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들

by 김준정

윤과는 십 년 전 독서모임에서 만나 나와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윤을 만나 얘기를 하다가 윤이 요즘 독서모임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내가 하고 있는 모임에 나오라고 했더니 윤이 그러는 거다.


“같은 얘기만 하게 되니까 의미가 없는 것 같아. 000 교수가 주최하는 유료 북클럽이 있는데 거기 가입할까 생각 중이야.”


지금 하고 있는 모임을 포함해서 이제껏 해온 독서모임의 회원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가 자주 화제로 올랐고, 가끔은 사담으로 채워지는 날이 많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던 적도 있었다.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지 못해도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나눌 수 있어서 일상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얼마간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부터 일상적인 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쉬웠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내가 입구에서 서성거린 생각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딛는 순간을 기대했다. 그런 기대가 커지자 나는 나에게 중요한 쟁점을 설명하는데 열을 올렸고, 회원들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마치고 나면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다가 링을 내려온 복서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독서모임이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이유를 회원들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모임이라면 내가 원하는 토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서모임을 하나 더 가입한 데는 그런 목적도 있었다.


*


강클럽은(새로 가입한 독서모임) 일 년에 두 번 식사 모임을 하는데, 내가 가입한 달이 11월이었고 다음 달에 연말모임이 잡혀있었다.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은 내가 세 번째로 참여하는 날이었는데 토론을 십 분 일찍 마치고 나를 포함해서 열한 명의 회원들이 미리 예약해 둔 도서관 근처에 있는 샤부샤부 식당으로 갔다. 셀프바에서 음식을 가지고 와서 익혀 먹느라 분주해서 대화하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몇몇 시간이 있는 회원들 카페에 갔는데, 그곳에 가서야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른 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모임은 회원이 몇 명이예요?”한 회원이 나에게 물었다. 강클럽에 처음 참석했을 때 나는 가입해 있는 독서모임이 있다고 말했었다.


“6명인데 실제로 나오는 회원은 4명 정도예요. 토론하기에 적은 인원이라 도서관에 회원모집을 부탁했어요.”

내 대답을 듣고 다른 회원이 물었다.


“새로 회원이 들어오면 기존의 회원과 독서력에서 차이가 나서 토론이 힘들지 않나요? 그때 무슨 책이더라. 박선생님이 신입회원이 추천한 책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읽는데 화가 났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책을 추천했던 분이 무안해했었고요.”


이후 이어진 회원들 간에 하는 대화에서 이런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고, 박선생님은 지금은 나오지 않는 분 같았다.


문득 독서모임에 오는 회원들을 내가 고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인 모임은 몰라도 독서모임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처음에 마음에 드는 곳을 가입한다 해도 얼마가지 않아서 같은 이유로 중단하게 되지 않을까. 특정 회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거나 내가 관심 없는 책을 선정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부터가 나와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새로운 모임에 가입해 놓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독서모임을 하는 목적 중 하나는 나의 기호와 다른 기준을 경험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 드는 곳을 찾는다는 건 나의 경계를 강화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결국 나 자신에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 안의 지평을 넓히려면 불편한 것을 경험하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게 하는 독서모임을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한편 비슷한 이야기 속에서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도움이 되는 방법을 내가 제안해 볼 수 있다. 개인적인 모임이라면 새로운 제안이 분위기를 깰 수 있지만 독서모임은 그렇지 않다. 몇 가지 제안을 할 생각을 하자 반가워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독서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만나서 책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이다. 마음에 걸리는 어떤 일이 바쁜 일과 속에 묻혀버리지 않고, 무엇이 내 안을 건드렸는지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현재의 모습이 다가 아닌, 마음속에 각자 원하는 모습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모임의 성격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지 않을까.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람들 때문에 모임의 성격도 변해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독서모임은 내가 얼마든지 바꾸어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의견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서 내가 원하는 모임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혹시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욕이 샘솟아서 늘클럽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푸른 들판을 걷다>의 7개 단편 중 회원님들은 어떤 단편이 좋았나요? 저는 <물가 가까이>가 가장 좋았어요. 할머니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자기를 두고 가려고 했던 할아버지 차에 올라타지 않을 거라고 했던 부분에서 할머니가 자신이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을 말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개인의 삶을 생각하지 못했던 건 궁핍한 경제사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에 읽은 <팩트풀니스>에서 생활양식은 문화보다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 부분과 연결되었어요. 소설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세계 인구를 소득을 기준으로 4단계로 나눈 표를 올립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믿음을 발견했다. 회원들도 변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keyword
이전 05화인생은 리허설이 없다고 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