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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05. 2024

<댄스가수유랑단>을 보고 울컥한 이유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유튜브를 애청하느라 눈만 나빠지고 있는 나는 어쩌다 <댄스가수유랑단>을 보게 되었다. 특히 김완선편이 인상적이었는데, 무대에 있는 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사람이 진짜 좋아하는 건 나이가 들었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얼마나 무대에 서고 싶었을까. 젊은 시절 특유의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이기는 했지만, 예전의 생기 없는 얼굴보다 가볍게 즐기는 지금이 더욱 보기 좋았다.      


<댄스가수유랑단>은 이효리가 구심점이 되어 위로는 김완선, 엄정화 아래로 보아, 화사까지 여성댄스가수의 계보를 잇는 걸 보여주었다.      


김완선은 댄스뮤직이라는 용어도, 섹시라는 표현조차 없어서 ‘야하다’며 6개월 출연정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여성댄스가수로 생존해 왔고, 그런 김완선을 보고 꿈을 키웠던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가 함께 무대를 서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변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을 내가 우리 첫째 나이일 때 만났잖아. 현재의 삶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동동맘이 이런 말을 했다. (아참, 동동맘이 더 이상 동동맘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뜻에서 이름 변경을 요청했는데, 아직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한 관계로 이번만 동동맘으로 하겠다)     


소년을 만나 풋풋한 감정을 키워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그 시절의 소년의 나이가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는 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나로서는 그 질긴 관계가 존경스러울 뿐이지만.    

 

내가 감회가 새로울 때는 이럴 때다. 초밥이가 졸업앨범의 컨셉사진을 찍는데 컨셉을 ‘유고걸’로 정했다고 했다.     


초밥: 엄마, 유고걸 알아?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마음이 막 다급해져서 말을 더듬게 된다.

나: 내내내가 왜 몰라! 와, 진짜, 넌 모르잖아, 그때 진짜 대단했는데!


초밥이의 심드렁한 얼굴 앞에서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더랬다.

    

최근에 가수 이효리가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지난 시간 동안 우울감이 있었다. 제가 연예계에 오래 있지 않았나.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한, 기사에도 나오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때는 나한테 왜 이러지 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제주도 생활과 강아지들, 남편이 치료해 줬다는 생각이 든다.”    

 

십 분 만에 남자를 유혹하는 텐미닛의 그녀, 당신이라면 그럴만해, 오직 그녀이기 때문에 이런 가사가 인정되었던 이효리가 아닌가. 연예계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겠거니 하면서도 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아온 나로서는 우울했다는 그녀의 고백이 낯설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서 역시 이효리다 싶었다.    

 

“재밌는 것도 많이 기획해 보겠다. 안된다, 늙었다는 건 저만의 생각이었다. 여러분들도 ‘뭔가 난 이제 아닌가’라는 생각 버려라. 예전 같은 반응이 없으면 어떤가. 예전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싶다. 후배들도 많이 도와주고 선배님들도 많이 만나겠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사건으로 인지하는데, 중년 이후에는 매일이 비슷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다고 느낀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젊을 때는 새로운 일이 저절로 일어났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 선생님, 새로운 사랑, 시험 등등.      


중년부터는 스스로 새로움을 만들어 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경험에서 고유한 것을 만들어내는 시기, 그래서 이제야 내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거기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또래들과 다르지 않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즐거움을 주웠다면, 중년부터는 깊이 파묻혀있어서 캐내어야 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어릴 때라면 보지 못했을 가수의 지난 삶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건 그간 살아온 세월 덕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변해가고 그래서 점점 고유해진다.


https://youtu.be/gvuY9BTasrc?si=XJhaqGiIZQh5E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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