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이런 시댁은 처음이지?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서 살림을 시작하자마자 나에게는 없던 루틴이 하나 생겼다.
남편이 매일 직장에서 돌아오면 옷도 벗기 전에 하는 일은 시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는 일이었다.(시댁과 걸어서 십분 거리인데?) 더불어 옆에 있던 나도 바꿔서 회사 잘 다녀왔다, 저녁 맛있게 드시라 덕담(?)을 해야 전화는 마무리가 되었다.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혼자서라도 전화를 드려야 했다.
그게 이 집안의 보이지 않는 룰이었다.
서서히 목이 조이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한테도 전화 잘 안 하는 딸인데 하루아침에 바뀐 내 일상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남편이 그리하니 나도 따르는 수밖에 없지 라며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내 마음을 돌려버렸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하자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며느리였음을 고백(?)한다.
결혼하고 나서 약 6개월 동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우리들의 아침 출근길에 같이 동행을 하셨다.
응? 무슨 말이냐고?
시아버지는 우리가 결혼하기 전년도에 대기업 임원에서 명예퇴직을 하셨고 우리가 결혼하던 해부터는 자유의 몸이 되셨다. 30년이 넘게 한 직장에서 온 젊음을 다 바쳐서 일하셨는데 그 상실감을 내가 감히 알 수는 없겠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시아버지의 남는 시간과 관심사는 사진이라는 취미활동과 함께 가까이 사는 우리 부부에게 꽂히게 되었다.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지하철역.
하지만 그 길에 매일 아침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차를 끌고 우리 집 현관 1층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나눌 수 있는 젊은 신혼부부의 달콤한 스몰토킹 시간도 뺏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하셨을 거다.
설령 알았다고 한들 뜻을 굽힐 시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약 6개월 동안 나는 주 5일 시부모를 아침 출근길마다 볼 수가 있었다.
(이건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니여..)
그래도 친정엄마는 너처럼 복 많은 며느리가 어딨냐고 그렇게 수고해 주시는 시아버지께 감사하게 생각하라며 입이 나온 나를 질책하셨다.
나도 점점 불편해하는 내가 잘못된 거라며 주변의 반응에 수긍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댁과 불합리한 사건들이 쌓이자 나는 소심하게 반기를 들고 싶어졌다.
아침마다 얼굴도장 찍고 저녁엔 전화도장 찍는 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보자!
나는 콜포비아에 정면승부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시간적으로는 뒤에 나오는 에피소드지만 전화를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을 먼저 해볼까 한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매일 거는 전화가 불편하고 싫어요.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과감하게 약 2주 정도는 전화를 안 드리는 선택을 했다.(덜덜덜. 그때 엄청 떨었더랬지..)
물론 그 사이 남편은 항상 루틴대로 일이 끝나면 시댁에 전화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통화하던 시아버지는 내가 옆에 있으면 바꾸라는 말을 하셨나 보다.
남편이 당시 임플란트를 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어금니에 금이 가서 치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 힘들었지만 내 아픔은 시아버지 앞에서 묵인되어 버렸다.
이래서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거겠지.
말로는 딸처럼 품어주실 것처럼 내 머리카락 수까지 셀 기세였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아픈 것도 내가 옆에서 잘 못 보듬어 그런 것처럼 책망을 하시더니 결국 하지 말아야 될 말을 내뱉으셨다.
“인정머리도 없는 거 같으니라고”
귀에 때려박는 시아버지의 냉랭한 목소리.
전화를 어찌저찌 마무리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저녁을 먹던 중이었는데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이 말을 전달하면서 결국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말.
인정머리가 없다.
내가?
나처럼 착하게 살아온 소심한 인간이? 항상 남들한테 배려해 주고 내 몫은 못 챙기면서 살아왔는데.
시아버지의 말은 비수처럼 내 심장에 꽂혀 버렸다.
아버님, 저 인정머리 없지 않아요.
아버님이 과하신 건 왜 모르세요.
왜 항상 일반통행만 하시려고 하세요.
저도 하루아침에 바뀐 일상이 적응되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저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거지 이 집안 둘째 며느리로 들어온 게 아니에요.
그건 저한테 있어서 두 번째랍니다.
저와 남편의 모든 것을 머리맡에서 일일이 세려는 당신 때문에 저는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아요.
마음속에 대답 없는 메아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운 빠지게도 나중에 저 사건에 대해 많이 속상했었다고 시아버지께 말했지만 당신은 절대 저런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며 한사코 부인하셨다.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오리발 내미시는 시아버지. 녹취라도 했어햐 했나..
그렇다.
나는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 환자였지만 시아버지의 눈에는 그저 착한 둘째 아들 뺏어간 며느리였다.
(주1)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의 명언
P.S) 요즘도 시댁에서 전세집 해주면 신혼집 비밀번호는 며느리가 못 정하나요? 저는 시어머니가 정해주셨는데 지금도 그런 문화인지 궁금해서요. 12년 전 이야기이니 MZ며느리들은 안 그러겠죠? 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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