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우쭈쭈쭈.
일주일 중에 화요일은 스케줄이 가장 빡빡한 날이다.
둘째 튼튼이의 언어치료가 끝나면 첫째 기특이는 피아노가 끝나고 집에서 혼자 나를 기다린다.
잠깐 쉬고 나면 눈높이 선생님이 오시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수영장 셔틀을 타러 나간다.
셔틀을 타려면 4시 30분에는 현관문을 나서야 하는데,
선생님이 초인종을 누른 시간은 4시 7분이다.
아슬아슬하게 수업이 끝나고 서둘러 기특이를 보내려던 찰나,
이 바쁜 와중에 엄마엄마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며 소파에 앉는다.
지난번에 셔틀쌤 전화를 한 번 받고는 절대 늦지 않으리 다짐을 한 터라,
왜왜 수영 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 모터가 달린다.
"엄마 나 오늘 수학 백점 맞았어!"
"진짜??"
"응! 소수점 시험 봤는데 백점 맞았어!!"
아이는 11살 인생에 이런 행복은 없다는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생했어!"
꽉 한 번 안아주고 나서야 기특이는 셔틀버스를 타러 나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번에도 백점 맞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무심한 엄마는 그냥저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는 나에게 시험지를 보여주고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단단해 보였다.
틀려도 괜찮고 못해도 괜찮다고 늘 말하지만,
기특이는 100점을 맞고 싶었나 보다.
소수점 전에 삼각형의 각과 변 부분에서 혼동을 많이 했던 터라 자신감이 많이 꺾인 상태였다.
수요일 언어와 인지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에는 전날부터 가기 싫다며 징징대기 일쑤.
모르는 거 선생님께 배우러 가는 거라고 아무리 아이를 다독여도
인지시간만 되면 늘 긴장 상태였다.
매일 까먹지 않도록 반복만이 최선임을 몇 년째 가르치며 깨달았다.
이 정도 가르쳤으면 알아야 되지 않아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아이는 도돌이표처럼 처음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같은 개념을 두 달이 넘어서야 겨우 이해하는 아이를 받아들이기까지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느림을 재촉하지 않는 참을성이 필수조건이었다.
파란만장했던 사회생활 덕분에 참을성이 많다고 나름 자신하며 살아왔지만
아이를 가르칠 때는 내 밑바닥이 드러났다.
사회생활과는 참을성의 '결'이 달랐다.
부모로서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자책도 많이 했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내 참을성도 단단해짐을 느낀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교육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자기 자식 공부는 선생님이 직업이어도 힘든 일이다.
공부가 인생에 전부는 아니야라고 하지만 과연 그 말에 우리 어른들은 책임질 수 있을까?
10대 아이들에게 성적은 인생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대학이 19년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목숨을 걸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어른들이다.
아무리 AI시대가 온다 한들 학교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어차피 기특이는 공부 쪽으로 갈 일이 없을 거라며 애써 마음을 비워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가 100점을 맞았다고 해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안다고 자부하며 아이의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못났다, 참...
하지만 오늘만큼은 복잡한 고민 날려버리고 아이의 노력에 칭찬만 듬뿍 담아 주련다.
노력과 집중의 결과이니 이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의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엄마라는 이유로 미리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꾸준히 지금처럼만 매일같이 무언가를 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도 온다는 걸 기특이가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