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늘작가의 현재 공식 직업(?)은 실업자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취업 재수를 해서 정년 퇴직한 회사에 1993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 이후 무려 33년 동안 단 하루도 돈을 못 번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 나의 근로소득은 0원인 실업자가 되었다.
지난 토요일(25.9.20) 지인과 모임을 하루 종일 한 후 마치고 늦은 오후 집으로 가기 전 가족 단톡방에 이런 톡을 했다.
나는 일원동 '개포하늘꿈도서관'에 자주 온다. 아침 9시에 오픈런했는데, 주말에는 이곳이 오후 6시에 문을 닫아 조금 일찍 나와서 가족들에게 저녁으로 초밥과 닭모래집을 종종 포장해서 집으로 간다.
가족들과 점심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
"음. 이런 말 하기 쫌 그렇긴 한데, 어제 일원동에서 초밥과 닭똥집 사면서 기분이 묘했어."
"당신 왜? 무슨 일 있었어?"
"내가 가족 단톡방에 신나게 카톡 하고 초밥하고 똥집 포장해서 카드 긁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지금 이런 돈 지출해도 되나? 무려 3만 원이 넘는데? 이번 달부터 소득 0원인데, 물론 실업급여와 개인연금 나오지만 실업급여는 100% 주담 대출 원리금 상환해야 하고, 개인연금 000만 원으로는 한 달 못 살 듯한데? 국민연금은 4년 뒤 나오고."
참고로 나는 평소 지출이 거의 없다. 직장 다닐 때는 기후동행카드로 출퇴근했고,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고, 술 담배도 하지 않는다. 여가 활동은 도서관에 가거나 기후동행카드로 부동산 임장하거나 자전거나 등산, 트레킹을 한다.
점심은 집에서 간단하게 내가 직접 샌드위치 만들어 과일과 함께 도시락 싸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도 하루 노는 데 만 원 이상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소비(?)하면 가성비 맛집에서 최대 15,000원 정도 밥 한 끼 먹고(보통 만 원 정도), 뷰 맛집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정도이다.
이렇게 내가 이야기하자 분위기가 당근 가라앉았다. 함께 밥 먹고 있던 직장인 아들도 나를 쳐다보고, 아내 역시 나를 애처로운 듯이 보고..." (대학생인 딸은 이때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그때 쫌 비참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꼴랑 3만 원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더구나 닭똥집(모래집) 주문 얼마했는지 알아?"
"만원 치 아냐?"
"아냐 7천 원."
"내가 항상 모래집만 원치 사잖아? 그런데 위 가격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7.000원 주세요라는 말이 나오더라. 초밥 2개 하고 닭똥집 7천 원 포장해서 버스 타고 집에 오는데 기분 진짜 쫌 그랬어. "
내 말을 듣고 있는 아내와 아들의 표정이 더 어둡게 변하고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한심하다 혹은 배 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하겠지. 퇴직금에, 개인연금도 있고, 강남 아파트까지 가졌고. 국민연금도 나올 텐데... 그깟 돈 몇 천 원에 벌벌 떠냐고. "
늘작가는 제2인생 어떻게 살 지 준비 거의 다했고, 돈도 현직 때보다 더 벌 자신도 있긴 한데, 암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는 그냥 자신감뿐이고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깐.
아내가 나의 이런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이렇게 대답을 했다.
"당신 그런 생각할지 생각도 못했어. 퇴직 전 그리고 정퇴 후에 워낙 자신 있고 당당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데 충분히 그런 생각 들겠네. 걱정 마.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어? 주눅 들지 마. 당신 퇴직금 나오면 대출금 일부 갚은 후 일단 1년 정도 남은 대출 원리금은 그 퇴직금에서 갚도록 미리 떼자. 그리고 실업급여는 당신이 고생한 것이니 다 사용해. 작년부터 받고 있는 개인연금도 당신이 다 사용하고"
이렇게 아내가 이야기해 주자 정말 고마왔고 힘이 났다. 참고로 나는 개인적으로 다른 비밀 통장에 여유돈 십원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직 때 지인들이 그런 비상금 만들어 두라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왜냐고? 그냥 그렇게 하기 싫었다. 그리고 만약 돈이 필요하면 내가 또 돈 벌면 된다는 생각이다.
부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이 이런 말을 나에게 해 주었다.
"아빠 걱정 마세요. 저도 이제 직장 다녀서 돈 벌고, 동생도 대딩 3년에 알바하면서 돈 벌고 있고, 엄마도 돈 벌 잖아요. 아빠 평생 고생 했는데,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사세요. 이제부터 우리들이 아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드릴게요."
아들이 이런 말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와 아들에게 너무 고마왔다.
토요일 들었던 기분은 가장이 된 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이었다. 나도 이런데 퇴직 후 제2인생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정말 막막할 듯하다.
하고 싶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 후 정 안되면 기본 급여받으면서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때 그 기분말이다.
나/우리의 가오는 돈이라는 것을 토요일에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들의 진짜 인생은 60세부터이다. 현직 있을 때 퇴직 후 캐시 플로우 잘 만들어 놓고, 무엇을 하면서 제2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지 미리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정신 단단히 차리자. 늘~
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