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휴직에 대한 설명회가 끝나고 우리 팀에서는 3명의 선배가 무급휴직에 서명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를 포함하면 10명 중 4명이 거부하는 입장이기에 든든했다. 나 혼자 반기를 들지 않는 것이기에 회사도 나에게 쉽게 강요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회사가 자율 무급휴가에 대한 신청을 받겠다는 금요일만 지나면 더 이상 강요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이틀 뒤, 금요일이 되자 별다른 압박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자 무급휴가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개별로 부서장이 면담한다고 하였고 함께 미사인한 선배들은 면담을 한 후, 모두 사인하기로 했다는 패배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버텨봤자 계속 무급휴직 참여에 대한 압박이 들어올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아직 이직한 곳이 확정된 것도 아닌 상태에서 회사에 반하는 소신을 고집하기 두려워했다.
그리고 화요일이 되자 인사팀 과장은 내게 잠시 미팅하자고 했다. 무급휴직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싶었다. 이미 우리 팀에서 무급휴직을 신청하지 않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말이다. 인사팀장은 내게 스몰토크하며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하였다.
"연차는 잘 쉬었어요?"
"보통 쉬는 날은 뭘 해요?"
"본사 생활은 어때요?"
그렇게 스몰토크가 끝나자 그는 본격적으로 무급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회사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자율 무급휴직까지 시행하고 있는데 저도 본부에서 얼마나 지원을 하는지 내일 경영자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00님이 신청하는지 안 하는지 궁금해서 뵙자고 했어요."
"사실 고민입니다. 저는 자율이라고 들어서 진짜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인을 안 한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미팅을 하는 걸 보고 이게 자율이 아닌 거 같은 분위기와 압박을 느끼고 있어요."
"자율이 맞아요. 자율적으로 하시면 되는데 다만 지원을 하시는지 안 하는지 궁금했어요. 사실 회사는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자칫하면 내년에 신용등급이 떨어져서 현금 유동성 문제로 우리가 더 큰 희생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사실 이걸 저 혼자 결정 내릴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당장 팀에서 인원이 빠지는 상황이고 그 업무를 팀 내에서 어떻게 분담할지와 주 4일제를 하면 기존에 제가 매일매일 해야 하는 업무에 대한 공백은 누구와 나눠야 하는지를 부서장님과 의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주 4일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상태에서 제가 주 4일을 하겠다 혹은 20일을 무급으로 연속해서 쉬겠다 혹은 안 하겠다 라는 입장을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이 부분은 팀 내에서 의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부서장님이랑 의논하고 결정 내리도록 해요."
이렇게 나와 인사팀장의 면담은 끝이 났다. 인사팀에 이런 압박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대화 내용을 녹음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해보니 인사팀은 본인이 곤란해질 대답은 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자율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자 부서장님은 점심을 미처 드시지 못하셨다며 사무실에 샌드위치를 들고 오셨다. 바쁘게 일하시느라 끼니도 못 챙겨드셨구나 라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손에 든 샌드위치를 내려두고 잠깐 면담하자고 했다.
식사도 안 하시고 이렇게 급하게 또 무급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부서에 온 지 6주 만에 처음으로 부서장님과 단독 미팅을 하였다. 무급휴직에 관하여.
사실 그가 무슨 얘기를 할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미 그와의 단독 면담을 했던 선배들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띔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에 내가 뭘 요구할지도 생각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무급휴직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도 쭉 무급휴직을 하지 않는 팀원들을 미팅해보니깐 내 생각에는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보통 서명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는 마침 무급휴직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딴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 했기에 나는 듣는 즉시 반박했다.
"아니요. 부서장님이 틀리셨어요. 무급휴직에 서명하고 주 4일제를 하면서 쉬는 동안 이직 준비를 하겠다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단순히 사인을 하냐 안 하냐가 이직을 준비하는 것과 아닌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나는 우리 팀원들이 사인을 안 해서 인사팀에서도 아침마다 계속 팀원들 서명했는지 체크하고 이런 상황이긴 해. 나는 우리 팀원들이 무급휴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 회사에 대한 실망감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유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온라인팀에 대한"
사실 부서장님이 알맹이 없는 비전을 말하며 구구절절 서명에 동참을 유도할 거라는 것도 이미 들었기에 나는 그의 얘기 중간에 내 말을 시작하였다. 이미 인사팀에 이어 두 번 연속되는 미팅에 지쳐있기도 했고 점심도 안 먹은 그도 힘들 텐데 대화를 길게 하기보다 내 요청사항을 가지고 그와 협상하고 싶었다.
"셀장님 저는 사인을 할 수 있는데 우려되는 상황이 있어서 이 두 가지에 대한 약속을 듣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빠지는 인원에 대한 업무가 제게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두 번째로 제가 매일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무급휴직을 하는 요일 업무는 우리 팀의 amd님이 업무 분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렇게 업무분담이 되어야 주 4일을 해도 온전히 쉴 수 있는데 현재 상황은 일은 더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쉬는 날도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amd님은 주 4일을 하는 관리직이 아니었고 관리직만 무급휴직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약간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주임 예전에도 이렇게 니일 내일 구분했나? 뭔가 실망스러운데 나는 열정 넘치는 친구로 느꼈기에 본사로 데려온 거지 이렇게 구분지어서 내 일만 하겠다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이주임 눈에는 주말에도 밤늦게까지도 일하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겠네. 이런 친구인지 몰랐어. 예전에 내가 본모습이랑 달라서 당황스럽네."
"부서장님, 무급휴직으로 급여는 줄어드는데 일은 더 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하시는 건 불합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인원이 빠지고 충원이 안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업무분담에 대한 것도 팀 내에서 협의되지 않은 상태인데 무급휴직에 동참하라고 하시는 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항공사나 외식기업이나 이런 쪽에서 항공운행, 뷔페가 휴점을 하니 직원들이 무급 휴직하는 것은 일을 하지 않고 급여도 받지 않는 구조지만 지금 우리는 쉬는 날도 일은 일대로 하면서 급여는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더불어 열정을 다해 일해서 성과를 만들었지만 회사는 하반기 정기 승진 일정에 대해 진행이 된다 안된다는 의견조차 없고 이미 상반기는 소통도 없이 4개월이나 지연되었습니다. 부서장님이 9월에 저 승진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다고 하셨지만 무급휴직까지 하는 마당에 승진 전형을 진행할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열정을 다해 무급휴직을 하면서도 더 많은 일을 하며 저 스스로를 갈아 넣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떤 보상도 대우도 받을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 말에 반박할 말이 없다고 생각 들었는지 태세를 전환하였다.
"이주임 나는 이 주임 무직 휴직을 서명하던 안 하던 중요하지 않아. 이건 제쳐두고 이주임이 말한 대로 내가 꼭 승진과 우리 팀의 보상을 약속할게. 나 믿고 한번 더 일해보자. 인원이 빠져서 생기는 업무에 대해서는 현재 00주임이 맡게 하고 이주임은 기존 업무를 진행하고 amd는 서포트하는 형태로 업무분담을 하게 하려고 해. 그러니 이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도 이 부분은 김대리와 소통해볼게. 그러니깐 나만 믿고 다시 예전에 내가 알던 이주임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같이 일해보자!"
이미 나의 입장을 전달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면담은 끝났다. 그러나 서명을 하던 안 하던 상관없다던 그는 나오면서 나에게 귓속말로 "이주임 혹시 서명할 종이가 없으면 인사팀 책상에 있으니 그거 가져다 하면 돼. 강요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율이니깐."
그는 내게 아주 간절하게 속삭였다. 부서장과 미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서명하는 것이 그에게 중요한 성과이건가 싶었고 마침 한 동기는 팀원의 동의율이 리더 평가 지표로 한다는 말이 있다는 소문을 전해주었다.
[팀원 전원이 100% 무급휴직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이 한 줄의 성과를 위해 그는 열정을 다해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번의 미팅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회사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사옥 안에 발생하였으니 모두 재택근무를 진행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사무실에 없으면 사인하라는 압박은 들어오지 않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다음 날 오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부서장은 전화가 왔다.
"이주임 재택근무 잘하고 있나?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아직 서명은 안 했다고 인사팀에서도 나한테 물어보길래 혹시 다른 계획이 있는지 아니면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어. 인사팀에서도 우리 사업부에서 너만 사인을 안 했다고 그러길래"
"부서장님 이런 걸로 이렇게 전화도 주시고. 자율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면담하고 전화하고 사인 왜 안했냐고 하시는 건 저는 진짜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이런 거 때문에 전화해야 하나 싶고 그렇다. 그런데 너만 사인 안 했다고 하면서 인사팀에서도 왜 안 하는지 계속 물어보고 연락 오고 그러네. 얼마 전에 마케팅 실장님이랑 너랑 만났다고 하던데 뭔가 얘기가 오간 거 같아서 혹시 다른 팀을 이동하려고 생각해서 사인을 안 한 건지 인사팀에서도 물어보더라고. 나도 몰랐던 얘기를.. 그런데 그 실장님도 무급휴직 서명을 했고 그 팀도 우리 사업부 안에 있는 팀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몰랐던 얘기를 인사팀에서 들으면서 내게 여러 가지로 이주임이 어떤 생각을 하는 건지에 대한 문의가 와서 말이야.."
이전에 사내 이동이 약속되었던 마케팅실은 회사 사정으로 사내 이동이 진행되지 않자 해당팀 실장님이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한 번씩 합격이 확정되었던 3명과 만나서 밥을 먹곤 했다. 그 모임은 그가 계속 사내 이동 합격자들에 대한 약속 이행하겠다는 책임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회사 상황이 흘러가자 나는 더 이상 해당 팀 이동에 대한 생각은 없었으나 같이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하는 게 좋아서 때때로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사내 이동에 대한 약속을 회사가 지킬 거란 기대도 없었기에 사실 팀 이동을 제안해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그 실장님에게도 현재 부서 업무가 재밌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 속에서 해명을 해야 했다.
"그런 생각이 아닙니다. 다만 저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율이라고 말씀하셔서 당장 서명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게 고민할 시간을 주세요."
"아 그래 그럼 얼마나 주면 되겠어?"
"오늘이 수요일이니깐 다음 주 금요일까지 시간을 주세요."
"다음 주 금요일..? 이번 주 금요일도 아니고? 너무 길긴 한데.. 이게 빨리 취합해서 보고가 들어가긴 해야 해서... 그래 그럼 다음 주 금요일까지 시간을 줄게. 나도 내가 이렇게 해야 하나 싶고 그렇다."
그렇게 부서장의 전화는 끝이 났다. 주임 나부랭이의 월급을 15%? 쯤 깎는 게 업무를 할 시간에 면담을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나는 이 팀에 오고 나서 부서장이랑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눈 것도 인사팀장이 직접 나를 불러 면담을 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무급휴직 서명 때문에 말이다.
어찌 됐건 나는 다음 주 금요일까지는 시간을 벌었고 그날이 되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사이에 인사팀장이던 부서장이던 그 누가 또다시 서명에 대한 압박을 한다면 이 모두 부당한 대우를 모두 녹음되고 기록할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