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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그들의 돌잔치

알고 보니 형님의 패션쇼 자리였다.

by 환오

나는 임신 전부터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은 집에서 가족들과 조촐하게 보내고 싶었다.

어디를 예약해서 사람들을 불러 소위 ‘돌잔치’라는 것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인 취향이니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나와 남편의 성향이 안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그렇게 정하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기특이는 돌 때쯤 예정된 구개열 수술을 받기 위해 하고 싶었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기특이의 수술이 있기 몇 달 전, 그들의 화려한 돌잔치가 있었다.(오늘은 그 썰을 좀 재미나게 풀어볼까 한다)

마음 같아서는 기특이 핑계로 안 가고 싶었으나(왜 안 가고 싶었는지 궁금하신 독자님들은 처음부터 읽어보시면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되실지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기에 남편을 봐서 기특이를 데리고 돌잔치 장소로 향했다.


그들답게 역시 럭셔리한 호텔에서 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썩소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약속장소에 도착. 보기 싫은 (오늘은 나를 보고 인사는 하려나?) 남편의 형수를 봐야 한다.

그래도 돌잔치다.

자. 사회생활 장착! 얼굴에 미소 장착!


저 멀리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형님이 보인다.

어랏? 근데 이게 웬일.

역시 아이는 사람을 바꾸는 존재인가.

그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그래, 오늘은 네 귀한 자식들 생일잔치인데 쌩깔 수는 없겠지.


온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있다.

나도 기특이를 안고 인사를 드린다. 겨울이라 스웨터를 입고 갔었는데 시고모 한 분이 오시더니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한다는 말투로 애기한테 이런 게 안 좋으니까 면 소재 옷을 입으라고 한소리 하신다.

아 괜찮다. 이 정도는 뭐 애정이 있는 잔소리로 들린다.


곧 돌잔치를 시작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기 시작한다.

나도 남편과 자리를 잡고 앉자 이윽고 쌍둥이들의 귀여운 영상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 기특이는 큰 음향소리에 놀래 울음이 터졌다.

우리 세 식구는 연회장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

차라리 기특이가 울어줘서 고마웠다. 그들의 행복한 지난 일 년간의 과정들을 굳이 내 눈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뭐가 궁금해서 내가 보고 싶겠는가.


한창 밖에서 기특이를 달래고 들어가니 어머나! 순간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그새 옷을 갈아입었는데(아마 2부 시작이었나 보다) 이번에는 가슴골이 훤히 파이고 등도 똥꼬까지 파인 까만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여기가 할리우드 시상식인가 싶다.

모을 가슴도 없는데 우리 형님이 왜 저럴까?

아니, 이건 시댁 식구들 엿 먹으라고 일부러 저런 야한 옷 입은 건가?

나 이 정도 되는 여자다 뭐 그런 건가?


그녀의 발칙한 의상에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남자 어른들은 눈길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닌 척 미소를 짓고 있지만 불편함이 이미 얼굴에 드러난 시고모들까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리쌍이 부릅니다.)


그녀의 패션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가본 돌잔치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운 장면을 연출해 줬다.

이제 갓 돌인 그녀의 딸과 커플룩을 입고 전문 사진가가 붙어 사진을 찍어준다.

반짝거리는 롱블랙가죽재킷을 질질 끌며 그녀가 모델처럼 포즈를 잡는다.

몇 번씩 옷을 갈아입으며 그녀와 그녀의 딸은 패션쇼가 끝이 났다.

난생처음 돌잔치에서 패션쇼를 보고 역시 신박하다 신박해 속으로 탄성이 나왔다.


화려한 그들의 돌잔치를 보고 나니 괜히 내 상황이 더 씁쓸해진다.

원래부터 너 이런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이잖아라고 애써 부정해 보지만, 수술을 해야 하는 기특이와 비교하는 연약한 내 자아가 또 빼꼼히 고개를 든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그들이었다.

언제나 시댁 식구들의 주인공은 그들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질투는 무시무시한 것이다.
질투는 사랑과 닮았지만 실은 그 정반대이다.
질투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의 선을 원치 않고 그 사랑하는 것의 종속과 자기의 승리를 원한다.
사랑은 자아의 망각이다.
질투는 이기심의 가장 정열적인 형식, 자기를 잊고 자기를 종속시킬 수 없는
전제적이고 까다로운 허영심이 강한 자아의 양상이다.
양자의 비교는 끝이 없다.

- 아미엘일기, p.134




우리 기특이도 집에서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돌잔치를 소박하게 치러줬다.

호텔에서 패션쇼를 안 한들 어떠하리.

내 눈에는 세상 제일 멋진 아이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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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억지로 붓이라도 잡게 하는 돌잡이 ㅋㅋ 오른쪽은 스튜디오에서도 붓을 잡는 기특이.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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