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결국 발령이 나다.

직장인 괴롭힘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요.

by 북극곰

결국 나는 지점장님과 일한 지 1년 정도 지나고 발령이 났다. 운 좋게 그때쯤 다른 지점에서 나를 필요로 했는지 지점장이 나를 멀리 보냈는지는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나는 1년 만에 발령이 났다. 발령 난 곳은 집에서 더 멀어져 통근시간이 3시간 넘게 걸렸지만 그녀를 떠난다는 기쁨이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서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승진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물어보면 답은 언제나 퀘스천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간답게 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나를 맞이했다.



그렇게 나는 바로 발령이 나서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하고 며칠 뒤에 내가 있던 자리로 새로 발령 오시는 분과 지점 사람들이 모두 모여 송년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점심식사보다 일찍 나는 지점으로 가서 인수인계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찍 사무실로 가서 인수인계를 하는데 오랜만에 온 나를 보고 그녀는 "제대로 인수인계해줘요." 찬바람을 쌩하니 불며 말하더라. 아니 그래도 오랜만에 봤으면 "일찍 왔네요. 새로운 지점은 어때요?" 정도의 인사말은 할 수 있지 않나? 뭐 이젠 발령 나서 지점장을 안 봐도 되니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새로운 지점에 와서 그 지점에 있는 동기와 얘기를 하다가 나와 일한 이전 지점장이 새로운 지점장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겸직시켜요. 여기서도 겸직했어요"라고 말했다는 걸 들었다. 그 전화통화를 들은 동기는 굳이 자기 아랫사람이 발령 나서 가는데 좋은 소리는 못해줄 망정 겸직시켜서 일을 더 하게 하라는 말을 하는 그녀의 악독함에 치를 떨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에 보는 그녀라서 내가 가는 길에 더 이상 자기가 괴롭힐 수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약 올라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식사 자리로 이동하여 전 직원이 모두 모여 밥을 먹는데 내 옆자리에 하필 지점장이었다. 그녀는 그날 오전에 내게 인수인계 제대로 하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안부인사도 말도 건네지 않다가 "가서 겸직해요?"라고 물어보는 게 첫마디였다. 그 말에 내게 "네. 겸직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희미한 웃음을 띄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저렇게 괴롭히고 싶을까 하는 애잔함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를 더 괴롭힐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지점에서의 생활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른 동료들은 그 지점에 불만도 있었지만 나는 지옥에 있다 보니 이곳이 천국 같았다. 누군가 나를 작정하고 괴롭히며 불필요한 일을 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업무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에 그 무엇보다 감사했다. 그렇기에 나는 야근을 자처하며 천국 같은 업무환경에서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다. 통근시간이 4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하나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힘든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구나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발령이 난 뒤에도 이전 지점 동료들에게 자주 연락이 오곤 했다. 한 대리님은 지점장이 자기에게 후배인 나보다도 못한다며 비교하고 윽박지른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제 너만도 못한다고 하더라.."


새벽까지 맡은 일에 성과 내려고 열심히 일하는 선배의 성향을 알기에 나도 화가 났다. 그 지점장은 여전히 그렇게 열심히 하려는 사람 짓밟고 있구나. 식구들을 지옥에 놓고 나 혼자 천국으로 도망쳐온 기분이 들었다.



그 뒤에도 새로 내가 있던 자리로 오신 팀장님은 지점장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지점장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지점에 다녀온 지인은 팀장님의 풀 죽은 모습을 보았다며 많이 고생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내가 경험했던 지옥이기에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이 갔다. 위로의 전화를 건네는 내게 그는 그녀의 행동이 도가 지나치다고 하소연하였다.


"지점장 윤리위원회에 걸리는 거 아니냐?


해당 지점에 또 다른 분도 내게 전화해서 이때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무엇인지 물어보며 지점장이 확인해보고 그렇게 똑같이 만들려고 윽박질렀다고 했다. 내가 있을 때는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이 내가 떠나니 나와 지점에 있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또 그들을 닦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옥 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옥에서 나와보니 분명히 눈에 보였다. 그녀 곁에 있으면 나 아닌 그 누구도 지옥에 갇힌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내가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가 만든 지옥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건 그녀일 것이다. 매일 보는 직장 동료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당사자 안에는 분노와 악만 가득할 테니 말이다. 불쌍한 악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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