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괴롭힘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요.
사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굽신거렸던 마지막 이유는 ‘평가’였다. 우리 회사의 특성상 연말 성과는 성과급뿐만 아니라 월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성과를 못 받으면 월급이 깎이는 구조여서 일 년 동안 고생한 게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괴롭힘을 받은 게 평가받기 4개월 전부터였으니 조금만 참아서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평가 전에 그녀의 노여움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괴롭힘과는 별개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나의 희망은 헛된 것이었다. 결국 그해 평가에서 그녀는 내게 최하위 평가를 주었다. 동료들은 내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걸 알았지만 ‘니가 실적이 좋았는데도 설마 그런 평가를 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본인이 sp는 받을 거라 예상했죠?”
(sp는 우리 회사 기준으로 가장 일반적으로 받는 평균치 성과이다.)
그녀는 내게 최종 성과 결과를 말하고 조롱 섞인 질문을 했다. 그토록 괴롭힘에도 굽신거렸던 마지막 결과가 고작 조롱 섞인 최하위 결과였다니. 나는 결과를 듣고 상기되는 감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보통리더가 좋지 못한 평가를 줄 때 최소한 위로와 잘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격려를 주던 이전 지점장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아니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실적으로 보면 sp는 받아야 하지만 이전에 지점장이 나를 표적으로 삼고 괴롭히는 걸 보면서 어느 정도 맘을 내려놓은 것도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나를 조롱하듯 ‘니가 평균은 될지 알았겠지만 아니야.’라고 던지는 말에 반기를 들고 싶었으니 말이다.
결과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과가 이럴 거였다면 진작에 당당하게 나갈 걸이라는 억울함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얽매일 평가는 없으니 속편함도 생겼다. 나는 평가라는 그녀의 마지막 패를 보았으니 이제 그녀에게는 더 이상 패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괴롭힘에 더 이상 굽신거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사실 사내 성과평가 시스템상 상사가 나를 평가하듯 나도 상사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상사가 부하들에게 받는 모든 평가는 인사팀이 모두 해당 상사에게 공개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몇 명 없는 지점에서는 내용만 보면 누가 쓴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무조건 상사에 대한 평가는 최상으로 주고 부족한 점을 서술하는 항목은 장점 같은 단점을 써야 한다. 이것이 내가 회사를 들어오자마자 ‘상사 평가’에 대해 배운 것이다.
상사는 온갖 이유를 만들어가며 감정적인 평가를 던져도 되지만 부하는 상사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내가 배운 평가의 위계질서였다. 사실 이렇게 부당한 성과의 위계질서에서 나는 이전 노력에 대해 좌절을 느끼기도 했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어쩌면 내가 지점장에게 안 좋은 성과를 받은 건 내가 아주 값진 경험이었다. 사실 인생을 길게 보면 주임 시절 받은 낮은 인사고과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후 나는 평가자가 감정적으로 굴거나 혹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권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내 논리를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점장에게 받은 학대와 낮은 인사고과는 누군가 나보다 높은 권력자가 평가나 승진 혹은 돈을 무기로 나에게 폭력을 가할 때 그걸 굳이 참을 필요가 없다는 것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가진 무기 앞에 비참해지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으니 어쩌면 좋은 평가로 조금 더 받을 월급보다 비싼 걸 얻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