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누명을 쓰다.

직장인 괴롭힘은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요.

by 북극곰

지점장님의 괴롭힘이 지속될수록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맡은 일을 누가 봐도 열심히 그리고 잘 해내는 것이었다. 그래야 설사 내가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퇴사하거나 휴직은 한다 해도 회사도 내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인정은커녕 괴롭힘만 받고 있더라도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날도 늦은 시간까지 퇴근도 하지 않고 일을 했고 늘 하던 대로 퇴근 전에 지점장님께 하는 업무 보고를 카톡으로 보냈다. (우리는 지점장님께 매일 퇴근할 때마다 당일 업무 보고를 카톡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자 그녀도 평소와 다르게 "수고했어요~"라고 답을 주었다. 평소 업무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카톡으로 폭언을 받을 때가 많았고 딱히 답변 없이 읽씹 할 때도 많았다. 그랬기에 그 수고했다는 짧은 말 한마디에도 나는 굉장히 감격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그녀도 마음을 열어줬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오는 답변은 그 뜻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블라인드에 글 올리지 마요~^^"

당시 우리 지점장님은 회사 내에서도 악독하기로 유명해서 블라인드라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자주 글이 올라왔는데 그 글을 올린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블라인드 어플을 깔지도 않았고 우리 지점장님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다른 선배들이 알려주어 선배들 폰으로 보곤 했다. 막상 나는 보고도 별 생각도 없었는데 이 글을 보고 나라고 생각할 줄이야.



"네 지점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 블라인드 하지도 않아요 ㅠㅠ"

"ㅋㅋㅋ농담이에요~"

"지점장님 저 진짜 억울합니다..."

"그냥 누구 올렸지라는 말이 나와서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그녀는 장난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내가 그동안 글이 올라올 때마다 의심을 받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이유도 블라인드가 아닐까 싶었다. 진짜 블라인드에 지점장님에 대한 글을 올렸으면 차라리 덜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올리지도 않은 글에 대해 의심을 받는 줄도 모르고 야근 후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에 힘이 났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의 괴롭힘에서 빠져나오려고 더 굽신거리며 발버둥 쳐 온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점장은 자기 평판이 그토록 안 좋은 건 생각 안 하고 가장 힘없는 주임을 그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고 그동안 스트레스를 풀어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괴롭힘에 대하는 내 마음가짐은 꽤나 당당해졌다.



그때부터 지점장이라는 직책에 대해서는 예의를 갖추되 그녀가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억지로 나를 괴롭히려는 언행을 할 때는 나도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하루는 갑자기 다음날 지점에서 2시간 떨어진 곳에서 진행하는 회의에 누군가 한 명은 가야 했다. 아무도 그 멀리 가려고 하지 않았기에 내가 참여하게 되었는데 돌아오면 퇴근시간이 되어 그쪽에서 업무 마무리하고 퇴근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누구 맘대로?”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 그럼 돌아올까요 지점장님..?”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모두가 기피해서 먼 곳까지 가는데 또 지점까지 돌아오면 이후 퇴근하고 집에 가는 시간이 두배로 걸리는 삥 돌아가는 동선이었다.


“그럼 두 시간 걸려서 갔다가 다시 두 시간 걸려서 돌아오면 되나요?”


그러자 그녀는 할 말이 없으니 알겠다고 하였다. 내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서 배운 것은 괴롭힘에 주늑들수록 상대는 나를 더 만만하게 보고 더 심하게 괴롭힌다는 것이다. 예의는 갖추되 굽신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내 월급 주는 사장도 아니고 고작 먼저 회사 들어와서 나보다 조금 위에 있는 상사일 뿐이다. 회사를 나가면 남일뿐이다.



그녀의 기분만 맞춰주려고 하니 내 마음이 망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기분이 아닌 내 마음을 더 소중히 챙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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