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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19. 2024

납작해진 흰머리 독수리에게

나: 왜 2학년 때 전학 오려고 해? 오기로 했으면 조금이라도 빨리 오는 게 낫지.

초밥: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어. 중학교 때는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하지는 못했거든? 지금은 ‘어? 전에는 안되었는데 이제 되네’ 하는 게 하나씩 늘고 있어.      


조금 큰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초밥이는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보고 쪼그라들었다. 첫 번째 모의고사부터 수학, 영어 100점에 3년 치 고등수학을 끝내고 온 아이들 사이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내신 때문에 다시 군산으로 갈까 하는 이야기를 나와 하던 중이었는데 초밥이가 뜻밖에 말을 한 거다.    

내가 전학을 권한 이유는 초밥이가 해도 안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무기력 해질까 봐서였다. 또 초밥이가 다니는 학교가 지나치게 교칙이 엄격하고 경직된 분위기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학교는 체육대회나 축제 같은 행사를 학생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형식적으로 해치우고, 학생 자치 위원회가 있어서 학칙을 스스로 정한다던지 하는 실험적이거나 자율적인 시도가 없었다. 학생의 인권과 다양성보다 대학 진학률을 중시한다. 그건 인문계 고등학교라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학교는 그 기능이 철저하게 작동되었다. 관리를 잘해서 좋아하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나는 숨 막힐 것 같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꼼꼼히 관리해서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학생도 없고, 선생님 말에 반항하는 애들은 일단 겉으로 봤을 때는 없다. 수업시간에 졸면 스스로 일어나서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듣고, 교사도 수업시간에 조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주의: 학교 홍보 아님)    


“공부를 안 한다고 말하는 애가 없어. 여기는 공부를 하지 않는 걸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라 하는 척하는 애도 있는 거 같아.”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아,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고 했다. 초밥이는 이제까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설사 했더라도 그걸 말로 하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 하기는 했지만, 고등학교에서처럼 많은 아이들이 습관처럼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초밥이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전체 흐름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없는 분위기’ 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은 하찮은 거라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내 생각과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을까. 그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믿어버리지 않을까.      


과외를 하다 보면 전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 일부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부모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서 공부만 하는 현실, 성적으로서만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나는 정신적인 어려움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은 이제 틀렸다. 그건 어떤 대학을 가느냐로 직업이 결정되고, 그렇게 정해진 직업으로 평생 살아가던 시대에나 통하는 말이다. 40대인 나에게도 통하지 않는 공식이 아이한테 적용될 리 없다.      

‘공부는 때가 없다’에서 시작해야 한다. 때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무언가 하나씩 쌓아나가려면 참고 하면 안 된다. 참으면 오래 할 수 없다. 해야 하는 일만 하면 안 되고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하고 운동도 해야 조금씩 계속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열심히 하지 마, 대신 꾸준히 해’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난주 내내 강된장과 양배추, 호박잎쌈으로만 밥을 먹었다. 날씨가 더워서 뭘 끓이기가 싫어서 이틀에 한 번 강된장을 만들어서 절반씩 나누어 먹었다. 강된장에 호박과 청양고추를 많이 넣었더니 질리지 않고 잘 넘어갔다. 운동하고 들어오면서 식당에서 사 먹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도 결국은 집에 돌아와서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반찬을 꺼내서 먹었다.      


최근 이삼 년 동안 누군가와 약속을 한 게 아니라면 식당에서 밥을 사 먹지 않았다. 꾸준히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식당에서 먹어도 되고, 집에 있는 반찬으로 먹어도 되고, 일주일 내내 같은 반찬을 먹어도 되고, 질리면 다른 반찬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하기. 무슨 일이든 그래야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교양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학교 공부가 유일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그 방식이 강제적이기보다 자발적으로 동기가 자랄 수 있도록 학교와 사회, 가정에서 이끌어주었으면 해서 이 글을 썼다.


아니, 그냥 다 떠나서 나는 초밥이가 한 마리 흰머리 독수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의 자유인으로 날개를 펼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전학을 하지 않고 이대로 해보겠다고 하는 초밥이를 보니 더 이상 내가 해줄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 있게 바라보고 있으니.

이중에 가장 맛있었던 반찬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꽈리고추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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