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가 한 달 만에 집에 왔다. 초밥이 방에 두었던 고구마를 거실로 옮기고 침대에 새 시트와 이불을 까는데 손님을 맞는 기분이었다. 금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온 초밥이를 나는 수업을 하느라 안아주지 못했다. 새 교복이 잘 어울려서 엄지척을 하고 수업을 마무리한 뒤에 치킨을 시켜놓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선생님들이 대학 입시 설명을 하는 걸 듣다 보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냐, 열심히 할 거야’ ‘공부 잘하는 애들 바닥이나 깔아주는 게 아닐까’ 이 생각 저 생각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해. 그러다가 엄마가 떠오르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나는 식탁 건너편에서 듣고 있다가 초밥이가 울면 가서 안아주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초밥이가 말했다.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수업시간에 졸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교실 뒤에 서있었던 일,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일 모두 다 괜찮은데, 긴장하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우울했다고 했다. 전에는 엄마한테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어서 슬펐다고 했다.
“선생님한테 혼난 날 집에 가서 예습하고, 다음날 선생님 질문에 첫 번째로 손 들고 대답해서 칭찬받았어.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친구도 더 사귀고, 날씨도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어. 1학기 내내 전날 같은 기분일 줄 알았는데 그날만 그런 거였어. 헷.”
“에구, 그랬구나.”
“그래. 그러면 돼.”
그것 말고 내가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아빠한테 ‘버스 시간이 언제니까 10분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하면, ‘그러면 되겠네’하면 되는데, 아빠는 ‘그거야 당연하지’라고 해. 그 말을 들으면 무시당하는 것 같고 말문이 막혀. 나중에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안 하게 돼.”
아빠 험담을 하면 내가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에 초밥이는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듯 내 심정 알겠지, 하면서 신나서 말을 받아서 하다가 그동안 나는 초밥이한테 많이 혼났다.
“야자 마치고 오면 아빠가 먹을 거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 아침밥도 해주고.”
이런 말을 듣고 보니 험담할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건 여유가 없어서인 것 같아. 엄마도 직장에 다녔다면 편안하게 들어주기 어려웠을 거야. 아빠가 네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는 걸 너도 알잖아. 아빠를 네가 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아빠의 정리 기준에 맞추는 게 힘들다는 초밥이 말에 나는 속으로는 백번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만약 아빠와 살다가 엄마와 살게 되었다면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는 것, 칫솔꽂이가 없는 것, 고무장갑을 집게에 걸어두지 않는 걸 보고 스트레스받았을 거야.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서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일지 몰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시점에서 엄마가 그리운 건 당연한 거야.”
나는 마트에서 딸기 세일 문자가 온 걸 보다가 아, 초밥이가 없지 하고 창을 닫은 일, 마트에 갔다가 습관처럼 토마토와 귤이 한 박스에 얼마인가 보다가 이제 과일돼지가 없으니 과일을 박스로 살 일은 없겠구나 하고 헐렁한 장바구니를 들고 터덜터덜 집에 온 일을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밤 12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아침은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나는 과외수업을 했다. 수업을 마친 시간은 오후 3시.
“산책 갈까?”
내가 물으면 전에 초밥이 대답은 올웨이즈 “놉”이었지만, 이번에는 “좋아”하며 따라나섰다. 보미, 초밥, 나 우리 세 가족이 오랜만에 청암산을 걸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초밥이는 불평하지 않았다.
산책을 마치고 보미를 집에 넣어놓고 카페에 갔다. 티라미수 케이크, 쿠키,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간간이 얘기하고 먹기도 하면서 나는 책을 읽고 초밥이는 공부를 했다. 카페를 나올 때는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나는 산에 가야 하고 초밥이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은파호수공원을 드라이브했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싶은 마음은 무슨 연애할 때나 드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에는 엄마랑 밖에 나오면 시간이 아까웠는데, 지금은 아니야.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