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늘작가가 실업자가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제 퇴직 관련 서류 발급이 필요해서 한 달 만에 내가 평생 다녔던 회사에 갔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 회사 소속 직장인이었는데, 퇴직자 그것도 현재 내가 속한 조직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방문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날 회사에 오가면서 많은 YB 전 직장 지인들을(모두 후배) 만났다. 이때 사람 관계에 대해서 느낀 바가 있었다.
상대방과 찐 관계인지 아닌지는 이렇게 서로 전혀 예정된 일정이 없었을 때도 연락해서 밥 한 끼, 차 한 잔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단톡방에는 늘작가 포함 YB 2명, OB 2명이 있다. 내가 2020년 임금 피크제로 보직 팀장에서 팀원으로 내려간 이후에도 계속 만난 10%에 해당되는 지인들이다.
오늘 회사에 간 이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퇴직증명서라는 것을 끊기 위해서였다. 당초 계획은 개인연금을 연금 형식으로 타려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 현금 특히 원화 가치가 종이가 되고 있어서 일시불로 받아서 비트코인/미국 주식/금으로 보관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아내와 협의해서 개인연금을 우리 가족 모두가 나누기로(아내, 자녀들은 증여) 결정을 했다.
퇴직증명서 끊기 위해서 회사 로비에 있다가 마침 점심 때라 꽤 많은 현직 후배들을 봤다. 이 후배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회사 다녔을 때 친한 후배라고 생각해서(고위 임원도 있었다) 반갑게 인사하면서 "0 팀장. 0 상무. 0 부사장. 반갑네. 잘 지내지? 언제 밥 한 번 사주라." 이런 이야기를 몇 명에게 했었다.
이럴 때 상대방이 나에게 뭐라고 답했을까? 대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 조만간 하시죠. 연락드릴게요."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다. 장담하건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 사람들 중에서 다시 밥이나 차 한잔 하자고 연락하는 사람은 100명 중 많아야 2~3명이다. 어쩌면 단 한 명도 없을 수 있다.
반면 이런 식으로 나에게 대답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네, 날 잡아요. 늘~선배 언제 가능하세요?", "뭐, 나야 백수니까 언제나 가능하지. 0 상무가 가능한 날짜로 해.", "음... 추석 전은 시간이 나지 않고 추석 다음 주 목요일 어떠세요? 아니면 그다음 주 수요일 점심도 좋고요.", "ㅇㅋㅂㄹ 스케줄에 넣었어. 추석 잘 지내고 10월 16일 봅시다. 내가 회사로 올게"
만약 상대방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나는 지금 정퇴 후 실업자 신세라 밥 사 줄 필요가 없는 사람(?^^)인데, 시간을 내는 것이니까 더더욱 그렇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지금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는 분들 많을 것이다. 나 역시 현직에 있을 때 이런 경험 수도 없이 겪었다. 특히 임금 피크제로 팀장 보직에서 내려간 이후 이전 내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후배들 90%는 점심 사주지 않더라. ㅎ
앞으로 어떤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내 시간을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까? 후자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 가끔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도 "00님 밥 한 번 해요?"하고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네. 그러시죠. 언제 가능하세요?"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상대방이 나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서 "언제 가능하세요?"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의례적으로 "밥 한 끼, 차 한 잔 해요?"라고 묻는지는, 알아서 잘 판단하여야 한다. ㅎ
사람과 관계 옥석 가리기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이 점점 더 많이 든다. 사람 숫자보다 얼마나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찐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면 서로 절친인 듯 착각하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90%는 허상이다. 직장을 퇴직하거나 직장 내에서 파워(직위)를 잃으면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집에서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꼭 한 번 이렇게 이야기해 보시라. 요즘은 카톡이 대세이니 깨톡으로^^ "저... 언제 점심 한 번 or 차 한잔 하시죠?" 이렇게 해서 나오는 상대방 반응을 보고 찐 분들만 교류를 계속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 또 하나 생각났다. 유선 통화! 요즘 유선 통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전화를 한 번 해보시라.
"00아. 전화해서 깜짝 놀랐지? 나 보험이나 뭐 부탁하려고 전화한 것 아니야. 그냥 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이러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친구/지인과 관계가 여전히 살아있는지 아니면 끝난 것이지. 정퇴 후 많은 분들과 유선 통화를 했다. 그런 후 친구/지인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고, 다시 찾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최고의 관계는 이런 것 다 필요 없고, 카톡처럼 내가 갑자기 번개 칠 수 있는 사람, 그랬을 때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열 명 아니 다섯 명만 있다면 인생 나름 성공한 것 아닐까? 늘~