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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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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 Oct 26. 2019

비적응자 Ausländer

Ich bin kein Deutscher.

Fritag. 08.03.2019.






오늘은 학교에서 Non-EU학생들을 대상으로 단체로 진행하는 거주지 등록 및 비자발급 절차를 접수하러 갔다. 원래는 오전 8시에 독일어 수업이 있었지만 8시 30분에 있는 비자발급 약속이 최우선이었으므로 30분 정도 더 늦잠을 잘 수 있었다.


각자 다른 학교에서 왔지만 이곳에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과는 어쩐지 똘똘 뭉치게 된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내가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을까.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물어보고 의문점이 있으면 해결하는 이 당연한 과정을 겪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하다.


독일에 온 지 이제 딱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그런 날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많다. 수업을 듣다가도 전문용어가 나오면 회로가 고장 난 것처럼 정신이 멍해지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원하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게 된다. 밖에 나가 장을 보고 밥을 먹고 핸드폰을 하고 수업 한 번 갔다 오면 하루가 끝난다. 도대체 뭐가 다르지? 이럴 거면 굳이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그런 자괴감이 일주일째 나를 휘감고 있다.


한 달 전에 이곳에 미리 와서 랭귀지 코스를 밟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은 이미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왓츠앱이라는 채팅앱으로 연락도 종종 주고받는다. 그러나 나는 방문을 닫고 알림을 끄고 모든 이와의 교류를 사전에 차단해버린다. 이러지 말자고 굳게 마음을 먹고 왔는데도 오랫동안 익어버린 나의 습성은 자꾸 내 몸을 골방에 구깃구깃 말아 넣고 만다. 이제는 나 또한 어떤 것이 내 진짜 모습이고 어떤 것이 껍데기인지 알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내 능력에 대한 자신이 없다. 단순히 껍질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 왜 나는 이토록 어려울까. 크게 와 닿지 않아 겉 문장만 훑고 말았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근 몇 년 동안 자꾸만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러고보니 헤세도 독일인이구나.


타인과 비교하지 말아야지, 항상 최선을 다하자, 겁먹지 말고 부딪혀보자. 매일매일 주문을 외우면 뭘 하나.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허공을 떠다니는 속 빈 말이 될 뿐이다. 나의 이 분노는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일까. 어쩌면 나는 그것이 가리키는 정확한 대상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꿋꿋이 외면해 지금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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