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클럽은 토론시간이 2시간이다. 나는 평균 참석 인원은 서너 명인데 인원수에 비해 시간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2시간을 해왔기 때문에 바꾸려면 회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내가 회원모집 포스터를 만들게 되었을 때 회원들에게 시간을 30분을 줄이면 어떨지 물어보았다.
“저는 2시간 그대로 하면 좋겠어요. 듣고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거든요.”
한 회원이 이렇게 답을 했다. 나를 뺀 3명의 회원 중에 2명은 상관없다고 했고, 한 명은 기존 시간을 유지하자고 했다. 나는 무리하게 내 뜻을 주장하고 싶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냥 굽히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독서모임 시간을 정하는 문제야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지만,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가는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소리 내고 싶지 않으니 양보해야 할까. 끝까지 의견을 밀어붙여야 할까.
나: 저는 2시간이 다소 길어서 1시간 30분으로 해보자고 한 거거든요. 그럼 2시간과 1시간 30분씩 각각 두 번씩 해보고 의견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권샘은 어떠세요?
“저는 시간보다 늘 급하게 마무리가 돼버리는 것 같아서 끝나기 이삼십 분 전에 나왔던 얘기를 정리하면 좋겠어요.”
“그거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나: 저도 좋은 것 같아요. 오늘부터 한번 해볼까요?
우리는 책을 추천한 회원이 진행을 하는데, 그날은 내 차례였다. 나는 1시간 정도 얘기를 나눈 후에 나왔던 주제를 언급하고, 끝나기 이십 분 전에 부연할 이야기가 없는지 회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다채로운 화제를 나누다 보니 평소보다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나는 토론의 밀도가 떨어지는 이유가 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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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 <손석희의 질문들>과 <100분 토론>,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피로감이 들었다. 그들을 보면 합의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 같았다. 그래서인지 토론 시간을 변경하는 일에서 나의 의견을 주장하면서도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게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나는 30분을 줄이기를 바라지만, 줄이지 않아도 괜찮은가.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임 전에 내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흥미와 깊이가 있는 토론을 하는 것이 목적임을 상기했다. 그랬더니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회원들이 말하는 의도가 더 잘 이해가 되는 걸 느꼈다.
이전에 나는 이렇게 해본 적이 없다. 사실 나는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오래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해서인지 자꾸만 설득하려고 든다. 더 큰 문제는 가치판단을 하는 건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는 드라마는 안 봐요. 감정이 소모되고, 대중적인 시야에 갇히는 것 같아서요.”
“강남에 사는 것에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과는 저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과 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면 늘 마음이 헛헛해지고는 했어요.”
새로 가입한 강클럽에서 한 말인데, 옮겨놓고 보니 나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괜찮은 날도 있지만, 종종 나의 말투 때문에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하루는 내가 한 말을 챗지피티에게 고쳐달라고 해봤다.
“저는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감정 소모가 클 때도 있고, 때로는 대중적인 흐름에만 머무르게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는 어떤 지역에 산다는 것보다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깊이 있는 대화가 더 잘 맞는 편이에요. 예전에 그런 부분이 잘 안 맞았던 경험이 있어서, 좀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말도 기똥차게도 잘한다. 이처럼 내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상대의 기분을 배려해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의 의견을 궁금해하는 게 느껴져서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나의 말투는 단정적이라 듣는 이의 마음을 닫아걸게 한다. 전에도 말했듯이 혼자만 말할 거면 뭐 하러 독서모임에 간 건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걸 깨닫고 난 후 나는 회원들에게 사과를 했다.
나: 제가 회원님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아요. 사실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인데, 죄송해요.
“저도 드라마 안 봐요. 괜찮아요.”
“선생님 의견에 동의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그럴 수 있어요. 마음 쓰지 마세요.”
"자기의 부족한 점을 말하고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아 보여요."
의외로 회원들은 나의 고백을 반겨주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이다. 또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