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에 초밥이와 뱀사골 계곡을 가려다가 여름 성수기를 맞아 도로에 차가 정체되는 걸 보고 포기했다. 괜히 나섰다가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멀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시원한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한 군데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나: 계곡 말고 수영장 갈래?
초밥: 어디? 워터파크?
내가 선택한 곳은 군산 대야면에 있는 국민체육센터 실내 수영장이다. 빡빡한 생활에 지쳐 만사 귀찮았던 초밥이는 가까운 곳을 간다니까 흔쾌히 찬성했다. 무엇보다 수영장은 씻지 않고 가도 되니까 좋다고 했다.
뜨거운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수영장에 들어선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접수창구에 앉아있던 직원이 우리를 보고 말했다.
“12시부터 1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에요. 이따 1시에 오세요.”
문을 열기 위해 잡았던 손을 떼지 않은 채 그 말을 들은 우리는 그대로 문을 닫고 나왔다. 우리는 다시 뜨거운 태양 아래에 섰다.
나: 점심부터 먹을까? 오다 보니까 중국집 하나 있던데.
따가운 햇볕을 피하는 게 급선무였기에 초밥이도 찬성했다.
군산 대야면에 있는 ‘대야성’ 중식당. 내부는 리모델링은 사치라는 사장님의 소신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인간미 넘치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술맛이 나는 것처럼, 술이든 밥이든 사람의 흔적이 켜켜이 담긴 장소에서 더 맛이 나는 법이다.
짜장면, 짬뽕, 미니탕수육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초밥이가 말했다.
"공부 못하는 애가 대답하다가 틀리면 다른 애들이 막 비웃어. 그래서 요즘 나 대답도 잘 안 해."
막걸리 주전자도 아닌데 얘가 왜 이렇게 찌그러졌나 하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짬뽕이 내 앞에 놓였다.
"일단 먹자."
초밥이 앞에 짜장면이 놓였고, 초밥이가 한 젓가락 먹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와, 대박! 완전 맛있는데? 여기 숨겨진 맛집이었나 봐!"
이때다 싶어서 내가 말했다.
“거봐. 전국 일등. 서울 일등 아니어도 되잖아. 대야면 일등 하면 안 돼? 대야면에 유일하게 있어서 대야면 일등 짜장면집 하면 안 돼? 그래도 되잖아. 지금 이 감동 이거 의미 없는 거 아니잖아. 안 그래?”
초밥이는 내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다시 짜장면에 집중했다. 우리가 짜장면과 짬뽕을 바꿔서 먹고 있을 때, 주방에서 요리한 분으로 추정되는 남편과 홀을 지키던 아내가 들어왔다. 각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남편은 휴대폰을 보고, 아내는 콩 볶은 걸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벌써 점심 장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8분이었다. 손님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시골에서는 아침식사도 일찍 하니까 점심식사 시간도 이른 것 같았다.
1시가 되자 수영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군산에 있는 다른 시립수영장이 시설노후로 운영중단을 해서 대야수영장은 평소에 사람이 엄청 많은데, 그날은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직후여서인지 한산했다.
초밥이가 먼저 가면 내가 따라가고, 내가 앞서 가면 초밥이가 따라왔다. 레인 끝에 갈 때마다 벽에 붙어 서서 이야기를 했다.
초밥: 엄마 배영 할 줄 알아?
나: 아니. 잊어버렸어. 가르쳐줘.
초밥: 몸을 띄울 수 있어? 나 하는 거 봐봐.
초밥이가 몸을 눕혀서 둥둥 떠있다가 팔을 돌렸다. 나도 따라서 누워봤더니 몸이 떠올랐다. 키판을 안고 다리만 차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 엄청 편한데?
초밥: 나도 배영 처음 배울 때 키판 안고 했어. 다리 구부리지 말고 빳빳하게 힘을 주고 차야 죽죽 나갈 수 있어.
수영장에서 나오니까 따가웠던 햇살의 기운도 한풀 꺾인 것 같고, 더운 공기 속으로 가느다랗지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동안 내장과 혈액의 온도가 내려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초밥: 나 지금 기분 너무 좋아. 오길 잘했어. 내일 또 오자!
다음날도 우리는 대야면에 하나밖에 없는 수영장에 갔다. 서로의 수영복을 바꿔 입었고, 한 사람이 먼저 가면 다른 한 사람이 뒤따라서 갔다. 레인의 끝에 선채로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헤엄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