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범주를 열어주는 책

by 김준정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강지나 선생님이 10년간 8명의 청소년을 인터뷰한 내용을 지식을 전달하듯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독자에게 생생하게 가닿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상처되지 않도록 글 앞에서 오래 고심한 흔적이 담겨있다. 청(소)년의 말투 그대로 옮긴 부분에서는 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았고, 사례마다 강지나 선생님이 쓴 ‘00의 뒷이야기’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제시해 주어서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취업 후에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정의 사례를 통해 자녀에게 수입이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격을 박탈하는 규정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상담사분이 얘기해 주셨던 게, 엄마가 100을 줬다고 해서 딸들이 100을 안 줘도 된다는 거예요. 그 말이 크게 와닿았어요. 언니랑 저는 항상 엄마한테 되돌려줘야 하는지 알았어요. 엄마가 이만큼 해줬으니까 우리도 그만큼 해줘야 돼. 언니랑 저는 우리 삶에 타격을 받으면서까지 엄마한테 다 해주고 있었던 거예요.”

-151p-


수정은 성인이 된 자신이 엄마를 돕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어쩌면 친척이나 이웃이 너희 엄마가 너를 키운다고 고생했으니 잘해드려라,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올바르게 살아라는 식의 지나가듯 한 말을 마음에 두었을지 모른다. 강지나 선생님은 그런 말을 삶의 방향키로 삼는 청년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보여주고, 죄책감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가가는 걸 우선으로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청소년을 거쳐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의 어려움에 눈물이 났지만, 이내 그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연민이라는 익숙한 범주를 벗어나 강지나 선생님이 제시하는 새로운 범주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청소년 복지가 교육비 지원에 그치기보다 “한 명의 인간이 자아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체제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에 깊이 동의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7p-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가난을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르게 이해해야 할 삶의 조건’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보게 되었다.


학교 무상급식 논의가 오갈 때 나도 무엇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전국 초중고생에게 매일 점심밥을 제공하려면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갈까. ‘내가 낸 세금으로 부잣집 아이 밥까지 책임져야 하나?’라는 생각에 선별해서 지원하고 그 재원을 다른 복지에 쓰는 게 합리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무상급식 시행을 시행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달라졌다. 다른 것도 아닌 ‘먹는 일’를 두고 그런 논쟁이 필요했을까 싶다. 미래 사회구성원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에 어느 집 아이인지 따지는 게 중요한 일일까. 오히려 구분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상처를 줄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낯선 것을 만나면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범주에 넣어 이해하려 한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도시락을 싸 다녔고, 우유급식은 돈을 내고 먹었다. 교실에는 각자의 가정형편과 엄마의 솜씨, 시간의 여유가 그대로 담긴 도시락이 놓였다. 그 차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비슷한 예가 한 가지 더 있다. 고3인 딸은 몇 년 전부터 학교에서 생리대를 받아온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은 ‘무료 생리대 자판기 설치’를 전교회장 공약으로 만들었는데 당시 나는 학교 재정으로는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리대 지원 역시 무상급식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무상급식, 생리대 지원을 교과서처럼 누구나 차별 없이 기본적으로 제공받아야 하는 범주로 이해하게 되었다. 새로운 범주가 점점 넓혀지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책을 펼치면 무의식 중에 책의 기획의도와 타깃독자를 찾게 되었다. 글을 쓰고 한동안 써온 원고를 묶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독자를 넘어서서 책을 만드는 입장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내 책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뭐지? 누구를 위한 책이지?”


투고를 하기 전, 출간기획서를 쓸 때 내 원고가 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한 문장으로 설명해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중에 만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존재 이유로 봤을 때 한층 더 깊은 차원의 책이었다.


등산을 가면 산에는 간식을 먹으며 쉬기 좋은 명당자리가 있다. 사람들은 조망이 좋고 바람이 살살 부는 곳에 앉아있다가도 새로 사람들이 올라오면 “방 빼드릴게요”하면서 자리를 비켜준다. 이제까지 나는 나보다 어리고 삶의 조건이 열악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싶다고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강지나 선생님의 10년간 해온 연구를 통해 그들이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낄 수 있으려면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들에게서 나에게 없는 걸 발견해야 한다고 말이다. 더불어서 내 책도 그런 발견이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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