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59 댓글 10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부부상담 200만 원은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어느 정도는.

by 환오 Mar 03. 2025

남편은 힘들지만 상담사 말대로 극단적인 설루션을 실행했다.

시댁에 전화 끊기.

매일 퇴근하자마자 옷도 벗기 전에 전화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없다.

남편의 표정이 불안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시아버지가 나에게 한 명언이 생각난다.

“내 아들 설거지 시킬 생각 하지 말아라”

뼈 있는 시아버지의 진지한 한마디에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버님, 저도 회사 다니는 사람인데 맞벌이하면서 집안일은 같이 해야죠.

 제 월급이 아무리 쥐꼬리여도 그렇지, 그리고 저희 아빠도 집에서 설거지하신다고요!’     


속으로 꿀꺽 삼킨 말이 많아졌다.

몰랐었다. 남편이 이렇게 귀한 집 아들인지.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아직까지 두 남녀 간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과의 만남인 풍토가 씨게(주1) 남아있다.

특히 시댁의 분위기를 몰랐던 나로서는 아니,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집이 있지?라는 이질감에 썩소가 올라오기도 했다.     


에피소드 하나를 풀자면,

시골에 계신 시할아버지댁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는 일이었다.

첫인사라서가 아니라 방문할 때마다 인사 대신 절을 해야 한다.

내 인생에 절은 세뱃돈 받을 때, 제사 지낼 때 딱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는데

어르신이라고 이렇게 만날 때마다 큰 절을 올리는지 몰랐었다.

제사 지낼 때도 시할아버지는 골방에서 삼베옷과 갓을 꺼내오신다.

진짜 갓이다.      

대충 이런 모습에 가깝다..(헤럴드 기사 사진 참조)대충 이런 모습에 가깝다..(헤럴드 기사 사진 참조)


남편아, 왜 이런 사실을 나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니.

나 마음의 준비라도 할 시간을 줬어야지.

이렇게 제사를 중시하는 집인 줄 몰랐다.

아니 제사뿐이니?

결혼하고 2년 정도는 내 팬티까지 달라고 하셨지?

시골에 할머니가 점인지 뭔지 도대체 가족들 속옷을 가져다가 어떤 신한테 바치시는 거니?

그때 말은 안 했지만 솔직히 너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더라.

당신은 알았을 거 아냐?

그동안 쭉 이어온 당신 집안의 전통이니까.

나한테 어느 누구도 양해를 구한 사람은 없었어.

당신조차도.       

             


그렇다고 시댁 사람들이 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든든한 조력자 두 분이 계셨으니,

바로 작은아버지 내외셨다.


남편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작은아버지는 나랑 12살 차이 시아버지랑은 18살 차이였다.

젊은 작은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시댁에서 겪는 고충을 만나서 자주 토로했었다.     

알고 보니 작은 어머니 역시 내가 들어오기 전에 나와 같은 맘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조카며느리(남편의 형수이자 나에게는 형님)가 새로 들어왔지만 항상 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그녀 때문에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껴서 말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하셨던 거.


집안에 여자들끼리 불편함이 생기면 남자들은 왜 와이프 편을 들지 않는 걸까?

작은 아버지 역시 '당신이 큰 사람이니까 품어야지!' 이렇게 작은 어머니에게 야단치셨더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 ‘네가 형수를 얄밉게 보니까 그렇지!’라고 버럭 했던 남편이 오버랩 됐다.

이 집안 남자들만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집 남자들도 그러는 건지 진심 궁금하다.     


여기서 시어머니가 중심을 잡고 중재를 잘하셨으면 문제가 안되는데 시어머니는 시댁에서 ‘자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입 꾹 닫아야 하는 이 집안의 암묵적인 서열 꼴찌 시어머니.

애석하게도 ‘시어머니’ 자리는 시아버지가 다 업고 가셨다.

시댁의 모든 사안은 시아버지 통제 하에 움직인다.

시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많이 베푸는 대신 모든 것을 당신 손바닥에서 움직이길 원하셨다.

그는 이 집에서 그야말로 종교 그 자체였다.

나에게는 ‘하느님’ 같은 존재가 이 집에서는 ‘시아버지’였다.          


그렇게 시댁에 연락을 끊은 지 한 달이 돼 가자 집에 들르라는 시댁의 호출이 왔다.

한 번은 부딪쳐야 하는 일.

남편과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두 손을 꼭 잡고 시댁으로 향했다.(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주1> 씨게: '쎄게' 경상도 사투리(네이버 사전)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시짜 이야기]

화요일 오전 7: [!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시짜 이야기]

금요일 오전 7: [거북이 탈출기 두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이전 11화 남편이 큰 결정을 내렸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