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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천사

기특아, 사랑해.

by 환오 Mar 06. 2025

벨을 누르니 시어머니가 굳은 얼굴로 나오신다.

시아버지는 속이 안 좋으셔서 체하셨다며 안방에 계신다고 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불편하다.     


드디어 한 달 만에 시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했다.

빨갛게 익은 시아버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탄처럼 터질 것 같았다.

눈에는 이글이글 분노가 들끓는다.     


떨지 마! 떨지 마! 괜찮아! 괜찮아!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어본다.

   

남편은 나를 대신해서 그동안 형수와 관련된 나의 고충들에 대해 시아버지께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진심을 담아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다 들으시기도 전에 말을 자르고 당신 생각을 펼치셨다.

대략 형수에 대한 방어 정도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랑 통화할 때 인정머리 없다고 말씀하신 게 당신은 기억이 안 나신단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버럭 화를 내신다.     


이야기는 점점 좁혀지지 않고 거리만 더 멀어지고 있다.

시아버지의 얼굴이, 눈빛이 나를 잡아먹을 거 같다.

나는 이런 눈빛을 살면서 받아본 적이 없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거 같다.

살의가 느껴질 정도다.     


시아버지를 그토록 분노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였던가?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이 집안에서 왜 착한 며느리 역할을 자처했던가.

착한 며느리는 왜 욕을 먹어야 하는가.

처음부터 나는 이런 거 잘 못해요 버전으로 형님에게 기술을 배웠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시아버지의 저런 눈빛을 받지 않았으려나?     


아니다.

누군가는 이 집에서 착한 며느리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게 나로 당첨된 거는 불가항력이었다.

왜냐하면 내 남편이 이 집에서 착한 아들이었으니까.

큰 아들은 원래부터 말썽쟁이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나에게는 처음부터 선택권은 없었다.

착한 며느리던, 싹수없는 며느리던 둘 중 어떤 걸 선택했더라고 나는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시아버지는 우리가 부부상담을 하러 다닌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해하셨다.

왜 당신한테 오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얘기를 하냐는 말씀.

아버님이 귀 꽉 막고 계시는데 어떻게 와요 

라는 말이

혓바닥 밑에까지 올라오지만 다시 꾹 밀어 넣는다.     


중간중간 내 의견도 피력하자 시아버지는 화를 못 참으시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 이른다.

드라마 연속극에서 나올 법한 대사가 지금 내 귀에 때리고 있다.     

“네가 감히 어디 시아버지한테!!!!!!!!!!!!”     


아, 잠깐 여기서 스톱!!!!!!!!!!!!!!!


아버님, 저 뱃속에 아버님 손주가 있는 거 아시나요?

아무리 화나셔도 잊으시면 안 되는데...

알면서 그러신 거 맞죠?


기특이가 두 달이 겨우 넘어가는 시점이었어요.

아무리 콩알만 해도 이 아이 다 듣고,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제 두려움과 떨림도 다 전해 졌겠죠?

그래서 저는 그날의 사건이 한동안 제 몸밖에 나가질 않았답니다.

깊은 가시가 되어 제 심장에 박혀 빠질 생각을 안 했었죠.

기특이가 구순구개열 진단을 받던 그날부터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아버님도 저도 그때는 서로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래서 더 이상 원망은 안 하기로 했어요.

아버님은 참 많은 걸 베푸시는 따뜻한 분이셨어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죠.

대신 그만큼 구속하길 원하셨더랬죠.

저는 구속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베푸심이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이런 저에 대해 잘 모르셨으니 아버님 딴에는 그저 베풀고 잘해주려 하는데 왜 너는 나한테 이렇게 하냐 못마땅하고 서운해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이제는 아버님을 이해해보려 합니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러버렸어요. 이제는 저를 그 기억에서 놔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아들도 기특이도,

그리고 저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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