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심화됨에 따라 항공업, 여행업에 이어 유통업도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나 내가 종사하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업은 온라인으로 쇼핑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있던 중에 코로나까지 만나 더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서 새로운 언텍트 시대에 맞춰갈 성장동력도 전략도 투자도 없는 상태였기에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살아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회사는 내가 첫 입사를 하던 2016년부터 위기라며 '비상경영'을 외쳐왔다. 그룹사의 유동성 위기로 업체 대금 지연을 하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복지, 승진, 보상은 모두 축소되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단 한 번도 호황을 누린 적도 안정성을 느낀 적도 없었다. 올해 초 예정된 승진 전형도 아무런 말도 없이 4개월이나 지연되었고 그 마저도 소수의 인원만 승진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비상경영' 5년 차, 입사 5년 차에 무급휴직이라는 압박까지 받았으니 회사에 대한 로열티도 안정감도 모두 잃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는 전 직원에게 대대적인 발표가 있을 테니 모든 직원이 출근을 하게 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그에 맞춰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주 4일제'를 통해 직원들 인건비를 아끼려고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대대적인 발표 전에 대표이사로부터 메일이 뿌려졌다.
대표이사의 메일에는 현재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만 나누지 않고, 미래의 성과도 임직원 여러분과 함께 나눌 것이니 자율적 무급휴가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순진한 나는 '자율'이라는 말이 진짜 원하는 사람만 참여하는 것이라고 읽었고 과연 자율로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메일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인사팀 주관으로 팀별로 보여서 해당 내용에 대한 설명회 시간이 있었다. 설명회에서는 부서장이 대표이사의 메일을 대표로 읽었고 직원들 앞에는 무급휴직 참여를 동참한다는 내용의 서명용지가 놓여있었다. 자율이라는 말은 포장이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인사팀 직원은 질문을 받겠다고 하였고 우리 모두 서명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한 대리님이 용기 내 질문을 하셨다.
"무급휴직은 강제가 아니라 자율이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나도 용기를 내 질문을 하였다.
"주 4일제를 해야 한다면 남은 연차를 매주 사용하여 주4일제를 하고 이후 필요시 자율적으로 무급휴직을 해도 되나요?"
"연차는 따로 개인이 사용하시고 무급휴직은 별개로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질문을 하였다.
"신청기한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로 되어있는데 신청기간이 지나도 나중에 필요에 맞춰 사용할 수 없나요?"
"안됩니다. 금요일까지 신청기한에 맞춰 신청 바랍니다."
"주 1회 무급휴직을 사용하면 해당 요일은 제가 정해도 되나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신청 용지에는 주2회 무급휴직, 주1회 무급휴직, 20일 무급휴직 중에서 선택하고 서명하는 란이 있었다. 사실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다.
무급휴직을 신청하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나요?
무급휴직을 하면 업무를 안 할 수 있도록 보장이 되나요?
무급휴직이라고 하면 2주에 한 번을 쓸지, 3주에 4번을 쓸지 기간과 횟수를 개인이 정할 수 없고 위에 선택사항 중에 선택해야 하나요?
자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희생을 강요당했다. 그렇게 자율이라는 말은 우리를 위한 단어가 아닌 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단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설명회는 우리에게 무력감을 남긴 채 끝이 났다.
이후 직원들끼리 만나거나 전화를 하면 "서명했어요?"라는 말은 인사말이 되었고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주4일제에 대한 글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의 글들은 회사의 주 4일제를 비판하는 글들이었다.
그간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쌓인 영업이익을 직원들과 나눈 적도 없으면서 왜 이런 고통은 직원들과 나누려고 하냐는 불만의 소리가 가득했다. 어떤 팀이 리더들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급휴직을 강요한다는 글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지금도 야근하고 있는 마당에 무급휴직을 하면 넘쳐나는 일은 봉사를 해야 하냐는 글도 올라왔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글은 한 외벌이 가장이 무급휴직이 본인의 가정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이고 막막한 일인지를 토로하는 글이었다. 당장 대출이자, 교육비, 마이너스 통장이 떠올랐고 다른 아빠 친구들은 과장인데 아빠는 대리라며 대리가 더 높은 거라고 하던 자식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는 글이었다.
회사에서 한 개인의 월급 13~15% 수준이면 40~50만원은 사실 회사를 살리는 큰 도움이 안 되는 돈일 수도 있고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월급에 13~15% 금액은 당장 생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희생이 필요한 무급휴직에 대해서는 정확한 수치로 회사가 얼마나 위기를 겪고 있는지 현재 직원들의 희생이 회사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이후 어떻게 보상을 해줄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다.
물론 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니 그때 필요한 게 회사에 대한 직원들이 믿음일 것이다. 회사가 직원을 소중히 대하니 위기를 넘기면 그에 따라 보상을 해주고 대우해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그간 회사는 직원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했고 승진은 바늘구멍이었고 성과급은 우스웠다. 그렇다고 회사에 성과나 영업이익이 작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무급휴직은 진정한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이 아닌 일종의 구조조정이라며 차라리 이럴 거면 희망퇴직을 받으라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급휴직에 대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사실 처음에는 책임질 가정도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기에 '주4일제'에 참여하고 이직 준비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 순응하는 척하는 것도 남은 기간 이직을 준비하는 게 필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직을 위한 시간은 남은 연차를 사용하여 충분히 할 수도 있는 일이긴 하였다.
주4일제를 한다고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고 더더욱이 주4일제로 월급도 공식적으로 출근하는 시간도 줄었지만 목표는 전년대비 6배에서 줄지 않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적에 대한 업무강도와 압박은 그대 로거나 혹은 더 강해지는데 내가 받는 대우는 더 나빠지는 것이었다. 불합리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급휴직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내가 무급휴직을 하며 희생을 한다고 해서 회사가 새로운 돌파구 찾을 거란 믿음도 로열티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정 직원들의 마음을 얻고 희생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강압적인 분위기는 내가 더 참여하지 않아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무급휴직 신청 마감하는 금요일이 되자, 옆에 앉은 동기이자 우리 팀의 팀장은 내게 물었다.
"언제 쉬어?"
"저 안 쉬는데요."
"무급휴직 안 해?"
"네 안 해요. 왜요? 해야 해요? 강제예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분위기가 다 하는 분위기고 그러니깐.."
"그래서 강제로 해야 하는 거예요? 전 안 할게요."
"음.. 굉장히 단호한데.. 뭐 안 하는 특별한 이슈가 있나?"
"자율이잖아요. 저는 안 할게요."
"왜 뭐 월급 깎여서 그런가?"
"주임 나부랭이에서 더 깎을 게 있나요? 안 할게요"
"그래 뭐. 그런데 인사팀에서 내일 미서명한 사람들은 따로 면담하긴 할 거야. 참고해."
그렇게 나는 내 소신을 단호하게 말하였다. 사실 가정이 있으신 분에 비하여 미혼인 나는 당장 월급이 줄어도 큰 타격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나이도 어리기 때문에 이 회사 말고 다른 회사도 많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회사가 미서명자들을 대상으로 인사발령을 내거나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면 그때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올해로 무급휴직 기간이 끝나더라도 내년이라고 상황이 더 좋아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기에 희생 뒤에 보상이 아닌 희생과 더 큰 희생이 연속되리라는 예상도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무급휴직을 거부했다. 약간의 희생을 통해 회사에 순응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숨죽여 있는 것보다 내 소신을 지키는 것이 내겐 더 소중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후환이 두려워서 권력자의 압력이 겁나서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훗날 내가 더 큰 삶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더라도 나는 내 소신을 지키며 살고 싶으니 말이다. 오늘 이 일을 잊지 않고 꼭 나는 소신을 지키면 살겠다.
그러니 배째라 회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