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NO를 외칠 수 있는 자신감
신입사원 시절, 나는 사회생활이 서툴렀고 그런 나를 이끌어줄 사수는 내게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바로 내 위에 있는 사수는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높아 보였고 사수의 지시라면 휴무에도 달려 나왔다. 사수 위에 더더 높은 상사들보다도 내 바로 위 사수가 더 무서웠다. 인사고과를 결정짓는 사람도 아니고 고작 대리였지만 그 당시 나는 사수의 말 한마디에도 벌벌 떨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사무실의 꼽추'였을까. 사수 앞에서 굽신거리며 움츠러드는 나를 보면 선배들은 '사무실의 꼽추'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나는 사수 앞에서 굽신거렸고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사수가 내리는 지시에는 무조건 "YES"를 외쳤다. 마치 회사 내에서는 신 같은 상사에게 감히 "NO"를 외칠 수 없었다. 상사의 지시에는 YES를 외치는 게 직장인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의 '예쓰맨' 버릇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이제는 연차가 쌓이니 내 위에 팀장님보다도 인사고과를 좌지우지하는 그 위에 권력을 가진 상사에게 굽신거렸다. 내 의견을 논리적으로 내세우기보다 어설픈 눈치로 상급자의 의견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인사고과를 좌지우지하니 상급자의 말에는 무조건 YES를 외쳐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의 지시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평가를 잘 받는 길이고 회사생활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상사가 요청하는 무리한 지시에 따르고자 지인의 지인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가며 그 지시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더 잘 보이고자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상사의 말에 "YES"를 외치며 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나의 인사고과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성과를 내는 것보다 성과를 주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인사고과는 예상과 달리 좋지 않았다. 다들 성과도 잘 나고 있는데 왜 내가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의아했다. 평가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상급자는 "우리 부서 성과가 좋지 않아서... 다음에 더 잘 챙겨줄게. 앞으로도 이대로만 일해주게"라고 했다. 이 말에 나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네가 이런 점이 부족해서 이런 평가를 주었다.'가 아닌 '상황이 이래서 지금처럼만 해주게. 미안하네'라는 말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한 답이 없는 피드백이었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지금처럼 일하면 또 이렇게 낮은 평가를 주겠다는 말인가? 낮은 성과를 주기에 내가 만만한 건가? 고민 속에서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았다. 내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상사의 말에 순종하며 YES를 외치는 주임이 어쩌면 낮은 평가를 줘도 큰 반항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YES를 답했더니 낮은 고과로 대답이 왔다.
속상한 마음을 회사 선배에게 토로하니 그 선배는 내게 해답을 주었다.
"어설프게 인사고과 잘 받으려고 정치하지 말고 숫자(성과)로 확실히 보여줘라. 너는 여기 일하러 왔고 그 상사도 일하러 왔다. 일을 하기 위해 온 사람인데 왜 일이 아닌 같은 직장인 입맛을 맞춰주려고 혼자 고생하니? 평가는 성과를 내서 받는 거다."
아차 싶었다. 칼퇴하면 뭔가 눈치 보이고 야근하고 늦게까지 일한 것을 상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사실은 성과가 아닌 어설픈 정치였다. 어쩌면 회사생활에서 정치도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치로 어필하려고 하니 내가 눈치 보며 굽신거리고 있었다. 성과에 당당하지 않고 내 성과를 더 크게 포장하려고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 실력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전에 함께 일하던 팀장님 중에 무거운 회의시간에서도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는 단호하게 "NO"를 외치던 팀장님이 계셨다. 그의 단호의 NO에 회의가 갑자기 싸해졌지만 그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신의 신조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의 능력을 깔끔하게 보여줬다. 꾸미지 않았고 굽신거리지 않았고 늘 자신의 업무에 있어 당당했다. 그래서 그 팀장님 이름이 나오면 다들 "그 친구 고집스럽게 자기 일 잘하지"라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자신의 업무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믿고 거기에서 나오는 당당한 NO를 외치는 분이셨다.
이제야 나는 YES를 외치는 것보다 NO를 외치는 게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당한 NO에는 실력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YES를 외치기 전에 당당히 NO를 외칠 실력을 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