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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큰 결정을 내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 이제라도..

by 환오

결혼 1년만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드디어 변하기 시작했다.

시댁 문제에 관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 첫번째 방법은 ‘부부상담’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위치가 양재역이었는데 마침 회사 동생이 추천해준 부부상담 클리닉이 딱 양재역에 있었다.

아, 또 이렇게 하늘이 길을 터주는구나.

회사 동생은 자기 친구도 고부갈등으로 부부상담을 시작했는데 돈은 크게 썼지만 남편이 조금 바뀌었더라는 후기를 듣고나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돈이 문제랴,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런데 돈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비싸긴 했다.

지금부터 11년 전인데 4~5회?정도 상담에 200만원 정도 투자를 했다.

물론 그 안에는 각자의 심리검사비용도 들어갔지만 유명한 상담가를 찾아가니 비용은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우선 내가 원하는대로 부부상담을 하기로 했지만 역시 첫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인지하신 상담가는

남편에게 초첨을 맞춰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부모로부터 따로 떨어져나와 우주에 하나의 작은 소행성이 형성된거에요.

지금 하남씨(주1)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붙어있는 잼과 같아요.

마른 식빵 두 장이 있는데 하남씨가 붙어있어야지 떨어지면 그 빵들도 떨어져요.

부모님한테 하남씨는 그런 존재입니다.”


남편은 상담 2회만에 집에 와서 씩씩대더니

“나 이거 못하겠어.”

“왜??”

“저 사람 말 들으면 우리 가족이 다 잘못 산거고 이상한거잖아?!”


그래, 하남아. 너만 모르지?

너네 가족 좀 이상한거 맞고

너는 부모님 사이에서 잼같은 존재인것도 맞아.

선생님이 내공이 보통이 아니시더라.

어쩜 그렇게 비유를 찰떡같이 하시던지.

내 속이 다 내려가던데?

....................................................................

라는 말은 차마 못했지만, 최대한 남편을 달래보기로 했다.


“그래도 우리 기왕 시작한거 끝까지는 해봐야지. 이거 일시불로 돈 다 내서 환불도 안돼..”

그건 사실이었다. 센터는 무섭게 선불결제로 남은 횟수까지 다 받아버린 상태.

하기 싫어도 무조건 해야 하는 상담.

어르고 얼러서 남편을 토요일마다 양재역으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다행히 초반에 고비를 넘겨서 중반까지 갈 무렵 상담사는 조금 쎈 솔루션을 내주셨다.

“한달 정도는 시댁에 연락을 하지 말아보세요.”

물론 뜬금없이 갑자기는 아니었고, 사이사이 시댁의 부름에 건너가서 남편과 함께 형수가 나를 보면 인사도 안하는 점 그외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드려봤지만 시아버지는 귀를 꽉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 입에서 나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누가 그런 소리를 해!”

그렇다. 당신은 인정하기 싫은셨던 거다.

큰며느리 잘못 들어왔다고 시골 내려가셔서 우신 에피소드가 건너건너 내 귀에까지 들어왔건만.

시아버지는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으셨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형과 동생 위계질서가 무너질까 이집은 장남내외는 아무리 틀려도 아닥(주2)하고 맞은 거였다.


그 결과 극단의 쎈 솔루션 처방.

시아버지한테 큰 기쁨이 되는 전화를 매일마다 끊는 것.


남편이 과연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남편은 30년동안 착한 둘째 아들로, 이 집안의 보이지않는 자랑거리였다.

어릴때부터 조립을 좋아해서 장난감만 주어주면 혼자서도 잘 노는 아들.

떼부리고 뭐사달라고 누구처럼 징징거리지 않는 아들.

재수없이 원하는 대학과 전공 한방에 찾아갔고,

굴지의 대기업 3군데를 골라 들어간 태어나서 부모 속은 썩여 본적이 없는 아들.

부모가 원하면 원하는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 맥가이버처럼 문제를 해결해주는 아들.


그 아들은 평생 연애 한번도 못해보고 두 살 연상 누나를 만나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된다.

누나 역시- 연애경험은 없지만 순진하고 순수한 하남이-가 좋아 결혼까지 골인했건만.

결혼을 하고 나니 이 남자는 내 남편 이전에 그 집 아들 역할이 1순위였다.

이 쉽지 않은 연결고리를, 30년 동안 이어온 이 단단한 무쇠뿔을 내가 부러뜨릴 수 있을까?

(나는 못하지만 우리 선생님이라면 할지도 몰라..)


이름은 못 밝히지만 어쨌뜬 그 상담사 덕분에 남편은 평생 처음으로 ‘불효’를 저지르게 되었다.

한달동안 정말 시댁에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주1) 하남: 연하남에서 성인 '연'을 떼고 이름 '하남'이만 부름. 연애할때 베프가 붙여준 구남친 현남편의 애칭. 경기도 하남시가 아닙니다.

(주2) 아닥: 아가리 닥치고의 준말. 표준말을 지향하나 표현을 다 못 담아낼때는 비표준어가 필요합니다.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시짜 이야기]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시 :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시짜 이야기]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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