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많이 왔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수술 스케줄이 결정된 아이.
구순구개열로 태어난 내 아이.
생후 79일 구순열 수술, 돌 때는 구개열 수술과 귀 튜브 삽입 수술을 마치고 이후 몇 년은 병원과 상관없는 상태로 지냈었다.
그러다 7살에 구순열 2차 수술을 받았다.
그 사이에 두 번의 중이염 시술이 있었다.
그러니까 기특이는 시술을 포함한 수술을 총 4번, 7살 수술이 5번째 수술대에 오르는 시기였다.
4년 전, 구순열 2차 수술을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남편은 당시 회사 일로 한창 바쁜 시기였고 나 혼자 아이 입원과 수술과정, 케어까지 도맡아서 했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직전 연도 매매한 우리 인생 첫 집의 잔금 치르는 날이 하필 기특이의 수술날이었다.
백만 원, 천만 원도 아니고 몇억을 이체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otp카드로 진행을 해야 한다.
미리 이체한도는 올려놨었지만 이렇게 큰 억 단위 돈을 이체한 적이 없는데 너무 떨렸다.
아니, 왜 하필 중요한 날은 이렇게 겹쳐서 오는 것인가.
나는 잔금 치르는 날에 오빠를 부동산에 보냈다.
짐이 빠지고 내 대신 아바타로 부동산에 간 오빠.(이럴 땐 형제밖에 없다. 오빠 고맙...)
수술이 진행되고 아이가 회복실로 올라오고 나는 아이를 보러 갔지만 한쪽 마음에는 돈을 이체할 생각이 가득했다.
수술을 집도해 주신 교수님께서 기특이를 보러 올라오신단다.
간호사 말에 선생님 맞을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오빠한테 전화가 온다.
“야, 지금 입금해야 해!”
“어어, 알았어!”
악...... 교수님을 어찌 뵙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기특이 수술이 잘 된 건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시는 교수님 뒤통수를 쳐다보면서 후다닥 핸드폰을 꺼내 돈을 이체한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계좌번호를 몇 번이나 확인한다.
이체 끝.
이제 내 집이다. 휴.......
그제야 기특이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태어나서 이렇게 쫄리는 날은 처음이다.
아이 수술도 너무 중요하지만 집 잔금 치르는 일도 중요하다.
그것도 전세가 아닌 내 집 잔금을 이렇게 정신없이 치르게 될 줄이야.
어쨌든 별문제 없이 집은 내게로 왔고 기특이도 수술을 잘 마쳤다.
감사하게도 7살 때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돼서 수술비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기특이가 지금 하고 있는 치아교정도 비급여에서 급여로 나라에서 보험처리가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신생아 때 교정기 값만 200만 원이 드는 걸 보고 나중에 치아 교정장치는 천만 원 넘게 드는 거 아닐까,
아이의 병원비 걱정이 먼저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선배부모님들의 노력이 있었던 건지 점점 보험혜택이 늘어나고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뱃속에 태아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아기를 지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남의 시선에 취약한 나라이며 복지 수준도 선진국에 비하면 미흡하다.
의료혜택이 많아져야 뱃속에서 아픈 아이를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
내 새끼가 손가락이 하나 없다고 해서 죽일 것인가?
내 새끼 얼굴에 흉터가 있다고 죽일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게 나라에서 보험 혜택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남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터부시되는 분위기부터 어른들이 바꿔 나가야 한다.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고대로 흉내 내고 배운다.
이제 기특이의 인중은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걸려 내 자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기특이 때문에 내 안의 편견을 마주했다.
기특이 때문에 그 벽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기특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내 인생은 완벽했던가.
내가 인생에서 불행하다고 느낄 때 안타깝게도 그건 기특이 탓이 아니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다.
이제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흘려보냈으니,
지금 이 순간 기특이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저 멀리 우주에서 나를 '엄마'로 선택하고 와준 기특이 덕분에 나는 오늘도 성장하는 중이다.
[환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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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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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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