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질서를 알게 한 <한국인의 탄생>
드디어 늘클럽에 신입회원이 왔다. 내가 모집 포스터를 만들어서 도서관 담담자에게 전한 지 얼마 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독서동아리 모집 하는 걸 보고 연락드립니다. 40대 초반의 남성인데 참여하고 싶습니다.”
“반가워요. 예정된 모임은 이번 주 금요일이에요. 잠깐 통화 괜찮으시면 전화드려도 될까요?”
나는 문자보다 전화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고 나는 전화를 했다. 그분은 독서모임 경험이 있고, 현재도 한 개의 모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었는데, 우리 독서모임이 시간이 맞아서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모임날짜와 책을 알려준 뒤 통화를 마쳤다.
신입회원이 참석했던 날 오랜만에 활기찬 분위기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책의 첫 장을 열어보는 것과 비슷하다. 평일 오전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이어서일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그건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도 어떻게든 완독 하려고 애를 쓰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졸음을 깨워가며 책장을 넘겼을,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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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주 뒤인 그다음 모임에서 권샘이 가족여행을 간다고 알려오는 걸 시작으로 신입회원이 불참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당일에 또 한 명의 회원도 일 때문에 못 온다고 해서 결국 그날 모이는 인원은 고작 세 명뿐이었다.
불참 소식을 들으면 힘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한 번은 책을 추천한 회원이 참석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사정이 생기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분이 추천한 책은 사회 변화에 관해 해마다 출간하는 책으로 내 취향에 맞지 않는데 힘들게 읽은 터라 당황스러웠다. 한편으로 이게 다 인원이 적은 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클럽에서도 똑같이 책을 추천한 분이 결석한 적이 있고, 한 번에 여러 명이 불참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인원이 11명이라 서너 명쯤 빠져도 토론하는데 무리가 없어서인지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에 비해 늘클럽은 출석에 대한 압박이 큰 게 사실이다. 나부터가 결석을 할 때 회원들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발적으로 좋아서 하는 일에 이렇게 부담을 가지면 안 되지 않나 싶다가도 그래도 증원이 되기 전까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세 명만 모였던 날 나는 생각해 본 대안을 이야기를 했다.
“4분기나 2분기로 시즌제로 운영하고, 시즌마다 신청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시즌 사이에 한 두 달 휴식기를 가지고요. 모임에 변화를 주어서 집중도를 높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시즌당 2회 이상 결석 시 다음 시즌은 참석할 수 없는 페널티를 주는 것도 생각해 봤어요.”
나의 이야기를 들은 두 명의 회원은 고민해 보겠다며 나중에 회원들이 다 모이면 의논해 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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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토론한 책은 내가 추천한 홍대선 작가의 <한국인의 탄생>이다. 저자는 우리나라는 좁은 땅에 모여 살면서 막대한 노동력이 들어가는 쌀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서술했다. 품앗이를 하려면 이웃의 땅에서 자라는 농작물에 관심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악지대로 경작할 땅이 극히 작았던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방식이 집단주의 문화를 형성했다고 해석했다.
두 명의 회원과 토론을 이어가던 중에 나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제 성격이 무던하지 못해요. 어릴 때 어떻게든 칭찬을 받으려고 하다 보니 편안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나. 나는 오래된 기억을 두서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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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할 즈음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동네에 마늘꼬방이라는 청과물 도매 시장이 있었다. 산지에서 채소를 실은 트럭이 오면 여러 명의 남자들이 달라붙어서 채소를 내리느라 늘 부산스러운 곳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채소를 나르면서 떨어진 것들을 모아놓은 무더기가 있었다. 배추이파리, 작은 양파, 마늘 따위였다. 키보다 높이 쌓인 채소무더기 주변에는 늘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들은 마늘 알갱이나 먹을 수 있는 배추 이파리 같은 것들을 줍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주 그곳에서 반찬거리를 마련해 왔고, 나도 할머니 옆에서 같이 마늘 알맹이를 찾고는 했다. 큰 걸 찾으면 할머니한테 보여주고는 했다.
문제는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생겼다. 그 마늘꼬방이 초등학교 바로 옆이었는데, 내가 마늘을 줍고 있는 걸 아이들에게 들킬 것 같다는 전에 하지 않았던 걱정을 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길 쪽으로 등을 지고 앉아서 두 무릎사이에 얼굴을 박고 채소를 줍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할머니를 따라 계속 마늘꼬방에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한테 자주 혼이 났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놀러 온 고모에게 얘네 아버지는 아들은 못마땅해서 난리고 딸만 끼고돈다고 했다. 고모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아서 자주 왕래를 했고, 나는 고모들과 할머니 사이에 앉아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갈 때 나는 목구멍에 힘을 주며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이 이야기는 은덕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은덕샘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격을 연관해서 말한 뒤에 “선생님은 어떠셨어요?”하고 내게 물었다. “저는요”하고 말문을 열자 할머니, 마늘꼬방, 목구멍에 힘을 준 기억이 실타래처럼 이어졌다.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니 채소무더기 앞에 공처럼 웅크리고 시래기를 줍고 있는 할머니의 작은 몸이 나타났다. 평생 쪽을 짓고 살아온 할머니. 손가락보다 얇은 은색에 몇 개의 한자가 새겨진 비녀도 보였다.
그날 함께 한 회원은 은덕샘과 은경샘이다. 두 분은 나와 글쓰기수업을 함께 한 문우이기도 하고, 한동안 스터디 모임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두 사람에게 나도 새롭지 않을 거다. 정치성향과 독서취향은 물론이고, 일요일마다 등산을 가고, 전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지금은 어떤 어려움으로 바뀌었는지 세세하게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알고 있을 거다. 우리 세 명만 토론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새로운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나는 뭔가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할머니 눈에 들려고 했던 아이가 있었고, 자식에게 도움을 주려고 고향을 떠나 공장이 많은 삭막한 동네에 살게 된 할머니가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셋째 아들 부부를 대신해서 연년생인 손주를 돌보고 살림을 한 할머니, 새벽부터 밤까지 몸을 혹사시키며 일하면서도 시어머니 눈치를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살았던 엄마. 여기에는 다른 가족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한국적 질서는 그들이 ‘좋음’과 ‘나쁨’ 사이를 그은 직선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3의 질서다.”
책 속의 문장처럼 이분법이 아니라 제3의 질서에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가족 그리고 나라는 사람도.
그리고 하나 더, 인원이 많다고 토론이 잘되고 인원이 적다고 토론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었던 건 익숙하고 조촐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친숙한 사람들이 나를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했다.
책: <한국인의 탄생>
저자: 홍대선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한국이란 무엇인가>, 저자: 김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