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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힘들었나 봅니다.

수술이 끝났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네요..

by 환오

어제는 기특이의 치조골 이식수술이 끝나고 처음으로 치과 진료가 있었다.

집에서 거리가 꽤 먼 압구정역.

이상하게 치과 가는 날이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우리는 원당역에서 압구정역까지 43분 남짓 지루한 시간을 앉아서 버틴다.

다행히 가는 동안은 사람들이 없어서 둘이 나란히 앉아갈 수 있었다.

이 또한 행운이다.


수술은 아O병원 성형외과에서 진행했지만 치과에서 협진하기에 치과진료는 필수적이다.

치과에 도착하자마자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바로 호출을 해주신다.

수술 후 사진은 필수기에 기특이의 입 안 사진을 여러 장 찍으신다.

이제 기특이도 10년 내공이 있어서 치과에서 하는 진료는 협조를 잘한다.


원장님께 기특이의 치아 관리에 대해 물어봤다.

수술한 잇몸 부위를 직접 칫솔질을 할 수는 없지만 그 주변은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하신다.

물로 계속 흘려서 내려보내라고 강조를 하셨다.

음식물이 수술 부위에 끼는 행위를 최대한 줄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원장님을 2015년부터 뵙었는데 어제 따라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때보다 많이 늙으셨다. 나 역시 늙었다.

대신 기특이는 팔뚝만 한 신생아에서 11살 소년이 되었다.


신생아 때부터 품에 안고 다닌 병원인데 당시 치위생사 분들도 거의 그대로 계신다.

그 누구보다 프로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케어 주신다.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은 감사함 그 이상이다.

아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그 긴 시간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치과는 대부분 구순구개열 아이들만 오기에 들어가면 여러 나이 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어제는 정말 생후 한 달도 안 된 신생아를 만났다.

나도 모르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빠 품에 안겨 교정기를 찬 아기의 모습은 10년 전 기특이와 똑같았다.

나는 그 시절을 어찌 보냈을까.

매주 일주일에 한 번 이 쪼끄만 신생아를 품에 안고 병원을 왔었더랬다.

차오르는 눈물버튼을 꾹 눌러본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강하게 매번 하는 수술들을 잘 견뎌왔다.

그런데 그저께 저녁부터 온몸이 가렵다고 하더니 갑자기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일단 치과부터 갔다 오고 집 근처에 피부과를 부랴부랴 달려갔다.

5시 반. 아직 문 닫을 시간은 아니다.

4시에 압구정역 치과 진료를 보고 쏜살같이 지하철을 타고 달려오자마자 또 병원행이다.


피부과 선생님은 아이가 큰 수술을 해서 힘들었겠다고 하신다.

면역력이 떨어지니 갑자기 가려움증으로 불똥이 튀었나 보다.

죽만 먹느라 딱히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아이가 아플 때는 다 내 잘못 같다.


집에 와서도 온몸을 긁어대는 아이는 두 눈까지 부어올랐다.

이러다 응급실 가는 건 아니겠지 불안함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계속 얼음찜질로 달래주고 약을 바르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기도가 나온다.

교회 안 나간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이가 아플 때면 신기하게 입에서 기도를 읊조리고 있다.


친정엄마가 건너와 계셔서 기특이를 보는데 엄마의 얼굴이 나보다 더 칠흑같이 어둡다.

내리사랑이라고 손주가 아프니 안절부절 엄마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온다.

내일이면 두드러기 다 들어갈 거라고 걱정 말라고 내가 엄마를 위로한다.

너희들 아팠을 때도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하신다.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혔다고.


수술이 잘 끝나서 한숨 놓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두드러기로 온 가족이 마음이 쓰라리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아픈 아이를 눈으로 보고 있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오늘 눈을 뜨면 그 두드러기 다 들어가 있기를.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흘러갈 고통이기를.

너는 누구보다 강한 아이임을 엄마인 나는 알고 있으니

아들아, 우리 조금만 더 힘내보자!










[환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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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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