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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30. 2024

남은 사람들

진이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임신 8개월이었다. 진이는 나를 부랄친구라고 부르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나도 아는 진이 친구가 전화로 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몇 년 전에 암이 완치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했고, 그는 최근에 암이 재발했는데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결혼해서 군산에 살고 있었고, 장례식장은 대구에 있었다. 남편은 가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전화로 얘기했더니 엄마가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대구를 가서 곧장 엄마를 만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니는 여 있그라. 내가 조문하고 오꾸마.”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 앞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이십여 년 전 초등학교 어머니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 진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힘내시라”고 하고, 진이 손도 꼭 잡아주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모습으로 각인된 사람이 아버지를 잃은 일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군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가 말리는데도 엄마는 당신이 가방을 들어준다며 버스에 같이 올라탔다. 내가 안전벨트를 매는 것까지 보려는 엄마에게 기사가 소리쳤다.  

     

“할매 퍼뜩 내리소!”     


그 소리에 엄마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리 엄마를 ‘할매’라고 한 기사님 때문인지 결혼 후 처음으로 혼자 집에 왔다 가서인지 모르겠다. 내 집은 여기인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서럽기만 했다. 밖으로 보이는 허름한 도시 외곽 풍경을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준정아, 덕분에 아버지 잘 보내드렸다.”     


진이었다. 나는 “그래”하고 간신히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금방까지 북받친 감정을 삭이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옅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와줘서 고맙다” 진이는 다급하게 한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진이가 출산을 잘했냐, 언제 대구를 오냐고 몇 번 연락을 해왔다. 평소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쩌다 생각나면 전화해서 수다를 떨다가 술약속을 했던 사이인데 녀석이 이상하게 살갑게 굴어서 왜 그러나 했다.      


초밥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진이를 만났다.     


진이: 먹고 싶은 거 말해라. 내가 다 사준다.

나: 니가 이제야 철이 들어서 어른을 알아보는구나.


진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엄마와 누나는 우는데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꾹꾹 참았거든. 장례식에 오신 손님들한테 감사전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잘 참았는데, 니하고 통화하고 터져뿟다아이가. 니 전화 끊고 얼마나 울었는가 모른다. 그런데 있잖아. 울고 나니까 마음이 참 편해지더라. 고맙다. 이래서 어릴 때 친구가 좋구나 싶다.     


진지하게 말하는 진이 앞에서 나는 웃지도 못하고, 전화받던 당시 나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던 장면이다.




초밥이가 떠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초밥이는 아버님과 함께 짐을 싸서 가기로 했고 나는 산에 가느라 새벽에 집을 나왔다. 오후 1시쯤 지금쯤 갔을까 하고 초밥이한테 톡을 했다.  

   

나: 마망 잘 가.

초밥: 이제 막 가려던 참인데... 슬프다. 편지 같은 거 둘까 하다가 어차피 담주에 올 거고 엄마 너무 슬퍼할까 봐 ㅠㅠ 보미한테 잘 있으라고 인사하고 눈물 주르륵 흘리면서 나왔는데 보미가 몰래 따라 나와서 문 열라고 쳐다보고 있어.     


초밥이가 보낸 답장을 확인한 건 산을 탄지 9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차가운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르고 나도 모르게 윽윽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날따라 유난히 험한 길을 오르내리느라 몸이 고달파서인지도 모르겠다.      


산을 내려가는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스틱을 쥐고 있어서 눈물을 닦을 수도 없고, 잠시 서있을 수도 없었다. 7시간을 예상한 산행이 눈과 사라진 길을 만들어서 가느라 10시간으로 지체되고 있었다.

     

하긴 눈물을 닦고 쉰다고 진정될 것 같지도 않았다. 커다란 파도가 덮쳐와서 그 속에 잠긴 것 같았다. 초밥이와 헤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와 다른 관계가 시작되는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오랫동안 품어온 아주 소중한 것이 빠져나가버렸고, 그 공백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짐이 빠진 초밥이 방을 보는데 또 한 번 무너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안이 낯설기만 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침대에 누워있자니 남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가 결혼하고 난 뒤에 부모님, 그리고 아버지를 보내드리고도 울지 못했던 진이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 것 같았다. 사는 건 알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아이를 떠나보내면서 ‘속절없이’라는 단어를 알았다. 어떻게 해도 수습되지 않는 파도 같은 감정을 만났고 파도가 밀려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사랑하고 소중하면 그런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랑하면 내 마음이 상대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초밥이가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실없는 소리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 감정이 초밥이를 무겁게 하지 않기를, 당분간 나는 이 감정에 잠겨 있겠지만, 초밥이는 새로운 생활로 성큼성큼 나아가기를.

 

오늘 같은 날은 산에서 몸을 혹사시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울고 싶어도 더 이상 몸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불고기 전골, 1월 20일 아침밥


니 마음이 가볍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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