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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01. 2024

전직 학원장이 아이 학원 상담을 하면

이게 아니어도 된다는 용기

초밥이가 학원을 알아봐 달라며 집 학원 전화번호를 보내줘서 내가 전화를 했다. 그중 한 학원의 상담내용이다.     


원장: 중학교 때는 당연히 100점 맞았죠?

나: 100점은 아니고...

원장: 중학교에서 만점을 받아도 고등학교는 차원이 달라요. 게다가 상대평가고요. 원래 주 3회인데 애기가 부족하면 주 4회 나오게 하고, 정해진 양을 다 하지 못하면 두 시간보다 더 할 수도 있어요.     


대여섯 군데 전화해 보니 대략 한 과목당 주 3회 2시간 수업이었다. 두 과목이면 주 6회 2시간. 하교 후 30분 거리에 있는 학원을 가서 2시간 수업받고, 30분이 걸려 집에 가면 학교 과제와 수행평가 때문에 바로 자지 못하겠지. 학교에서는 학원 숙제, 집에서는 학교 숙제로 떠밀리는 초밥이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상담을 하면서 의문이 생겼다. 원장님들이 모든 학생이 일 등급을 목표로 한다고 전제해서다. 답답한 마음에 마지막에 상담한 원장님한테 그것에 대해 물어봤다.     


나: 일 등급은 4퍼센트밖에 주지 않는데, 될 수 있다고 학원, 학교, 가정에서 몰아가면 포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원장: 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잖아요.

나: 그 노력이라는 게 말이죠, ‘포기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느긋하게 하다 보면 조금씩 하게 되지 않을까요?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도와주는데도 안되면 내가 의지가 약하고 재능이 없다고 자책하지 않을까. 무리해서 수강료를 내주는 부모님, 열심히 가르쳐주는 학원 선생님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안될 것 같은데, 그런 나약한 마음을 먹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할까.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다 보면 정신이 너덜너덜해져서 겨우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된다. 부모님한테 수학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대학은 안 갈 거냐, 앞으로 뭐 할 거냐라고 할 테고,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조용히 수학을 내려놓는, '비공식 수포자'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등급제라는 판을 짜놓고 결과는 모두 아이들의 몫으로 돌리는 현실이 미안할 뿐이다. 우리도 그렇게 힘들어놓고,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데도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제도와 의식은 조금도 변함이 없어서 힘이 빠졌다.   


   



삼십 년 전으로 거슬러가 보면, 중학교 때 나는 학교시험은 교과서에서 다 나오는데 그 많은 문제집이 왜 있는지 몰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성적우수반에 편성되었을 때 애들이 책상 위에 수학의 정석 실력과 성문기본영어를 올려놓은 걸 보고도 위축되지 않았다. 개울에서 헤엄 좀 쳤던 나는 친구한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야.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한 번, 두 번 참았다가 세 번째에 가.”    

 

하지만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나의 공부방식은 넓고 깊어진 고등과정에 통하지 않았다. 수학도 어느 부분부터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나왔다. 그러면 이전에 해온 방식대로 그 부분부터 풀이를 외웠다.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암기하는데 노력했다. 수학만 해도 교과서 외에 보충 수업 교재, EBS교재, 특반 부교재까지 세 권이었다. 개념을 이용하면 다 같은 문제지만, 유형별로 외우는 나에게는 엄청난 학습량이었다.  

   

수학 시험을 보면 시험지를 받자마자 여백에 내가 외운 식을 쓰기부터 했다. 그리고 그 식을 쓴 문제를 찾아 그것부터 답을 적었다. 학창 시절 나에게 수학은 암기과목이었다.     


당연하게도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국영수 빼고 다른 과목은 다 버렸다. 그 세 과목도 울면서 했다. 너무 많고 힘들어서. 그때 누군가가 나도 힘들었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내가 실패자 같아 한심했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것 같고, 이걸 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인간 같았다고 말해줬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고등학교 1학년 한 학기가 채 지나지 않아 자신감 넘치던 나는 사라졌다.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부딪쳐보지도 못하면서 겨우 학교를 다녔고, 부모님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면 미안해서 외면했다.     




고백하자면 학원인 시절 나도 이번에 상담한 원장님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격려하고 의지를 북돋아 주면 성공신화처럼 극적인 성적향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개인이 해야 할 노력도 있지만, 동시에 제도의 불합리함이 있음을 알리고, 학생들이 주어진 현실의 한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자책하고 미안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뭘 잘 알아서가 아니라 동네 아는 어른으로 과거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다.     


학생들이 돈을 내고 산 수업 시간에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당장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 수 있다. 경쟁을 당연시하는 지배적인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요구하지 않은, 일방적인 나의 이야기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게 나의 경험에서 내린 결론이다. 나부터가 내가 살아온 방식에 확신을 잃어서 이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때 학원을 나왔다.   

   

동네 과외선생님으로서 꼭 봐야 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천재수학자 리학성은 이런 말을 했다.      


“문제가 안 풀릴 때는 아, 이거 문제가 참 어렵다야,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풀어봐야겠구나,라는 여유로운 마음, 그게 수학적 용기다.”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일 때 사실 열심히 하지 못한다. 어쩌다 시험공부를 해봤는데 성적이 올랐을 때, 나도 하면 되는구나 하며 공부시간을 늘려가고 그에 비례해 성적이 올라갈 때 힘들지 않았다.  

    

공부가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이 된 건, 가장 높았던 성적을 기준으로 두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쩌다 받은 최고 성적이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고 여겼던 그 시점부터 공부는 나에게 성취감을 주는 것에서 좌절감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보다 이게 아니어도 된다는 여유로운 마음이 노력을 불러오지 않을까.    


학생으로서 학원샘으로서 실패한 사람이 내린 결론이다.

초밥아, 너는 나와 반대로 해봐!

  

성적이 아니어도 공부는 나한테 도움이 된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목표니까 일등급이 아니어도 괜찮다.    

   

예를 들면 이렇게.


이제 일 인분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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