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끝났지만 병원 투어는 계속됩니다.
2025년 4월 30일 기특이의 치조골 이식 수술이 끝나고 이번 주 월요일 첫 외래 진료가 있었다.
수술하고 12일이 흘렀다.
그동안 아이는 죽과 국에 밥을 말아먹는 형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어른도 이틀만 먹으면 물리는 죽을 2주 가까이 먹고 있으니 작은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반찬은 연어간장조림이나 부드러운 계란찜을 올려줬다.
딱딱한 튀김 종류 잇몸을 찌를 거 같은 반찬 등은 전혀 섭취를 안 하고 있다.
혹시라도 수술 부위를 찌르게 되면 재수술이 염려되는 상황이 벌어지므로 병원에서 신신당부했던 내용이다.
학교에는 지난주 금요일에 담임 선생님께 하이클래스 앱을 통해 미리 말씀을 드렸다.
월요일 5교시 수업이 끝나고 바로 1시에 기특이가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기특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계획이 완벽했다.
아이는 1시가 좀 넘으면 나올 것이고 나는 아이를 태우고 지하철역 바로 밑 사설주차장에 차를 타고 강변역까지 58분이 걸려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아산병원에 도착하면 된다.
그런데 아이는 정확히 1시 19분에 나왔다.
그 19분 동안 나는 똥줄이 탔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는데, 최근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음에도
아이가 나오지 않자 여전히 똥줄이 탔다.
그날 아침에도 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결국 내 예상한 시간에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5교시가 영어수업이었는지 끝나고 과제 비스름한 것을 했나 보다.
기특이는 그것을 하느라 늦었고 영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려야 했다고 한다.
영어 수업은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하신다.
예상 못한 변수이다.
왜 나는 아이가 내 계산된 시간에 맞춰 나올 거라고 확신했을까?
이제는 그만 시간 약속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늦게 나온다라는 전제를 뼛속까지 입력하자.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이제는 그리해야 한다.
그래, 일단 밥도 못 먹고 출발하니까 차 안에서 카스테라랑 우유 먹자.
정지선에서 아이 옷에 우유가 엎질러졌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뭘 마시는 일은 쉽지 않다.
하얀 우유는 안전벨트에도 묻었다.
냄새날 텐데.
휴..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진다.
지하철역 밑에 주차를 급히 하고 허겁지겁 올라갔지만 열차는 방금 전에 떠났다.
십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낮시간에 오는 지하철은 텀이 길다.
모든 것은 결국 타이밍이다.
결혼도, 연애도, 성공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갑자기 모든 인생사가 타이밍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학교에서 조금 늦게 나온 것을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쫘르륵 시간이 밀렸다.
어쩔 수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도착하고 대기실 공간에 앉으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원래 대학병원은 3분 진료라는 말이 있는데 그날따라 안에 들어간 환자들이 생각보다 오래 진료를 보고 있다. 교수님이 한분 한분 꼼꼼히 보시나 보다.
기다리는 동안은 솔직히 지루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나 역시 들어가서 교수님과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하다.
교수님은 기특이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셨다.
이상 없고 이대로 3주 뒤에 보자 신다.
입 안에 녹는 실이라 따로 손대지 않으니 수술대에 다시 누울 일은 없을 것이다.
6월 2일 대선 하루 전날 예약을 잡고 나왔다.
올 때마다 힘들고 지치는 거리지만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은 두 발이 솜사탕처럼 가볍다.
십 년 전에 예약된 시간이 다가와서 우리는 언젠가는 해야 하는 큰 수술을 마침내 끝마쳤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품에 안겨 오던 아이가 어느 날 혼자서 뚜벅뚜벅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이가 기억하기도 전의 시간들이 흑백필름처럼 머릿속에 훑어 지나간다.
언제 오나 언제 오지? 했던 수술이 이미 끝나버린 과거가 되었다.
아이는 남은 3주만 버티면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결국 이 시간들은 알아서 때가 되면 흘러갈 것이니 마음에서 시간을 지우면 된다.
시간에 마음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대선이 끝나면 그 좋아하던 치킨 맘껏 먹을 수 있게 사줘야겠다.
기특이와 나의 달력은 이미 6월이다.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주부지만 요리를 못하는 요똥입니다]
화요일 오전 7시 : [책! 나랑 친구 해줄래?]
목요일 오전 7시 : [공대생이지만 경리만 10년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 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