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 초등학생 때, 설거지를 하는데 주방 창문 너머로 만삭의 집주인이 집 근처를 쭉 둘러보고 있는 거야. 아마도 전세 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이 들어와서 살려고 하는 거 같았어. 그걸 보면서 또 이사를 가야 하는구나 싶어 속상했지."
우리 부모님은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내집마련에 성공하셨다. 서울 구석진 동네의 신축 빌라가 우리 부모님의 첫 집이었다. 그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우리 집은 늘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이사 간 집에 따라서 학교가 점점 멀어졌었다. 아직도 초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집 근처 초등학교를 다니는 걸 생각하면, 그 당시에도 버스를 타고 학교를 통근하던 학생은 나뿐이었으리라.
"야! 우장산빌라가 뭐냐? 산 밑에 있는 집이냐?"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근처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었다. 우리 집은 근처 아파트에 살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좀 떨어진 작은 빌라로 이사를 갔었다. 집주소를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 집 주소를 보고 옆에 앉아 있던 남자애가 큰소리로 나를 놀리듯 말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친구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가난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좋은 집에 살고 싶었다. 적어도 내 아이는 좋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이런 욕망이 억척스럽게 임신부일 때부터 임장을 다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욕망이 내가 꿈에 그리던 아파트를 계약하게 만든 힘이었다.
"좋은 집 사신 거 축하드려요! 그냥 바로 결정해서 집을 사신게 아니라는 거 알아요. 이렇게 큰돈을 주고 집을 보지 않고 사기 위해서는 아마 그전부터 집값추이를 봐오셨을거고, 부동산을 공부하셨기에 빠르게 결정할 수 있으셨던 거에요.“
부동산 사장님은 내가 이 집을 사기 전에 지난 1월에 이 아파트 단지의 매물들을 보았던 이야기, 이 아파트 말고 다른 지역 아파트도 임장 다니며 10명의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났던 이야기, 계약금을 넣기 전에 계약하려는 아파트 동에 거주하던 주민과 당근거래를 하면서 공유받았던 아파트 출입문 번호로 계약하려는 집의 문 앞까지 보았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선택이 그냥 급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며 응원해 주었다.
집을 보지 않고 이렇게 빨리 계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전에 그 집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집값추이를 봐왔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과연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걸까?'
계약을 축하해 주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진 않았을까? 지금 집을 사는 게 맞을까? 더 떨어지진 않을까? 머릿속에는 물음표들이 솟구치고 있었다.
"엄마 실은 내가 너무 성급하게 산 건 아닌지 걱정돼."
"원래 집은 사도 후회 안 사도 후회되는데, 실거주로 산거니깐 당장 오르던 내리던 상관없어."
"그치만 대출도 적지 않게 받는데 가격 떨어지면 어떡해.."
"대출 없이 집 사는 사람이 어딨어?! 빚도 자산이야! 너네들이 벌이가 좋으니 그만큼 빚도 낼 수 있는 거지."
계약금 넣기 전에 집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성급하게 덜컥 가계약금부터 넣은건 아닌지 여전히 걱정하는 내게 엄마는 오히려 담담하게 나의 결정을 믿어주셨다. 선택에 확신이 없었던 내게 엄마의 응원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혹시나 집값이 더 떨어져서 손해를 보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잠잠해졌고, 앞으로 내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집을 샀으니 목표의식을 가지고 더 많이 돈을 벌어서 빚을 빨리 갚자! 그래서 5년 뒤에는 더 좋은 아파트로 갈아타기를 하자.
가계약금을 넣고, 4일 뒤에야 계약할 집을 볼 수 있었다. 신축아파트여서 나는 큰 걱정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망권이나 집상태를 보지 못한 채 가계약금을 넣어서 남편은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기와 친정 엄마까지 4명이서 곧 우리가 살 게 될 우리의 첫 집을 보러 갔다.
"저기 남산타워가 보이네! 집이 너무 좋다."
24개월의 딸아이를 키우는 부부는 집을 깔끔하게 예쁘게 꾸미고 살고 있었다. 집 구조도 조망권도 맘에 들었는데, 집도 깔끔하니 남편의 걱정은 사르르 녹아내린 듯했다. 그제야 나는 앞으로 집값이 오르던 떨어지던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첫 아파트를 매수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 집을 살 수 있었던 건, 늘 내 결정을 응원해 주는 엄마의 믿음 덕분이었다. 내 모든 선택을 100% 믿어주는 엄마 덕분에 나는 늘 나를 믿고 결정을 내리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나아갔으니깐.
어쩌면 내가 가진 가장 비싼 자산은 내 모든 결정을 온 마음으로 믿어주는 엄마의 응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