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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로 금메달을?

포기를 배워야 할 때

by 김준정 Oct 13.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 ‘스트리트 파이터 V’로 금메달을 획득한 김관우 선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인지도 몰랐는데 그것도 스트리트 파이터로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다. (알고 보니 e스포츠는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우리나라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한 바 있었다)     


아, 스트리터 파이터, 바로 우리 집의 불화의 씨앗이자 아빠에게는 악의 축이 아니던가.      


“오빠야 가지 마라. 탐구생활시간에 아빠 검사하러 온다.”

“내 꺼 할 시간에 올끼다.”     


70년대생인 우리에게는 방학에 하는 탐구생활이 있었다. 유치부부터 초등 1학년에서 6학년까지 10분에서 15분 정도씩 라디오로 그날의 과제에 대해 듣고 하나의 탐구문제(?)에 답을 하는 것이었다. 오빠와 나는 연년생이라 나 다음이 오빠 차례였다.      


“오빠 어디갔노!”

아빠가 방문을 확 열며 말했다. 

“자기 꺼 할 시간에 온다 캤는데.”

“니 꺼 끝나면 찾아 온나!”     


아빠가 일하는 공장은 집과 하나였다. 옆에 나란히 붙은 게 아니라 화장실과 수도를 공동으로 쓰고 아빠와 두 명의 직원도 집에서 밥을 먹었다. 아빠가 그런 집을 전세로 얻은 이유는 수도세와 식비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오빠와 나를 ‘관리’ 하기 위해서였다.     


물건도 아닌 오빠를 찾으러 가는 일은 그 시절 나의 임무였다. 오락실의 새시문을 쓱 밀고 들어가면 둘러볼 것도 없이 가장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빠 성났다. 빨리 인나라.”

“이 판만 죽으면 가께.”     


오빠가 말한 그놈의 이 판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지 않았고 구경하는 아이들의 숫자만 점점 늘어났다. 매번 지난한 실랑이 끝에 오빠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판이 아직 죽지 않았는데) 겨우 엉덩이를 떼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빠와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는 화가 난 아빠가 회초리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개를 푹 숙이고 앞서 걸어가던 오빠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오빠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오빠가 어서 오락을 끊어서 우리 집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오빠가 오락을 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은 그때 나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다시 현재, 나는 김관우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기사를 오빠한테 톡으로 보냈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데 오빠는 어떤 기분일까. 35 년간 썼던 억울한 누명을 벗는 기분?      


어쩌면 우리 집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나오고, 내가 금메달리스트 동생으로 인터뷰를 했을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어요. 어른들 말을 들어보면 오빠는 다섯 살 때부터 빤쓰만 입고 오락실에 앉아있었데요. 오빠는 정말 밥만 먹으면 오락실로 달려갔어요.”     


이런 인터뷰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영어 알파벳을 몰랐었는데, 오빠는 어떻게 알았는지 게임기에 끝판까지 간 사람 명단에 자기 이름 이니셜을 입력했다. 다른 일에는 귀차니즘으로 일관했지만, 게임에는 진심이었다. 

     

오빠는 우리 동네 오락실에 안주하지 않고 틈틈이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가서 새로운 게임이 없나 조사한 뒤, 목표가 생기면 최후의 일인이 될 때까지 부단히 연마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다 ‘떡잎부터 달랐다’의 신화에 들어갈만한 이야기였는데 어쩌자고 우리 집에서는 악의 축이 되었는지. 산업화시대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긴  했지만, 아빠가 그렇게까지 철두철미하지만 않았어도 오빠 인생이 게임으로 풀렸을지 모른다. 게임계의 스티븐잡스, 임요한 선수가 되었을지도.     


금메달을 딴 김관우 선수는 1979년생으로 78년생 나와 77년생 오빠와 동시대를 살았다. 예외 없이 김관우 선수도 어릴 때 게임 때문에 등짝스매싱을 무지하게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관우 선수 어머니는 어느 시점에서 그렇게 좋으면 마음대로 하라며 ‘포기’ 했단다. 아, 포기는 우리 아빠의 인생 사전에 없는 단어다. 아빠한테 포기만 탑재되었어도 우리 오빠가 항저우에 가있을 뻔했는데.     


내가 이 귀한 건수를 놓칠 리가 있나. 포기를 모르는 아부지에게 대담을 신청했다.  

   

“아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스트리트 파이터로 금메달 딴 거 봤죠?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하노? 나도 오빠한테 정 게임이 좋으면 게이머가 되던가 하라꼬 캤잖아.”   

  

아... 이것도 내가 증인인데... 오빠가 거의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아빠가 훈계를 하다 하다가 마지막에 양념 치듯 한 얘기를 이렇게 말하시면....     


우리 아빠와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상황 1


TV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데도 금쪽이는 계속 게임을 해서 엄마가 화를 내는 장면을 보는 중이었다.


나: 불러서 안 오면 그냥 놔두고 먹으면 되지 않나? 나중에 먹으라고 밥을 남겨두던가. 같이 먹는 게 좋다는 걸 알게 하려면 음식을 다 치워버리면 되지.

아빠: 학교 가야 하는데 늦으면 안 되잖아.

나: 지각도 그래. 그냥 지각 몇 번 하면 자기가 알아서 서두를 텐데, 옆에서 채근하니까 채근해야 움직이는 게 습관이 되잖아.

아빠: 니는 초밥이 같은 아 하나만 키워봐가 모른다.     

대화 끝.     


(다채로운 기질의 애를 한 열 명쯤 키워봐야 말을 할 수 있다는 건가...)    


#상황 2     


“니는 기분 나쁠라나 모르겠는데, 니는 오빠보다 지능이 좀 떨어졌어. 그래도 열심히 하는 게 있어가 문과를 갔으면 더 나았을낀데.”     


이건 우리 아부지의 레퍼토리인데 예전에도 기분 나빴고, 지금도 기분 나쁘고,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쁘다. 게다가 문이과 선택할 때 아빠가 문과를 권하지도 않았다.(오빠한테처럼 양념 치듯 흘렸는지 모르지만 내 기억에는 없음) 그즈음 우리 집에는 진로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각자 네 명이 묵언수행의 길을 걸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이큐 테스트가 다양한 지능을 평가할 수도 없다. 지능은 두뇌회전이 빠른 것 말고도 감수성, 예술적 감각, 관계지능, 끈기, 자연탐구지능, 자기 성찰지능 등등 많다. 아빠 말대로 나는 아이큐 점수 대신 ‘열심히 하는 재능’이 있었을 수 있고. 그냥 다 떠나서 타고 태어난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후, 진정하고) 중요한 건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지능이 낮다는 부모의 판단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락이 좋으냐 나쁘냐의 가치판단이 아니라 '오락을 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관점'이 자녀에게 영향을 준다. 그 관점이 부정적일 때 아이는 움츠러들어서 좋아하는 것을 확장할 동력을 잃는다.


35년 전에 스트리트 파이터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될 거라고는 우리 아빠 말고도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중요한 건 미래를 예견하는 안목이 아니라 어떤 일에 빠져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궁금해하고, 이해하려고 애써보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포기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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