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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은 개썅마이웨이 해야 합니다.

지나고 보니 나는 정신병원을 갔어야 했다.

by 환오

이번 편은 조금 우울한 내용일 수 있어 미리 독자님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다음 주에는 똥꼬 발랄? 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아작아작 팝콘각으로 돌아올게요. 총총총..




정확히 날짜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신혼 1년을 시댁 스트레스로 산부인과 치료를 받고 위장장애로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날들이 반복되자 나한테는 이상 증세가 하나둘 추가됐다.


회사에 나가서도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활짝 펴도 모자를 새댁이 점점 살이 빠지고 있었다.

맞벌이라 주말이 기다려져야 되는 신혼부부인데 나는 주말이 오히려 두려웠다.


또 저녁 먹으러 부르실까?

또 가족모임이 있으려나?


주말에 남편과 데이트를 하고 싶어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의 외가댁 행사에 참여하는 건 우리였다.

형 내외는 빠져도 될 만한 모임에서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우리에게 은근슬쩍 임무를 넘겼다.

하지만 그렇게 형의 빈자리를 동생인 우리가 채워드려도 딱히 돌아오는 건 없었다.

처음부터 당연한 '의무'였다.

원래부터 있던 자리에 '의자' 하나만 추가해서 내가 이 집에 들어온 거니까.


못 참겠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겠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하지만 지금의 남편은 저 사람들과 똑같을 뿐이다.


2014년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역에 내리면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10분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그 울음은 집에 도착해서도 쉽사리 멈출 생각을 안 했다.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그 며칠 전부터 내 심리상태는 상당히 불안했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마저 내 편이 아닌데 난 누굴 믿어야 하지?


그런데 무섭게도 이런 내 생각은 ‘생각’으로 그치지 않았다.

옷방에 들어가서 주섬주섬 남편의 넥타이를 찾았다.


안돼!!!

환오야 제발 그러지 마!!!!


내 안의 '내'가 다른 나와 싸우고 있다.

나는 결국 그 ‘짓’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이게 아니었는데..


난 부모로부터 독립했는데 왜 다시 부모가 네 명으로 늘은 거지?

당신들을 안 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시간이 필요했다고요..

깜빡이도 안 키고 들어오는 칼치기 차 같았다고요.

불도저처럼 무섭게 들이대는 당신들의 규칙이 나는 숨 막혔다고요..


사람이 사람하고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너는 내 며느리, 너는 우리 집 사람,

이건 당신들이 정한 일방통행이지 제 입장 생각해 보셨나요?

그래도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말 안 해도 다들 아시잖아요.

능력 없는 큰아들 때문에 큰며느리한테 말 한마디 못하시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부족한 큰아들 내외 대신해서 작은며느리가 착한 둘째 아들 따라 당신들 욕구 채워드렸잖아요.


저는 부당함을 잘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저는 잘못된 것을 보면 바로 잡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평등한 형제관계 속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저는 꽤 성실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당신들께 이쁨 받고 싶어서 '착한 척'으로 위장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점점 혼잣말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남편은 집에 와서 혼자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끝까지 캐물었고,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야 내 등을 치면서 왜 그랬냐고 같이 통곡을 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진짜야? 믿어도 되니?)


우리는 그때 왜 그런 고통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을까.

시댁 근처에 집을 잡지 않았으면 우리의 과거가 달라졌을까?

행복하기도 모자란 그 시간들이 내게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로 채워져서 마음이 아파.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지금 우리는 괜찮은 걸까?

그래, 적어도 그때보다는.










p.s 혹시 이 글을 보시는 예비신부들이 있다면 시댁 코앞에 집을 얻는 건 비추합니다.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죠.

처음부터 선을 그어주는 건 며느리가 해야지 어른들에게 칼자루를 쥐어주지 마세요.

잘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욕먹는 게 시댁이랍니다.

이건 100, 2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예요.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feat.이정재 목소리)

그러니 처음부터 그냥 개썅마이웨이 하시길...!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환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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