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댁의 기둥이 뽑혔다.

애증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by 환오

2019년 1월 4일 저녁. 시아버지는 정확히 간암 발병 2년 만에 돌아가셨다.

시아버지의 끊어지는 숨결 앞에 우리는 세상을 잃은 듯 다 같이 통곡을 했다.

죽음이 그를 덮치기 직전, 그의 병실 한편에는 미처 다 보지 못한 회사 결재서류들이 한 박스 있었다.

회사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어져 마음에 주름이 생겼다.




정확히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남편과 시아버지 병문안을 갔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샛노래진 얼굴, 복수로 가득 찬 배는 내가 알던 시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2년 동안 색전술이라고 하는 시술을 몇 차례 받으시면서 가족들을 포함한 나 역시 그렇게 연명하는 삶이 가능할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간 이식수술을 권했지만 남편은 과체중에 지방간이 있고 남편의 형 역시 이식수술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국 아들들 간 이식은 할 수 없는 상태.

그 와중에 시어머니는 옆방 환자의 보호자에게 색전술 10번은 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희망을 걸고 계셨다.

회사를 다니시면서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색전술.

시술과 회복이라는 반복되는 과정을 시아버지는 잘 버텨내 주셨다.





돌아가시기 전 한 달쯤부터 응급실을 두 번이나 찾을 정도로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간암은 발병되고 나서 5년 이내 생존확률이 40% 미만이라고 한다.

그 생존확률을 뚫고 시아버지는 살아남을 거라고 당신은 굳게 믿고 계셨다.

아직 죽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 68세...


간암으로 아버지를 먼저 보낸 지인에게 시아버지 상태를 얘기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 역시 시아버지와 비슷한 코스를 밟고 한 달 이내로 사망하셨다는 말을 듣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안일했다.

암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시아버지는 이 나이에 이게 무슨 ‘복’이냐며 회사생활을 하는 것에 항상 감사해하셨다.


아버님, 근데 진짜 복은 그 연세에 아프지 않고 쉬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라는 말을 드리고 싶어도 어차피 먹히지 않으니 입을 다물었다.

고집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시는 시아버지.

그의 끈기와 책임감은 당신 몸을 돌보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대가로, 암이라는 고약한 놈이 몸에 들러붙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간암이라고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회사고 뭐고 때려치우고 당신 몸을 돌봤어야 했다.

싸가지 없는 큰며느리가 쌍둥이를 맡겨도 당신 몸부터 돌봤어야 했다.

당신은 그렇게 어이없이 빨리 세상을 뜨면 안 되는 몸이었다.

당신이 주신 사랑에 나는 아직 응답을 하지도 않았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모든 것이 좋고 나쁨은 감각에 있는데,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기 때문이다.(중략)
죽음은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재앙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산 자에게는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어떤 때는 죽음을 가장 큰 재앙이라고 여겨 피하고자 하고,
어떤 때는 죽음을 삶의 재앙들에서 벗어나 안식하게 해주는 것으로 여겨서 붙잡고자 한다. (주 1)




시아버지의 숨이 끊어지기 3시간 전 남편의 전화가 왔다.

“여보, 지금 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

분명 며칠 전까지 간이식 수술을 얘기하던 병원은 하루 만에 시아버지가 소천할 거 같으니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했나 보다.

남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일산에서 서울 풍납동 병원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나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내 안색이 안 좋은걸 눈치채고 무슨 일인지 조심스레 여쭤보신다.

“저희 시아버지가 위독하시대요...”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며 조곤조곤 속삭이듯 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 내 뱃속에는 6개월된 둘째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주 1> 에피쿠로스쾌락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시짜 이야기]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 2]

목요일 오전 7시 :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시짜 이야기]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keyword
이전 16화등골브레이커가 너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