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진료만 1년 다녔어요.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시댁 근처인 서울 광장동에 둥지를 틀었었다.
나름 한강도 보이는 집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강뷰고 나발이고 한시라도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죽을 거 같아서 딱 2년만 살고 친정 근처로 왔습니다)
그래도 이런 집을 마련해 주신 시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남편과 매달 큰돈은 아니지만 용돈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만 드릴 수 없으니, 장인어른 장모님도 드리자고 하였다.
우리 부부는 그런 점에서 마음이 잘 통했다.
당장 내 배를 부르게 하는 것보다는 사람 구실은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시아버지는 우리의 이런 제안을 마지못해 받으시고는 한마디 거드셨다.
“형한테는 비밀로 해라.”
그렇다.
우리가 드리는 용돈을 형이 알면 안 되는 거였다.
괜히 형의 마음이 불편할까봐 신경쓰시는 시아버지의 장남바라기.
이런 시아버지 때문에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서운한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when you give alms,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is doing”
(마태복음 6장 3절)
신께서 나를 시험하시나?
왜 내가 용돈을 드리자고 남편에게 먼저 제안했던가?
결국 나는 나를 위해서 그 일을 진행했던 건 아니던가?
착한 며느리라는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시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속이 안 좋더니 나는 건O대학교 병원에 3박 4일은 입원하고 퇴원을 했다.
밥도 거의 먹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는데 신기하게 내 안에 장기들은 큰 문제가 없었다.
결혼 전에도 회사를 아파서 못 나간 적은 없었는데 최초로 결근을 해본 경험이었다.
꼬박꼬박 하는 월경도 불규칙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갈색혈이 40일 정도 지속된 적도 있었다.
나는 무려 40일 동안 생리대를 차고 다녔다.
원인을 알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니 병명은 다낭성증후군.
그건 정상적인 생리가 아니라 그냥 이상 출혈이었다.
심각한 질병은 아니지만 어쨌든 병을 고치기 위해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가 끝나면 곧바로 건대입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회사 다니랴, 시댁에 불려 다니랴, 병원 치료받으랴 내 몸은 점점 곯아가고 있었다.
그냥 핏기 없는 새댁이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병원 치료는 무려 1년이나 지속되었다.
다낭성증후군뿐만 아니라 자궁경부암 검사도 의사 선생님은 아주 쉽게 설명해 주셨다.
“암이 1기, 2기, 3기, 4기가 있다고 치면 지금 1기 오기 전에를 또 10단계로 쪼갰을 경우 1단계 정도예요.”
내가 암? 암? 암? 아니지. 암은 아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앞단계 아주 미세하고 미묘한 수치로 이제 임신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죽느냐 사느냐 문제로 직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해졌다.
그래, 내가 지금 받는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네?
이 스트레스를 조금 줄이다 보면 몸도 좋아질 거야.
하지만 그 스트레스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조장되는 거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 같은 유리멘탈이 시댁이라는 외부요인들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있을까?
그러는 사이 남편의 형수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쌍둥이.
나도 임신을 원했지만 당시 몸 상태로서는 임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내가 받는 치료라도 잘 끝내는 게 우선이었다.
퇴근하던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시어머니 전화가 왔다.
“네 어머니~”
“응~ 퇴근하니?”
스몰토크로 대화를 이어가던 시어머니가 본론을 꺼낸다.
“OO이 임신 소식 들었지?
이따 전화 좀 넣어라~ 축하한다고~”
“.. 네 어머니...”
전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왔다.
내가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사실을 시댁에서는 모르게 했다. 괜히 알아봤자 좋은 말이 나올 거 같지 않았고 걱정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사정을 알리 없는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축하전화까지 하란다.
나는 40일 동안 정상생리도 아니고 그냥 피가 나오는데..
내 얼굴 보면 쌩하니 인사도 안 하는 사람인데.. 나랑 눈도 안 마주치는데..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멈출 생각을 안 한다.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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