무얼 쓸지 어떤 확신도 없는 엄마가 애쓰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소금 하나를 치는데도 조마조마해하면서 여러 번 반복했을 엄마, 그걸 아는 나로서는 이 맛이 보통이라면 나올 수 없는 몇 번의 우연과 희박한 확률이 낳은 결과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김장철이 되면 주변에서 자식들한테 김치 몇 포기를 보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는 마음이 불편했을 거다. 엄마로서 책임을 못해주는 것 같아서 미안해했다(물론 우리는 괜찮다며 엄마를 극구 말렸지만). 이제껏 맛있게 해주지 못한 모든 음식들이 엄마의 가슴 속에 걸려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이번 김치 대성공이야!"

엄마는 그간 쌓였던 설움 때문인지 조금 울먹거리면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어쩐지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오빠 엄마 김치 맛있어졌어. 이번에는 먹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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