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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an 19. 2024

역에 서있는 기분

초밥: 엄마, 나 떨어졌어.

초밥이가 전화를 해서 울먹거렸다.

나: 어디? 어디서 떨어졌는데? 아! 학교?

순간적으로 사고 났다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가 오늘이 고등학교 배정되는 날이라는 게 생각났다.      

초밥: 시골에 있는 학교로 됐어. 00 여고.

나: 그래? 왜 거기가 됐지?
초밥: 내가 1 지망으로 썼던 데가 경쟁률이 높았나 봐.

나: 그렇구나. 경쟁률이 높으면 외곽으로 배정되기도 하는구나.

사고가 아니라면 그까짓 학교야 어디가 돼도 상관없다. 초밥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뭐라고 위로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초밥: 뻥이야. 붙었어! 와하하.

친구도 같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초밥이는 당초 가려고 했던 K여고가 수학과학중점학교라는 걸 알게 되자 거기 가면 망한다며 다른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 검색엔진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집 앞에 있는 K여고보다 통학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축제와 동아리가 많고, 남녀공학이라는 절대적 장점이 있는 H고를 알아냈다. H고를 1 지망으로 썼지만, K여고가 될까 봐 가슴 조렸는데, 다행히 H고로 배정이 된 것이다.    

 

초밥: 아쉽게도 합반은 아니라네. 그래도 2학년 선택 과목 시간에는 이동수업해서 남자, 여자가 같이 수업받는데.

나: 탐문 수사를 벌였냐?

초밥: 찾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된 거지. H고 보다 옆에 있는 J고(남고)에 잘생긴 애들이 더 많데. 한 번씩 스쿨버스 타지 말고 시내버스 타야겠다.


가끔 밥이 질리면 빵도 먹어야지하는 걸로 들렸다.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수학과 과학에 볶이는 걸 면한 것만 해도 어딘데 옆 학교 남학생까지 넘보다니 대단하다.

     

초밥이는 예비소집을 갔다가 교복 신청까지 하고 돌아왔다. 내가 낯선 도시에 있는 학교와 교복가게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초밥이는 학교에서는 인상 깊은 남자애가 없어서 실망했는데, 교복가게에서 눈이 마주친 남자애는 괜찮았다고 대답했다. 내가 뭘 물은 거지?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함께 따라가 주지 못한 미안함은 접어두어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초밥이가 학교에서 받은 신입생 원서를 가지고 와서 학부모 연락처에 아빠 번호를 적었다.


나: 엄마 거도 써.

초밥: 칸이 없잖아.

나: 그냥 그 아래 써.     

줄도 없는 빈 공백에 억지로 내 전화번호도 쓰게 했다. 


초밥이는 이틀 뒤에 짐을 싸서 나간다. 새 집에서 일주일 지내다가 개학하면 다시 돌아와 졸업식을 하고 완전히 가는 거다.     


나는 초밥이가 없는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를 시작한 지 오늘로써 5주가 되었다. 회차가 늘어갈수록 우리 관계는 따로 산다 해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했던 것 같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펼쳐지는 것이었는데, 넓은 곳으로 흘러가서 깊어지는 것이었는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처음의 감정에서 멈춰있었을지 모른다.


서운함과 아쉬움을 헤쳐나가 보니 그 안에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초밥이만 어서 고등학교에 가서 잘생긴 남자애와 옆 학교 훈남을 찾아내려는 기대가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앞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 어머니들이 큰 도시로 떠나는 아이에게 새 속옷과 밑반찬이 든 보퉁이를 들려 보냈다면, 나는 실수를 통해 알게 된 것을 글에 담고 싶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다른 방식으로 걸어갈 아이와 이제껏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날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함께 타고 온 기차에서 내려 각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역에 서있는 기분이다. 역에 남아서 기차에 탄 자식에게 손을 흔드는 엄마가 아니라, 우리는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 서로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닭볶음탕, 1월 19일 아침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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